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삼겹살이라니!

포르투갈, 리스본

by 월세부부

카우치서핑 호스트 바스코는 저녁 6시경에 오라고 했다. 수많은 급경사 계단들을 오르며 겨우 집 앞에 도착. 딩동! 잠시 후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난 Sang이라고 해. 반가워. 여기는 내 아내 Jin. 프로필 사진이 두 배는 확대된 듯한 덩치 큰 바스코와 인사를 하고 거실로 나오는데 다른 방에서 전자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내 친구 루이스. 반가워. 그들과 인사를 한 후 짐을 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스코가 영어로 횡설수설하더니 30분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뭐라고? 30분만? 우리 방금 들어왔는데... 냉수 한잔도 못 먹었다구! 라는 말이 혀 끝에서 똑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집주인이 나가라는데 게스트인 우리가 버틸 재간은, 없었다. 집에서 나와 ‘강제 산책’을 하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지? 꼭 경찰에 좇기는 사람처럼? 혹시 둘이 사고라도 친 건가? 그리고 그 피아노 치는 친구는 뭐지? 프로필에는 다른 친구 언급은 없었는데... 설마 우리 물건들을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 포르투갈어를 전혀 모르는 벙어리 부부가 땀 뻘뻘 흘러가며 힘들게 찾아왔는데 1분 만에 문전박대라니! 집에 도착하면 샤워하고 저녁 먹고 대화하고 숙면을 취하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은 순식간에 ‘와창창’ 깨졌다. 저녁에 맥주라도 먹을 겸 근처 마트에 갔다. 맥주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무심코 본 육류코너. 그곳엔 두 눈을 사로잡는 그러니까, 삼겹살로 보이는 고기가 떡하니 누워있었다. 믿기지 않아 팩을 들고 잠시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고기 중간에 박힌 하얀 오돌뼈와 밑 부분에 적당히 자리 잡힌 지방층! 삼겹살이었다. 그램수를 확인했다. 한 팩에 들어간 삼겹살은 대략 500~600그램 정도로 둘이 먹기 딱 좋은 양이었다. 가격을 봤다. 1유로? 뭐지? 이 팩이 1300원이라고? 설마? 말도 안 돼. 분당에서 자주 갔던 하나로마트가 생각났다. 주말에 고기 먹고 싶으면 500그램에 12,000원 정도 하는 삼겹살을 종종 사 먹었는데 1유로라니. 혹시 삼겹살을 가장한 값싼 소시지 같은 건가? 내 눈에는 분명 삼겹살로 보이는데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곳이 타국이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동공과 함께 심하게 흔들렸다. 물어보고 싶었다. 이 삼겹살이 1유로가 맞는지. 직원에게 돼지고기가 맞는지 물었다. 그녀는 영어를 잘 못 알아 들었는지 몇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pig’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때다 싶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질문을 날렸다. 1유로가 맞냐고. 그녀는 다시 한번 이 중국인들 뭐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맞다고 했다. 1유로가 맞다고. 대박! 한국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밖에 사 먹을 수 없는 돈으로 삼겹살 한 근을 살 수 있다니! 당장 사고 싶었다. 아니 삼겹살을 들고 생으로 라도 뜯어먹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바스코 집에서 문전박대당한 이유도 알아야 하고 적응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1시간 넘게 산책을 한 후 맥주와 물을 들고 바스코 집에 들어갔는데 아까와는 달리 집안에는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시뮤에이션이지? 12평 남짓 되는 바스코 집에는 우리를 포함해 총 9명이 있었다. 카우치 서핑하는 집이라기보다는 무료로 재워주는 호스텔 같았다. 바스코보다 영어를 좀 더 잘하는 루이스가 입을 열 때마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들이 폭죽처럼 팡팡 터졌다. 이 집은 바스코 집이 이나라 내가 월세를 내는 집이고, 카우치 서퍼 호스트가 나 바스코 이렇게 2명이야. 그래서 이렇게 서퍼들이 많은 거지. 아 그리고 아까 너희들을 급작스럽게 내보낸 것은 집주인이 오늘 월세 받으러 오는 날인데 서퍼들이 우글거리면 여러 가지로 상황이 안 좋을 것 같아서 급하게 나가 있으라고 한 거니까 이해해줘. 그랬구나! 바스코 프로필에는 언급조차 없었던 것들을 눈 앞에서 보고 있자니 일시적으로 머리 속의 신경다발들이 끊어진 것처럼 잠시간 멍~했다. 멕시코 걸이 만들어준 토르티야를 먹으며 대화를 하는데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물어보지 않아도 씨에씨에, 메르씨, 오브리가도, 그라시아스 하며 자신의 언어로 감사합니다를 알려줬다. 아. 이제 그만! 우리 지금 무지 졸리단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해 먹고 다양한 문화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한국에서 했던 카우치서핑이 애피타이져였다면 이곳 리스본에서 하는 카우치서핑은 메인 요리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싱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아내 쪽으로 몸을 붙었다. 여기서 혹시라도 침대에서 떨어지는 날에는 침대 바닥 밑에서 곤히 자고 있는 프랑스 걸, 브라질 걸에게는 대형참사다. 최대한 아내 쪽으로 붙어야 한다. 최대한! 다음날 오전, 전망대에 올라갔다. 리스본은 고풍스럽고 이뻤고 하늘은,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노래가 질투할 정도로 파랗고 파랬다. 멋진 '그래피티'(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한참 둘러보다가 어제 삼겹살 보고 한번, 가격 보고 또 한 번 놀랐던 마트에 다시 갔다. 들어가자마자 두 팩 구입. 1.9유로. 한국 돈으로 2500원.

집에 돌아와 팬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팬은 없었다. 대신 바닥코팅이 까진 냄비와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진 마늘 한통이 이런 상황에서 고기를 구울 수 있겠냐? 는 듯 실실 웃고 있었다. 이런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우린 오늘 삼겹살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저 말라비틀어진 마늘과 함께! 궁한 대로 냄비에 삼겹살을 넣고 불을 켰다. 귓가에 치이이익~ 소리가 여름 매미처럼 시끄럽게 들릴 때쯤 아이슬란드에서 산 소금과 갈릭 후추를 삭삭 뿌린 후, 마지막으로 냄새를 잡아주고 삼겹살 풍미를 더해 줄 마늘을 투하시켰다. 냄새, 죽인다! 리스본에서 삼겹살이라니. 하하. 삼겹살이 자신의 기름을 쥐어짜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졌을 때쯤 고기들을 정성스럽게 접시에 담았다.

삼겹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쫄깃함, 그리고 뒤 따라오는 무서운 감칠맛. 그래. 이 맛이지! 한입 더 씹자 분당 하나로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삼겹살을 굽는 모습이 보였고 또 한입 씹자 상추에 삼겹살, 마늘 등을 올리고 찢어질 듯 입을 벌리며 쌈을 밀어 넣고 있는 우리가 보였다. 묵언수행을 하듯 우린 아무 말 없이 삼겹살을 먹고, 또 먹고, 쉬지 않고 입으로 밀어 넣었다. 히말라야 정복한 것처럼 왠지 모를 이 뿌듯함은 뭐지? 오늘 먹은 삼겹살은 집 떠난 배고픈 배낭여행자들에겐 힐링푸드였다. 힐링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