인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을 경유해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한 때는 2016년 6월 7일 아침이었다. 비행기를 몇 시간 탔는지 계산해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피곤이 몰려왔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고 집을 떠나온 일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여행 시작인데 벌써 집에 갈 일이 막막해졌다. 비행기는 이러한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행기는 너무도 고요히 영국해협을 건너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유럽에 첫발을 내딛는 극적인 순간을 머리에 그려왔는데 시차 때문에 호텔로 가서 짐을 풀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차장 너머의 런던은 평범한 도시의 일상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고 또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부터는 혼자서 런던을 둘러보아야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법부터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대로 여행이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너무 많은 걱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호텔로 가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한다. 이 택시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호텔 문을 여는 그 지점까지의 여정만을 계획하고 집중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도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한다.
우선 지하철역으로 갔다. 호텔 가까운 곳에 RUSSEL SQUARE역이 있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 고딕 양식의 중세 건물들이 길 양옆에 도열하듯 서 있었다. 커튼월이나 패널로 치장한 빌딩에 익숙한 나는 시간여행을 하는 착각에 빠졌다. 도로 위에 빨간 이층 버스, 말을 탄 경관, 굴러나 갈지 의심스러운 옛날 자동차가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기분 나쁜 경이로움은 무엇일까? 도무지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나는 이 도시에서 갈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었다. 조각조각 잘 맞춘 돌들이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도시는 나를 위축시키고 어디에도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런던과의 첫 만남이라는 환희와 감동의 순간만을 고대했는데 긴장과 낯설음이 모든 것을 혼란에 빠뜨렸다. 잠시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1989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가 떠올랐다. 지하철이라고는 처음 타보는 시골 촌놈의 손에 지하철 티켓이 주어졌다. 티켓을 손에 쥐고 지하철 타는 법을 몰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하철 티켓을 개찰구에 넣고 다시 나오는 티켓을 회수하고 지하철을 타러 들어갔다. 그때 내가 느낀 긴장감은 지하철 타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웃을지 모르지만 내가 낯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RUSSEL SQUARE역에서 1989년의 서울 지하철이 재현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인 OYSTER카드를 구입하고 충전하는 무인발급기 앞에 섰다. 기계 앞에서 인간이 이렇게 좌절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싶었다. 무인발급기를 다루지 못해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뒤에 줄을 선 외국인은 다른 기계로 발을 돌렸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내 손에 OYSTER카드가 들어왔고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했다. 세계 최초라는 지하철 역사를 가진 런던 지하철 승강장으로 들어서는 일만으로 나는 기운이 소진하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호텔 방 안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 오는 길이 곧 험난한 여정의 반이었다.
지하철은 영화 속에서 보던 런던 지하철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디에선가 ‘본 얼티메이텀’ 속의 ‘맷 데이먼’과 마주칠 것 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호텔 안에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사람들이 조용히 방 안에 있지 못해서 생겨난다 해도 호텔 안에서 문을 열고 길을 나서야 한다. 길을 나서고 어디론가 향하고 도착하다 보면 삶의 궤적이 생긴다. 그 궤적이 무늬를 만들어 갈 때 우리는 삶의 희열을 맛본다. 여행은 그 궤적으로 무늬를 만드는 일이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 외롭지 않겠어?”하고 서울을 떠나오기 전 친구가 물었다. 물론 외롭다. 가족들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사진 찍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서울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다. 그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길 한편에 서서 잠시 쉬었다. 늘 그래 왔다. 좋은 음식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면 부모님과 가족이 먼저 떠올랐다. 다음에 꼭 모시고 데려와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어디에선가 관광(TOUR)과 여행(TRAVEL)을 그럴싸하게 구분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나만의 여행을 하자고 나를 다독이며 다시 템즈강을 향해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템즈강이 보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우습지만 실제로 타워브리지가 그곳에 있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에 제법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도 사실이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타워브리지 아래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비를 피하며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서 여행하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U2의 '보노'의 애절한 목소리가 템즈강의 강바람을 타고 더욱 애잔하게 들려왔다. 손은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찾아 들어갔다.
템즈 강변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나오고 밀레니엄 브릿지가 보였다. 강변을 유유자적 걷는데 한국에서 여행 온 듯한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히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쳐지지 않았다. 다시 런던에 온다면 아들과의 여행을 꿈꾸었다. 그 한국인 부자를 다시 한번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템즈 강변을 따라 걷다보니 멀리 보이던 밀레니엄 브릿지에 어느새 올라서 있었다. 다리 건너편에는 세인트폴 대성당이 있었다. 이 대성당은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세기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성당 안은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성당 앞에 앉아 긴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 쉬지 않고 바쁘게 나를 끌고 다녔다. 잠시 벤치에 걸터앉아 쉴 겨를도 없이 지나온 길 위에서 ‘강박’이란 단어를 되짚어 보았다. 무언인가를 보고 느끼려는 강박에는 이곳에 오기까지 치른 계산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런던에 계산서를 들이 밀수록 이 뻔뻔한 도시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내놓게 했다.
내셔날 미술관은 차링스터어 역에서 멀지 않았다. 그 미술관 바로 앞에 트라팔가 광장이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은 미술관의 앞마당 같았다. 도시 전체가 중세 시대의 멋을 내뿜고 있어 이들을 보며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템즈강에 어둠이 내렸고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빅벤에 조명이 들어왔다. 도시에 탐미적이지 못한 이들에게도 런던의 야경은 잠시 넋을 잃게 했다. 낮에 보았던 회색빛 건축물들은 조명을 받아 따스한 온기를 내뿜었다. 여행 첫날의 긴장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강변에 앉아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오늘 하루의 감회에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