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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부부 Jan 31. 2021

유튜브 채널을 모두 삭제했다.

유튜브 이야기, again!

이렇게 좋은 것을~

이렇게 편안한 것을~

그놈의 '탐욕' 때문에 2주간 생고생을 했구나.


작년 6월에 '회사 다니면서 소소하게 돈을 벌고 싶어서' 일주일간 유튜브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요리 채널과 산책 채널을 동시에.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


즐겁지 않았고, 콘텐츠를 만들며 내 시간, 내 인생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동영상을 만들 때 아내와 사소한 언쟁이 오갔다.

양파는 이렇게 잘라야 되고, 

이거 볶을 때는 나와 자리를 바꿔서 이렇게 찍어주고,

산책할 때는 잠시 대화를 중지하고. 등


https://brunch.co.kr/@chita000/27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실제 해보니 전혀 달랐다.

영상은 대충 찍으면 재미없었고 최선을 다해 찍으려고 하면 아내와 의견 충돌이 났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그래서 작년에 요리, 산책 채널을 일주일 정도 하다가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올해 초. 갑자기 유튜브를 다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처럼 다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월세 부부'라는 여행채널을.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쪼깨서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여전히 유튜브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고 

한 개 동영상을 올리면 곧바로 침대에 눕기에 바빴다.

그렇게 6개 동영상을 올렸을 때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6월에 유튜브 하는 게 즐겁지 않다고 해서 포기했는데 난 왜 다시 하고 있는 거지?

난 작년에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을 때와 

지금 채널을 만든 이유가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 자문했다.

여전히 즐겁지 않았고 

여전히 회사를 다니면서 소소하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동영상 하나를 올리는 것은 중노동처럼 느껴졌다

(동영상 편집하는 동안 클릭을 많이 해서 한 동안 검지 손가락이 아팠다).

그리고, 여전히 각 동영상 조회수는 20회를 넘지 않았다.


즉, 작년에 유튜브 채널을 만들 때와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여행 채널이라 내가 올릴 콘텐츠가(그것도 몇 년 지난) 많은 정도?


사실 이때 멈췄어야 했다.

사실 이때 유튜브 여행채널 '월세 부부'를 깔끔하게 지웠어야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주제에 맞춘다면 채널 구독자와 조회수는 금세 늘어날 거야.

그렇게 시작된 검색, 분석, 트렌드 파악...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국민청원을 읽어주는 남자' 채널에 첫 번째 동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 사회적인 이슈는 40대 이상 사람들이 많이 볼 거야.

꾸준히만 올리면 될 거야.

그렇게 세 번째 동영상을 올린 후 방전된 배터리처럼 침대에 늘어져 있는데 

며칠 전에 자문했던 그 질문.

유튜브를 왜 다시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다시 머릿속을 콕콕 찔러댔다.


난 왜 유튜브 채널에 집착하는 걸까?

난 왜 소소하게 돈 벌고 싶다는 유혹에 계속 빠지는 걸까?

난 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


유튜브 채널에 올릴 동영상 만드는 것 때문에 

저녁 시간은 뭉텅이로 뽑혀 날아갔고,

아내와의 대화도 줄었고, 책 읽으며 사색하는 시간도 줄었으며, 

심지어 수면 질도 떨어졌다. 

결정해야 했다.

유튜브를 지금처럼 꾸역꾸역 하며 버틸지 

아니면 작년에 만든 계정을 포함해 올해 초에 올린 모든 동영상 및 유튜브 계정을 삭제해야 할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내가 유튜브를 하지 않고 예전처럼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자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했다.

맞아. 나도 그게 사실 훨씬~ 좋아!


요리, 산책, 월세 부부, 국민청원을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모두 삭제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난 채널을 삭제한 후 이전부터 읽고 싶어 했던 책 7권을 주문했다.


요즘엔 예전처럼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잔다.

그리고 일어나 커피 한잔을 먹으며 다시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긴다.


유튜브 채널을 삭제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불혹을 지나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탐욕' 앞에서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가 나라는 것이다.


난 그래서 어제처럼 오늘도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하지 않는 것을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며 다짐한다.

내 생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탐욕에 휩싸이지 않도록. 

성공보다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덧: 최근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을 읽었는데 SF 단편소설이 전혀 유치하지 않아서 놀랐고 김초엽 작가가 1993년생이라서 더 놀랐다.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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