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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an 30. 2022

고구마의 사랑을 깨닫기 전에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내가 비건이 됐을 때는 지금만큼 비건들이 흔치 않았다. 마트에서 비건 제품을 보면 꿈이겠거니, 하고 지나쳐갔을 것이다. 물론 이효리 덕에 한 차례 웰빙 열풍이 불긴 했지만 롯데리아에 비건 버거가 생기고, 오뚜기에서 소이마요가 나온 건, 내가 비건이 되고 7년 정도 뒤의 일이니까. 나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던 한 교수님이 유튜브에서 소의 젖을 착취하는 영상을 보여준 후로 우유를 끊었다가, 3일 후에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그 교수님이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게 해서 꼼짝없이 비건이 되었다. 


비건을 결심한 이유는 사실 그 책보다 교수님의 덕이 더 컸다. 책도 물론 나를 동요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내 상상력 밖이었다. 그 교수님이 채식주의자라는 소문이 더 큰 충격이었다. 이런, 멋지잖아! 살면서 채식주의자를 처음 봤다. 당시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삶에 그 지식을 초대하는 법을 난 몰랐었다. 책으로 토론만 하고 덮을 게 아니라 내 삶을 바꿀 수도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숱한 다이어트 실패 경험들로 미루어 보아 난 내 실낱같은 의지력을 잘 안다. 쩌렁쩌렁 소문을 내야 창피해서라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오늘부터 비건한다!"라고 떠들고 다녔다. <동물해방> 말고는 딱히 다른 동물권 관련 서적은 더 읽지도 않은 상태였다. 비건이 뭔지도 잘 몰랐고, 막연히 건강이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하루는 친구에게 "비건식 했더니 약간 현기증 나는 것 같아"라고 했고, 친구는 침착하게 "비건 한 지 이틀밖에 안 지나지 않았어?"라고 물어봐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 친구가 웃음을 어떻게 참았는지 신기하다. 다만 현기증을 염려하던 내 마음은 정말 진지했고, 친구는 내 결심을 쉽게 비웃지 않는 사려 깊은 성격이었다. 이후 한국에서 비건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처절히 깨달으면서,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무 살 때는 마냥 야하다고 낄낄대며 보던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을, 비건이 된 후 또 읽을 적엔 카페에서 엉엉 울어버릴 정도였으니.


싫어하던 채소와도 놀라울 만큼 친해졌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토란, 연근, 마, 가지 등은 없어서 못 먹는다. 채소만 보면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러니까 주말 텃밭을 하게 된 것은 채소를 직접 길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렴, 순전히 가성비 때문일 리가!) 당시 나는 채식 요리 블로그도 신명 나게 운영했다. 수확해온 탐스러운 채소들로 요리하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서툰 비건일 때라, 엉터리 레시피도 꽤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딸랑구 해주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장미꽃 한 송이(@>---)도 두고 가곤 했다. 기억나는 악플도 있는데, 우리 집 식탁과 식기가 부내가 난다는 비아냥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나 유기농 채식을 외친다는 뜻이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사람이라는 걸 알 리가 없을 테니.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은 결말을 말하자면, 주말 텃밭을 향한 애틋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풀도 생명이랍시고 일절 베지 않았다가, 장마가 지난 후 풀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풀이 내 키보다 크게 자라나 밭 가운데로는 걸어갈 수조차 없었고, 너무 달라진 풍경에 어디에 뭘 심었는지도 가물거렸다. 엄마는 이러다 뱀 나온다며 제발 풀을 베라고 했다. 뱀이라니. 내가 미디어에서 보던 목가적인 풍경엔, 갈색 바구니를 들고 살짝 허리를 숙인 채 토마토를 톡톡 따 넣는 장면만 있었다. 정글 같은 풀 틈에서 엉거주춤 오이를 발굴하다가, 뱀을 두려워하며 발아래를 자꾸 확인하는 장면은 없었단 말이다. 애지중지 기른 고구마는 언제 캐는 줄도 몰라 방치하다가, 서리 범이 몽땅 털어간 이후로 주말 텃밭은 그만두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서리 범이랑 다를 건 없었다. 풀과 뱀이 무서워진 이후, 밭에서 열매를 '쏠랑' 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오는 날들이 늘어났다. 철저하게 도시 경험만 쌓여있던 내 몸에, 자연과 날카로운 첫 만남은 버거웠다.


당시 내 감수성은 딱 그 정도였던 듯하다. 비건이 되면 단골처럼 찾아오는 질문 한 가지는 "식물은 안 불쌍하냐?"이다. 그땐 엄청 불쾌해하던 질문인데, 이제 와 보면 이건 굉장히 본질적인 질문이다. 비명을 못 지르는 식물이라도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나를 먹여 살려온 것들은 많았다. 특히 고구마를 아주 좋아해서, 고구마에 달린 빚이 꽤 많을 것이다. 고구마를 사다 준 엄마에게 고마워하거나, 판매하는 상인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건조하게나마 표현을 해왔지만, 고구마에는 고마워할 줄 몰랐다. 


고구마가 자신을 먹는 대신으로 어떤 대가를 바랐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마는 지구상의 모든 자연이 그렇듯,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생명을 내어주었다. 나는 고구마의 사랑을 깨닫기에는 너무 미성숙해서 감사함을 돌려주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텃밭과 작물에 희미하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들과 진심을 주고받는 데에는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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