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꼬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칩코 Apr 23. 2019

토요일 아침


2019년 4월 20일 아침.

     

토요일 아침엔 꼬리가 필요하다. 서두르지 않고, 나른하게 들어오는 아침 해를 기다리는 시간. 가지런히 감긴 꼬리 속눈썹도 마음껏 관망할 수 있다. 이번 주 토요일은 본가에서 맞는다. 새벽에 번쩍 눈을 떴다. 너 코 골았어. 술 먹고 늦게 들어온 언니도 눈을 뜨고 있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일찍 잠들었다. 이상하게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언니는 더 이상하게 덩달아 깨어있다. 언니는 지난밤 술자리 얘기, 요가 얘기, 나는 꼬리 얘기 또 꼬리 얘기. 함께 천장을 바라보며 실컷 떠들다, 깜깜한 어둠이 눈에 익어갔다. 어슴푸레 아침이 열리고 있는 베란다 창. 아, 주말의 아침이 왔네. 아직 자고 있을 꼬리가 너무 보고 싶다. 허겁지겁 옷을 집어 입고 집을 나섰다. 꼬리가 보고 싶다. 꼬리 눈두덩에 뽀뽀하고 싶다. 느릿느릿 물속을 달리는 것 같은 버스에서 내리자 금세 해가 더 밝았다. 처음 오르는 길처럼 낯설고 들뜨는, 잠이 덜 깬 도시의 골목. 차가운 아침 공기를 몰고 현관문을 여니, 놀란 꼬리가 부스스 잠이 깨 있다. 왜 이렇게 일찍부터 왔느냐고 잠긴 목소리로 연신 잔소리를 하는 꼬리 품으로 쏙 들어간다. 뜨끈뜨끈. 밤새 데워진 노곤한 이 온도가 필요했어. 주위 공기도 팽창하는 것 같은 아침 체온. 여름날 정오의 해를 받은 조약돌 같은 꼬리의 뺨. 왼뺨으로 내 왼뺨을 녹여주고, 종아리로 내 종아리를 녹여주는 꼬리. 한 주도 놓칠 수 없는 토요일 아침의 꼬리.



매거진의 이전글 꿈과 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