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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관우자앙비 Sep 20. 2017

내 인생 이야기#3

짧았던 서울에서의 국민학교 시절. 참 찌질했다.

서울 올라온 이야기에서 잡생각이 많이 난다. 이건 아마 그 시절의 내가 불안정했음에서 꽤 기인하는 것 같다. 광주에서의 기억은 아마도 망각이 되었기 때문에 혹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글이 써 내려져 가는데, 서울에서의 기억은 그게 아니다. 사실 5학년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5학년을 남사 국민학교를 다니고, 6학년은 길 건너 방배동에 있는 이수 국민학교로 전학 갔고, 사당동에서 방배동으로 또 이사를 갔었거든. 그 기억은 난다. 만우절 날 놀아주는 친구가 없어서 집에 가서 엄마한테 뭐 맞은 것처럼 장난쳤던 것, 이건 내가 진짜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기억 중 하나이다. 아 썩을 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얼레리 꼴레리라는 여섯 글자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참된 성장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 어린 시절, 내 부끄러운 유년 시절에 기억되는 짝사랑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유치원 때라 잘 기억은 안 나고, 한 명은 두 번째 전학으로 간 이수 국민학교의 한 친구였다. 


 그 친구를 대놓고 좋아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를 유심히 보다 보니 바지 지퍼가 열린 거다. 진짜 뻥 안치고 3시간 정도를 고민하고, 너 남대문 열렸다고 조심히 말했는데 그 아이가 책상에 엎드려 우는 것을 보고 내가 잘 못한 게 무엇인가를 한 일주일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6학년 2학기 때에 그 아이는 전학을 갔는데, 뭐 잘 지내고 있겠지. 싸늘한 남대문의 추억.


 그러다 1996년 2월에 헌정 역사상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생으로 초등 교육 과정을 마무리한다.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는 5학년 때 바뀌었던 것 같은데, 우리 졸업장 까지는 국민학교라 적혀 있었다. 아마 졸업장 재고가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재고떨이 인생인가. 그 졸업장을 받아 들고 진짜 엄청 울었던 생각이 난다. 익숙했던 광주를 떠나 1년, 1년을 각기 다른 학교에서 보내고 새로운 중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두려웠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는 새로운 환경은 그냥 적응하면 되었지만, 새로움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새롭게 가야 하는 환경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중학교 1 지망, 2 지망을 썼는데 운 좋게 집 근처의 이수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강남 8 학군이라는 어마 무시한 범위에 들어가 있는 학교였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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