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멍

깊은 바다

by 윤슬


지독한 마음의 전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떠나보낸 사랑에 대한 저주였을까. 나는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빠른 승진과 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영혼이 텅 빈 채 벌어들인 돈은 내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이 돈을 써야 할지, 이 성공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지독한 쇼핑 중독에 빠져들었다. 화려한 옷과 값비싼 물건들로 몸을 휘감아 보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비 내리는 바닷가에 홀로 서 있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물건을 사들이는 그 짧은 순간의 쾌락만이 내장 깊숙이 들어찬 공허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비단 경제적인 기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책임감'이라는 굴레와, 채우려 할수록 더 크게 뚫리는 마음의 구멍이었다.


나는 화려한 성공의 탑 위에서,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그 바닷가와 이제는 곁에 없는 아빠의 미소를 번갈아 떠올리며 위태로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세월이라는 파도가 들이쳐 기억의 모서리가 조금씩 마모되고 흐려져 가지만, 영혼이 유독 메마르고 고단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 두 가지 생각이 망령처럼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하나는 아빠에 대한 뒤늦은 연민과 부채감이다. '과거 아빠의 그 처절한 희생과 수치심 섞인 노고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이 낯선 땅에서 이만큼의 평온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내가 누리는 이 화려한 성공의 밑바닥에 아빠의 부서진 건강과 외로웠던 10년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내가 받은 유산이 축복인지 아니면 평생 갚아야 할 빚인지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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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끝내 외면했던 그 바닷가의 푸른 눈동자다. '만약 그때 내가 성공에 대한 허기를 조금만 늦췄더라면, 내 감정에 비겁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계절을 함께 걷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성공과 부를 선택한 대가로 얻은 이 팍팍한 도시의 삶이, 정작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바꾼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이 두 마음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나를 저주한다. 아빠를 이해하려 하면 사랑을 버린 내 이기심이 고개를 들고,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면 아빠의 희생을 욕되게 하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차오른다. 힘든 날이면 이 모순된 감정들이 약해진 틈을 타 내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성공한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계절이 거꾸로 흐르는 이 땅에서, 나는 여전히 과거의 어느 지점에 발이 묶인 채 현재라는 시간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 몸의 상처처럼 남은 첫사랑의 시린 통증과, 병상 위 아빠의 인자했던 마지막 미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아니면, 평생 이 시린 감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내가 선택한 야망에 대한 기나긴 형벌인 것일까.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