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호령하던 가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얀 병원 침상 위에 위태롭게 누워있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으로.
기계적인 숨소리만이 들리는 병실 안에서, 나는 아빠의 앙상해진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한때 우리를 이 낯선 땅으로 이끈 단단한 손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원망을 쏟아내기에는 아빠는 너무나 약해져 있었고, 용서하기엔 우리의 상처가 여전히 선명한 흉터처럼 욱신거렸다.
재회는 그렇게 눈물겨운 감동도, 시원한 폭발도 없이 서늘한 병실의 공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무너진 기둥 앞에 선 우리는, 각자가 짊어진 고독을 말없이 곱씹을 뿐이었다. 병원 침상 위에서 마주한 아빠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1년 남짓이었다. 의사가 던진 그 짧은 선고는 우리에게 용서를 강요하지도, 원망을 허락하지도 않은 채 그저 곁에 머물 것을 명했다. 엄마는 지극 정성으로 아빠를 간호했다. 그것은 다시 타오른 사랑이라기보다, 훗날 자신을 갉아먹을지도 모를 '후회'라는 괴물을 미리 잠재우기 위한 처절한 속죄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는 기어이 아빠를 집으로 모셔왔다. 비록 예전처럼 마당에서 바베큐를 굽거나 강아지와 뛰놀 수는 없었지만, 아빠는 병상에 누워 우리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발소리를 들었고 엄마가 정성껏 차려낸 음식의 향기를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한 얼굴로 우리를 또다시 갑작스레 떠났다. 그동안의 고단함과 수치심을 모두 내려놓은 듯, 입가에 인자한 미소까지 띄운 채였다. 홀로 쓸쓸히 눈을 감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슬픔보다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아빠가 떠난 뒤, 내 삶은 지독한 방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