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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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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pr 23. 2019

꿈과 꼬리

이제니 <꿈과 꼬리> 시 분석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쓴 것들> 중


*글에 일반명사 ‘꼬리’와 고유명사 ‘꼬리’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꼬리 속에 있었다’는 말은 존재일까 부재일까. 사라지는 곳에서 존재한다니, 그렇게 위태로운 존재도 존재라고 할 수 있다면. 꼬리와 꿈 얘기를 한다. 내 꿈은 손을 잡고 익숙한 곳을 걷거나, 방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꿈. 아침에 일어나면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현실과 잘 구분이 안 간다. 꼭 밤새 꼬리와 떠들고 있던 기분. 방금 무슨 얘기를 했더라. 아니,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다 잠들었더라. 요 며칠 잠꼬대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잔다고. 그럴 땐 나도 내가 말하는 게 느껴진다. 다만, 깨닫는 동시에 이미 입 밖으로 나가버려 딸꾹질처럼 참을 수가 없다. 지나친 각성상태. 요새는 그렇다. 너무 깨어있고, 잘 잠들지 못한다. 깊은 잠을 자면 꼭 봐선 안 되는 걸 보게 될 것 같다. 내 꿈은 현실인 척 마구 섞여 실체를 숨긴다. 선명하지만 희미한 꿈. 존재야, 부재야?


종종 불안하다. 꿈을 놓치듯이, 감정을 쫓는 데도 미련하다. 삶이 너무 또렷해서 하는 걱정들, 내몰리는 기분과 동시에 해방된 기분, 죄책감과 부러움 같은 소모적인 감정들. 알아차릴 새도 없는 조류(潮流) 같은 일상. 시 속에서 이들은 모두 ‘내면의 아이들’이다. 긴 동물은 이들이 있는 강가로 달린다. 가는 길목마다 허공으로 퍼지는 목소리는 죽어가고 있다. 내면을 향한 길은 필연 돌이킬 수 없는 법. 강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우우우. 그러나 그곳엔 얼굴 없는 얼굴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운다. 작고 없는 것들이 조약돌을 던지며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곳. 태풍의 눈과 같은 곳. 내면의 것들은 사실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곳에선 비겁한 꿈들도 어디로 도망갈 것 없이 서로 마주할 수 있다. 마주 볼 얼굴이 없으니까. 운명은 저 조약돌에 맡겨버리면 된다. 우리는 행복 속에서도 끝내 불안을 놓지 못한다는 것. 불안함으로 행복을 확인하는 것을 알면 된다. 사실은 우리 모두 사라지면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오늘도 꿈을 꿨다. 눈이 번쩍. 세수를 한듯 눈이 개운하고 몸이 가볍다. 분명 오래 잔 것 같은데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이른 시간. 꼬리가 예약해둔 밥솥이 부지런히 밥 짓는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아침. 다시 잠들 것 같지 않다. 기분이 들떠있다. 꿈속에서 꼬리랑 반죽을 했다. 꽁꽁 언 반죽을 따뜻한 손으로 오래 주물럭거리니 금세 말랑말랑해지는 꿈. 어제 늦게 잔 꼬리를 깨워 말해주긴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꼬리가 눈을 뜬다. 졸린 눈으로 꼬리는 편지를 건넨다. 생일 축하해. 편지 한 면엔, 자작나무 숲 속 나란히 발가벗은 우리가 그려진 그림. 창피하니까 지금 읽지 마. 어제 밤 불려둔 미역을 볶는 꼬리 뒷모습. 처음 맡는 것 마냥 신기한 참기름 냄새. 작은 상에 마주 앉아 꼬리와 함께 보내는 생일의 아침. 기분이 알쏭달쏭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날들. 시가 말했다. “한번도 살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살아도 좋지 않을까요.”  이제 사라지는 얼굴들은 울지 않는다.


그림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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