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칩코 Feb 11. 2022

엄마가 걱정하는 미국칩코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미국이 내게 준 변화를 엄마가 모두 반긴 건 아니다. 나는 나를 한 겹 한 겹 벗겨가고 있었다. 돈을 적게 벌고 자급하려면, 불필요한 것을 추려내야 한다.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필요한 일만 하면서. 화장품이나 샴푸도 내 삶에서 덜어내게 되었다. 없어도 살 수 있으니까! 구두나 치마 같이 실용성 없는 옷과도 멀어지고, 예쁘기만 하고 불편한 속옷도 찾지 않게 되었다. 특히 브래지어는, 내겐 정말 필요가 없었다. 가슴이 커서 브래지어 없이는 활동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 브래지어는 별 특별한 임무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점점 브래지어를 버렸고, 아주 편한 것만 한두 개 남겼다. 옷이 두꺼우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때는 아이돌 설리가 숨만 쉬어도 기사가 나는 시기였다. 나는 SNS도 자주 안 했으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만큼 주위에서 소식을 많이 들었다. 바로 그녀가 브래지어를 안 한다는 사실이 인터넷을 달군 모양이었다. 젖꼭지의 윤곽이 버젓이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그걸 무려 인터넷에 올렸다더라! 무려 여자 아이돌이! 나는 설리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 그녀가 편한 운동복을 입고 두 팔을 벌린 사진이 보였다. 그녀의 젖꼭지로 추정되는 윤곽도 보였다. 확실히 낯선 사진이었다. 나라면 이런 사진은 못 올릴 텐데, 내가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도 짜릿했다. 나라도 편한 운동복에는 브래지어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옷차림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두 팔을 벌린 그녀가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도 너네처럼 젖꼭지 있다!


나는 미시간에서 설리 같은 여성을 매일 만났다. 아주 많은 여성이 해변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젖꼭지가 툭 튀어나온 옷을 입고 다녔다. 이게 아메리카인가. 사람들은 그녀들을 빤히 쳐다보지도, 불쾌해하거나 신기해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자신이 눈이나 코가 달린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젖꼭지가 달린 것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또 심장이 방망이질했다. 매일 입던 와이어 없는 브래지어마저도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집을 나서게 되었다. 내 젖꼭지가 누구 눈을 찌르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내 눈이라도 찌르는지 자꾸 위축되어 어깨를 굽히게 되었다. 여긴 미국이니 내가 젖꼭지를 내놓는다는 사실로 누가 놀라진 않더라도, ‘와 가슴이 저렇게 작다니!’ 하면서 놀랠 것 같기도 했다.


하루는 같이 연수 왔던 한국인 친구가 조심스레 "칩코야. 너 브래지어 깜빡했나 봐!"라고 말해주었다. 난 내가 굉장히 어색하고 쫄았다는 것을 짐짓 숨기면서, "일부러 하지 않은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 대답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설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자신은 설리가 관심을 받으려고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다고. 나는 그때 페미니즘이고 뭐고 어떤 언어도 배우지 못한 채였다. 갑자기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세상 사람들이 설리를 비난하듯이 나를 욕할 것만 같았다. 무슨 배짱인지 "젖꼭지 내놓은 게 죄짓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대답해버렸다. 내가 내놓을 젖꼭지가 있는 걸 어떡해.


한국에 돌아와서도 난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 미국에서 브래지어를 안 하면, 내가 꼭 그 브래지어 안 하던 멋진 언니들이 된 기분도 종종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영 기가 죽었다. 설리 기사가 또 날 때마다 내가 욕을 먹은 듯 움츠러들기도 했다. 엄마는 여기가 아메리카는 아니지 않느냐, 아빠 앞에서만이라도 브래지어를 하라면서 날 걱정했다. 엄마에게 젖꼭지를 왜 내놓아도 되는지 설명하진 못했지만,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납득할만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저러한 마음의 부대낌에도, 난 꿋꿋하게 젖꼭지를 내놓고 다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