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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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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Oct 12. 2021

가. 낯선 천장

2021년 8월 5일.


새로 이사를 했다. 마을에서 조금은 외진, 집 뒤편으로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 약간 그늘진 집이었다. 전기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햇님이 허락할 때까지만 생활하고, 달님이 뜨면 그냥 눕는다. 첫째 날, 일찍 누워서 그런가 잠이 안 온다. 촛불 하나를 켜고 꼬리와 나란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온도. 요란스러운 풀벌레 소리. 촛불이 일렁일렁 낯선 천장을 비춘다. 이 집, 전에는 무당이 살았었대. 신들 모시는 법당이었다나. 무당 하니까 생각난 이야긴데, 해도 돼? 아니야, 하나도 안 무서워. 귀신은 사실 무서운 존재가 아니래. 그냥 보이지 않을 뿐이래. 지금 여기도 있어. 인사하자. 우리 나무님들한테 인사하듯이, 안녕하세요~ 꼬리는 결국 울었다. 여기 누가 있다고 인사를 하느냐며 성을 내다가, 당장 친구 집으로 가서 자겠다고 하더니, 끝내 흰 전등을 환하게 켜고 유튜브를 30분간 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놀리거나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서 나는 안절부절하다가, 귀신들 달아날 만큼 꺼이꺼이 웃어버렸다. 전기 없이 살아보기 첫째 날은 실패. 나 때문인지, 꼬리 때문인지는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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