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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용 김은 Aug 12. 2016

시, 실연

시인 김은 시

실연


김은


캥거루의 마른 주머니 위를 걷는 남자


그의 느린 걸음이 바느질처럼 촘촘하다

입술에 세든 담배 한 가치 달달달 웃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나오지 못한 나는 그만 지갑에서 구겨진다

기억을 두드리던 못난 입술은 주머니로 떨어지고

줄창 따라오던 빗물주머니, 이내 눈밑에서 첨벅거린다


주머니 안에서 두 팔로 떨어지는 당신을 받는다 나는

조용한 불똥에 가슴을 덴다 깊어진 당신은 돌아눕는다

내가 일러주던 웃음도 저렇게 담배구름처럼 떠내려간다

그래, 고요한 소식도 너에겐 언제나 뜨겁다


입술에 세를 든 마른 담배 한 가치

발이 앞서면 까진 뒤꿈치가 철 모르게 따라오던 저녁

빗물이 뜨거운 너의 입술을 다시 훔친다

못 꺼낸 속눈썹이 자꾸만 질척거린다

꼼꼼히 땅의 길을 세던 당신이 눈밑 불똥을 닦는다


다시 되바느질하고 있는 너의 시선,

그 벼랑 끝에 선 너.


문예지 [문학세계] 2014


china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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