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by 정원철

고통에 대하여

삶은 권태 아니면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행복도 기쁨도 잠시 곧 권태가 찾아오고 뒤이어 고통이 따른다. 고통 속에서 다시 행복의 파랑새를 쫒지만 결국 다시 권태에 빠지고 만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박완서선생님의 말처럼 고통은 삶에서 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왔다. 왜 이런 책을 나에게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생일선물로 보낸 것이 분명하다. 이성복 작가의 얼굴이 표지에 담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아포리즘(격언) 책이었다. 책은 받았지만 처음 몇 장을 넘기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책 속의 내용보다 제목이 던진 화두가 더욱 마음에 와닿아 책을 들고 겉표지를 넘지 지 않고 제목만을 음미하였다. 그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을 마주했을 때 고통이란 말이 수만 가지의 알 수 없는 뾰족함으로 나를 찔러댔다. 그 시절 우리가 겪고 있었던 고통에 대해 친구는 이 책의 제목을 빌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고통의 대부분은 욕망의 덫에 빠진 탓이었다. 가족을 책임진다는 이유 뒤에 숨어서 돈과 권력을 탐욕했다. 그저 남몰래 탐욕하기만 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나 혼자 잘 살자는 거냐는 식으로 주변사람까지 끌고 가거나 회사에서 실적에 눈이 멀어 동료직원까지 들볶는 김부장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닌 상황이 빈번해지면 고통의 굴레에서 헤어날 방법이 없다. 그 당시 나는 욕망에 사로잡혀 고통을 투정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는 내가 빠져 허덕이는 고통에서 나와 푸른 나뭇잎 하나에 비로소 눈길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선물 받은 지 10년이 족히 넘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말했다. “친구야 내가 보기에 너는 부러울 것 없이 다 가졌는데 지금도 무엇이 그리 너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욕망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새 고통은 내 삶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과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제나 타인의 고통에는 눈을 감고 자신의 고통만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구토가 나왔다. 자신의 고통에 빠져사는 자는 나뭇잎 하나도 푸르게 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나는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다시 고통에 빠져드는 일을 숙명처럼 반복하며 산다. 그래도 그 고통이 실재하지 않고 마음이 지어내고 있음을 조금은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내가 마음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도 있지만 연인과 헤어지거나 가족과 이별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고통의 여러 얼굴들이 있다. 얼마 전 암으로 고통받는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다. 그 병동에 아직 세상과 작별하기에는 너무도 예쁘고 젊은 친구가 아픈 기색도 별로 없이 누워있어 놀랐다. 친구는 고통을 몰핀에 의지하며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고 있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섬망증상으로 친구와 마지막 인사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병동에 계신 원불교 정녀 한 분이 친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많이 아프세요? 그럼 아픈 것은 잠시 놔두고 친구가 왔으니 지금은 친구와 노세요. 많이 아프다고 생각지 마시고 내가 지금 아프구나 그런데 지금은 친구가 왔으니 친구와 놀아야겠다 생각하세요.” 그 정녀의 조용히 읊조리는 말과 눈빛으로 친구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다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친구가 끊임없이 뒤척이는 병상을 보며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 기뻐서 좋아하시는 모습보다 깊은 상실감에도 오후의 햇살아래 말없이 고요히 앉아 견디시는 모습이 더욱 안타까워 보이던 분이셨다. 아버지에게서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많이 아프시면 말없이 누워만 계셨기에 어디가 얼마나 아프신지 알 수 없었다. 고통이라고는 못 느끼는 것처럼 감정표현이 없으셨던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한 달 정도는 집에서 온갖 신음과 뒤척임을 반복하며 괴로워하셨다. 나도 죽을 때 아버지와 같은 육신의 고통이 내 몸에 찾아오면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통을 마음에 담아두면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한다. 과연 고통이란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에 휩싸인다. 고통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전에 고통은 내 마음과 육신을 집어삼킨다. 내가 왜 고통에 휩싸여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금 너무 아파서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고통은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피하려 하면 할수록 내 몸에 더욱 달라붙는 찐득이 같은 것이다. 말이 쉽지 암에 걸린 친구나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나 얼마 전 농업문제로 중국에 있는 사업가를 사칭한 북한공작원과 메일을 주고받은 일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매형의 고통을 겪지 않고는 쉽게 말할 수 없다. 팔꿈치 엘보우로 체외충격파를 받을 때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다시 체외충격파를 받는 일이 무서웠다. 고통 앞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고통은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나를 더욱 옥죄는 덫이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별도리 없이 견디는 일이다. 다시 책을 들고 보니 이제는 ‘고통’이란 말보다 ‘푸르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욱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만의 고통에 빠져 사는 삶은 내 주변을 푸르게는 고사하고 병들게 한다. 고통을 잊으려 알콜에 의지하며 가족들을 괴롭히는 사건을 목격하거나 실적과 승진으로 고통받는 상사와 일해본 경험이 있으면 그 말의 뜻을 안다. 세상의 빌런 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군산교도소에 영어의 몸이 된 매형의 면회를 다녀왔다. 어찌 된 일인지 매형의 얼굴에서 맑은 광채가 났다. 70세의 몸으로 이 사회의 부조리를 일인시위로 고발하고 겨울 내내 차가운 도로 위에서 윤석열 탄핵시위를 이끌 때의 매형은 고질적인 허리병으로 곧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해 보였었다. 그 몸으로 법정구속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매형의 건강이 몹시 걱정되었다. 그런데 걱정과는 반대로 매형은 너무도 평온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매형의 맑은 얼굴에서 푸르름이 느껴졌다. 철창 너머 매형의 얼굴 가득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자유로운 내가 오히려 매형의 면회를 받는 듯했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운 내가 오히려 구속된 매형에게서 푸른 물이 들고 있었다.

고통에서 도망치는 일보다 내 마음의 평온을 찾아가는 일이 더욱 쉽다. 고통을 진정시키는 일의 시작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바라보기만 해도 최소한 고통과 같이 사는 게 삶이라는 인식에 접근한다. 고통은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내 옆에 늘 같이 있는 그 고통이 오늘따라 너도 참 애쓰고 있다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 언제 나에게 돌변하고 덤빌지 모를 그 고통이 조금은 덜 무서워진다. 그러니 고통은 고통스러운 대로 내버려 두고 잠시 길을 걸어본다.

오늘은 이른 더위 속에 나뭇잎이 만들어 놓은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다. 나뭇잎은 찌는듯한 더위를 견디고 잠시 쉬어 갈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준 나뭇잎 하나하나 바람에 흔들리며 온 숲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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