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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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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pr 16. 2019

꼬리채널

2019년 4월 15일 저녁.


꼬리는 재밌다. 나는 텔레비전을 안 보는데, 꼬리만 나오는 텔레비전이 있다면 하루 종일 끼니도 거르고 볼 것 같다. 쇳소리가 나는 얇은 미성. 느리지 않지만 나긋나긋한 속도. 까르르 혹은 헤헤 하는 웃음소리. 간혹 꺅 하는 단발성의 기쁜 비명. 고양이한테 말할 때만 나오는 상냥한 비음. 낮게 잠긴 아침의 웅얼거림. 가끔 진지한 얘기를 할 때, 말끝에 ‘응’하고 혼자 대답하는 말버릇. 장난스럽게 ‘칩코야-’하고 끝을 늘리며 부르거나, 전화를 끊기 전 ‘사랑해’하고 가늘게 속삭이는 소리. 입맞춤을 한 후엔 어김없이 눈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 길쭉한 물방울처럼 접히는 눈웃음. 좀 더 선명하게 패는 오른쪽 입가주름. 까만색보다 진한 속눈썹. 목욕 후 구불구불 젖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나른한 눈. 예쁘다고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워하는 뒤통수. 내 위에 올라 타 내려다 볼 때 눈동자의 깊이. 눈동자 위로 빼곡히 쏟아지는 속눈썹 그늘. 게슴츠레 눈을 뜨는 습관. 사과 같은 얼굴. 나를 잠식할 것 같은 출렁출렁한 눈빛, 눈을 맞추다가도 못내 먼저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끝없이 용감하고 따뜻한 눈빛. 아, 너는 늘 나보다 용감해. 어지럽도록 예쁜 꼬리야.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는 꼬리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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