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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부부 May 13. 2021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

5월 8일 어버이날

어머니, 누가 아파트 산데요?

어. 계약금 300만 원 보낸다고 하니까 돈 받으면 부동산에 연락해봐라.

네에.


작년 초, 15년 넘게 가지고 있었던 아파트를 팔기 위해 부동산에 내놨다.

그런데 코로나가 훅! 하고 덮쳤다.

부동산에 사람들이 뚝 끊겼고 아파트 매물들은 개똥보다 못한 몸값이 돼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누군가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부동산을 통해 연락이 왔다.


이 아파트는 순전히 어머니 때문에 샀다.

그 해 어머니는 나만 보면 아파트 타령을 했다.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파트 33평에는 방에 몇 개나 있으려나?

요즘 내 소원은 아파트에서 사는 거다 등등.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흘려 들었는데 볼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아파트 이야기 듣다 보니 그래 이 참에 아파트를 떡 하니 사서 효자 소리 한 번 들어보자! 하는 오기와 다짐이 생겼다.


어머니가 찜해놓은 아파트 가격은 1억 1천만 원. 500백만 원을 깎고 1억 대출을 받아(담보 대출 + 신용대출) 현금 500백만을 더해 겁 없이 아파트 하나를 샀다.

회사 사람들은 500백만 원으로 1억 넘는 아파트를 산 것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난 오로지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샀을 뿐이었다. 재테크에 ‘재’ 자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매월 원금과 이자에 허덕이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나 혼자 살기에는 아파트가 너무 크다.

난 지금처럼 살던 집에서 살고 아파트는 전세를 놓은데 나을 것 같다.

네에? 전세요? 어머니,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땐 그랬는데 막상 사고 보니 지금 집에서 사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아들아!

하아. 네에. 그럼 전세 놓고 전세금 받으면 대출 갚을게요.


그때는 정말이지 어머니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아파트 한 채라도 가질 수 있도록 어머니가 꾀를 낸 것임을 알았다.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쓰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부동산에 갔다.

매수자로 보이는 모자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테이블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와 아내는 가볍게 인사를 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매매 계약서 들고 가져와 처음부터 끝까지 토시 하나 빼먹지 않고 또박또박 읽으며 매수인 모자와 매도인 내 얼굴을 보며 ‘나 잘하고 있지!’하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이건 꼼꼼함을 넘어서 지치는 느낌인데...

아무튼 계약서 싸인만 하면 된다.

조금만 참자. 꼬르륵~


인내력이 거의 다 소진될 쯤에,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부동산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아내는 수고하셨습니다! 말과 함께 거의 도망치듯 부동산을 빠져나왔다.


어머니 힘드셨죠?

계약서 하나 쓰는데 왜 이리 오래 걸리냐!

그러게 말이에요.

뭐 드실래요?

집에 밥 차려놨어. 집으로 가자!


몇 달 전 동생네 집에서 짜장면을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맛나게 드시는 걸 보고 오늘 중국집에 가서 이것저것 시켜서 먹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한 발 빨랐다. 이게 바로 부모와 자식 간의 생각의 차이이자 사랑의 크기겠지?

오랜만에 어머니표 매운탕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대뜸 며칠 전 세탁기가 고장 나서 손빨래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세탁기 하나를 샀다고 했다.


왜 이야기 안 했어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동시에

난 왜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화살처럼 팍! 꽂혔다.

내가 무심했다. 무심했어!


카네이션도 못 사 왔는데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세탁기로 드릴게요.


어머니에게 계좌 이체하면서 그나마 이 정도의 돈을 아내 눈치 보지 않으며 보내주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과

한 편으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효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점심에 먹었던 음식들이 유리창 위로 휙휙 지나갔다.


앞으로 어머니가 직접 해주는 음식을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1년 10번 정도로 잡으면 10년이면 100번이고

20년이면 200번이다.

내가 하루에 두 끼를 먹으니 100일 동안 매일 먹을 수 있는 횟수다. 딱 100일 동안. 그 와중에 어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 횟수는 좀 더 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점심에 먹었던 그 칼칼하고 깔끔한 매운탕을 다시 먹을 수 있을까?

조개가 적당히 들어간 구수한 된장찌개는?

집에 잠깐이라도 들르면 바리바리 싸주었던 각종 나물들과 동태전은?

매콤 달달한 양념 꽃게장은?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더 맛있거나 더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만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그 수많은 음식들은 먹을 수 없을 거다.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모든 것이 아득해지고 절로 손에서 땀이 난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데
나도 평범한 인간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이 날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일하는 시간, 자는 시간,

스마트 폰 보는 시간,

주식 공부하는 시간,

책 읽는 시간,

  취미활동을 하고 나면 실제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은데,

어머니에게 무한정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무한정 나를 기다려 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금세 잊곤 한다.


집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김진호 가수가 부른 ‘가족사진’ 노래의 한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


생존이라는 불 속에 온몸을 던졌던 어머니 희생 덕분에

나와 내 동생은 무사히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갑자기 궁금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아들일까?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아들이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에게 소중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47년간 키워주셔서,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미안해하는 마음은 건강으로 보답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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