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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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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Oct 12. 2021

나. 안녕히주무셨나요들!

2021년 9월 10일.


새로 이사한 집에서, 꼬리 없이 보내는 날들. 전기 없이 살아보기는 성공적인 날들이다. 이제 초도 아끼려고, 웬만한 어둠에서는 촛불 없이 더듬거리며 지낸다. 그래서 알게 된 건데... 내가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것. 꼬리가 무서워할 때는 놀리기 바빴는데, 나도 무서워한다. 촛불이라도 하나 켜놓으면 그렇게 위로가 되는데, 완전한 어둠은 자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창밖에 누가 쳐다보고 있을 것 같고, 방 모퉁이에 어떤 인영이 보였던 것 같고, 물건들은 꼭 밤만 되면 소곤거린다. 툭툭, 스르르, 지직. 원래 소리가 나곤 한다는 건 알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는 안 나면 좋겠다. 나는 귀신을 믿는다. 인간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짜 세계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보이지 않지만 부지런히 돌아가는 세계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내 옆에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무서울 게 없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이 집의 원주민. 새로운 이주민을 받아준 상냥한 이들. 고마움마저 느껴진다. 혼자 지내는 방이 아니라고 깨닫고는, 방문을 살살 닫게 된다. 물건도 조심스럽게. 원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아침엔 인사하는 습관도 생겼다. 안녕히 주무셨나요들! 물론 꼬리가 오면 마음 속으로만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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