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이런 스파게티는 처음이다!

쿠바, 산티아고 데 쿠바

by 월세부부

오늘도 역시, '치노'(중국인)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꼬레아 데 술' 그러니까 '남쪽에서 온 한국인'이라고 진심을 다해 답했다. 그러나 우리도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대부분 무시했다. 간혹 비아냥거리며 '치노! 치노!'할 때는 입을 확 꿰매 주고 싶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를 내뱉으며 무신경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이었다. 가끔 욱! 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랐고 매번 이렇게 당하기만 하다가는 조만간에 눈에 보이는 쿠바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때릴 것 같았다.


대안이 필요하다. 대안이!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효과는 대만족! 우린 '치노'라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는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어로 감사합니다인 '오브리가도'로 답했다. 당황하는 얼굴들이란! 아우~ 재밌어~ 아우 고소해~ 이제 너희들이 '치노'라 부르면 우린 '오브리가도'로 답할 거야! 짜식들 포르투갈어도 모르면서.


산티아고 데 쿠바는 말마차가 많은데 관광용이 아닌 엄연한 교통수단이다. 아무리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는 하지만 우주에 위성을 쏘고 하늘 위로 정신없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에 말마차라니! 혹시 쿠바 사람들에게 우리는 미래에서 온 사람?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타임머신 없이도 쿠바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말마차를 탔다.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가 듣기 좋았다. 2km 남짓 타고 내려 지불한 금액은 단돈 50원. 돈을 내면서 미안하기는 처음이다. 잠시나마 시간여행까지 했는데...


쿠바 수도인 아바나로 돌아가는 까미욘(트럭)을 알아보기 위해 터미널에 갔다. 수많은 택시 기사들과 까미욘 차장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었고 곧바로 흥정이 시작됐다. 한 차장은 우리가 스페인어를 모르는 것을 간파했는지 한 사람당 5 쿡이면(5달러) 충분한 요금을 40 쿡이라고 했다. 날씨가 더워서 정신이 잠시 어떻게 된 건가? 이 양반아! 40 쿡이면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비아술 버스를(외국인 전용버스) 타지! 우리가 왜 여기서 땀 질질 흘리며 이러고 있겠어! 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자 그 차장도 따라 웃었다.

저녁에 가이드 책에 소개됐고 주말 내내 현지인들이 긴 줄을 섰던 이탈리안 식당에 갔다. 어라? 오늘은 평일이라 줄이 없는 건가?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식당 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제법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듯 메뉴판을 꼼꼼히 확인한 후 스파게티 두 개와 맥주 두 병을 시켰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아내와 건배를 하고 한 모금 들이켰는데... 악! 이게 맥주야? 오줌이야? 황당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자 아내도 맥주에게 싸대기를 맞은 얼굴을 하고 조용히 맥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살짝 불안해지는데... 정말 괜찮은 거겠지? 얼마 후 주문한 닭고기 스파게티와 치즈 스파게티가 나왔다. 비주얼, 충격적이다! 접시 안에 맹물이 흥건한데? 쿠바에서 스파게티는 국인 건가? 면 사이사이 박혀있는 치즈 덩어리들은 왜 이렇게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잠깐! 비주얼은 이래도 맛있겠지. 맛있을 거야. 가이드 책에도 나왔고 긴 줄 서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잖아! 그래도 왠지 불안하다.


난 스파게티 중앙에 꽃처럼 꽂혀있는 닭고기 하나를 집어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 씹었다. 헉! 이 닭 비린내는 뭐야! 주방장 어디 있어! 주방장 나오라 그래! 당장! 아니다. 아직 면을 먹지 않았다. 오버하지 말고 면을 먹어보자. 생닭 같은 닭고기를 우물거리다 대충 삼킨 후 면을 집어 들었다. 스파게티면이 아니네? 우동면인가? 으악! 오랜만에 강적을 만났다. 물에 완전 팅팅 불어 터져 혀에 닿기만 해도 뚝뚝 끊어지는 '차가운' 우동면발 같은 면. 접시 안의 흥건한 신맛 나는 맹물. 그 신맛 나는 맹물과 섞인 치즈.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입에 맞지 않았던 브라질 음식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다 먹었던 나인데 이 스파게티는 '브라질 음식 예방접종'을 한방에 무력화시켰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머리 속에서 필름이 주르륵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충격적으로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필름이 지나가는구나. 젠장!


사실 고백할 게 있다. 이 곳에 오기 전, 아바나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서 그냥 버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감자를 잘게 잘라 튀긴 앙증맞은 감자튀김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는데... 아니었다. 그건 돼지기름을 튀긴 '돼지기름 튀김'이었다. 돼지기름을 튀긴 튀김이라니? 말 그대로다. 기름을 튀긴 튀김이었다. 맛은... 그러니까 돼지가 입 안에 기름을 토하는 맛이랄까?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맛이었다. 이 스파게티는 그 돼지기름 튀김을 이기는 맛이었다.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스파게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기억이 30분 전으로 되감아지면서 이 식당 부엌 내부가 그려졌다.

주방장은 충분히 익힌 스파게티를 찬물에 넣고 의자에 앉아 빈둥거린다. 주문이 들어온다. 주방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팅팅 불어 터진 면을 파란 채(꼭! 파란 채어야 한다)로 건져내 곧바로 접시에 담는다. 접시에는 누가 봐도 물이 흥건하다. 주방장은 물이 흥건한 접시에 식초를 때려 붓고 치즈를 꺼내 면 위에 대충 장식한다. 음식이 완성됐다고 '땡'하고 종을 울린다.


우리가 먹은 '스파게티'는 바로 그런 맛이었다. 아! 맞다. 주방장은 그 와중에 소금을 넣는 것을 까먹었다. 오! 주여! 지금 누군가 까나리액젓을 원샷하라고 하면 당장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스파게티를 다 먹으라고 말한다면 난 차라리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무기한 단식투쟁을 하겠다. 이 스파게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나저나 이 식당을 추천한 가이드 책 편집자는 한국인이 아니라 쿠바인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없다. 음식은 호불호가 갈린다. 쿠바는 공산품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파게티는 우리에게 '정말' 맛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