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은 시
넘어지는 장미
김은
낡은 손을 내민다 머리가 바람에 스친다
풍성한 머리에 서리태 낀 한 여자, 저기 걸어간다
물비린내와 함께 거리로 새어나오는 먹색의 여자
바깥으로 굽어진 무릎이 활처럼 저릿, 휜다
진동하는 여자의 손바닥이 그 바람에 놀라 벽을 짚는다
이틀 전에 산 염색약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보랏물로 빠졌다
듬성듬성 허전한 머릿마디가 투명하다
구멍 난 수세미를 들어 실룩실룩 씻어낸다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그 시간 사이, 한 아이가 비친다
눅눅한 눈 속에 넣어두었다 그만 잃어버린 그 작은 장미
이제 잊었다 하면 다시 눈 속에 들어와 박히는
꽃송이보다 새털구름보다 마냥 가벼웠던 그 아이
보랏빛 손가락이 보랏빛 장미 한 송이 꺾는다
상실한 손가락 따라 붉은 눈물 떠돈다
바람에 뒤뚱거리는 달큰한 꽃 한 송이
아이 닮은 구름 찾아 거리로 자꾸 새어나온다.
문예지 [한국작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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