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다시, 피아노》
오늘은 인사를 생략할게요. 왜냐고요?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요.
‘우리는 과연 업을 찾은 걸까’, 무거운 질문을 받아 들고 오래도록 고민하다 앉습니다. 해석의 향방에 따라 답도 달라지겠지요.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업은 생각보다 유연하다는 점입니다. 사회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업이 입은 몸을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나 싶거든요.
그건 제 생각이고, 다른 분들의 고견을 들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하지만 ‘업’은 다르다. 업은 타고난 나의 적성으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뜻한다. ‘직’이 하나의 직함으로 하나의 가능성밖에 담지 못한다면 ‘업’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양한 일로, 다양한 모습으로 끝없이 파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 나는 디자이너, 즉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회사 밖에서 나는 ‘디자인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디자인’이라는 ‘업’을 아주 다양한 곳에서 원 없이 활용하고 있다. <럭키 드로우> p.164
가치와 재능을 합치는 편이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곳에 당신의 천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학교 |일|> p.106
자아실현으로서의 업과, 사회적 책무로서의 업이 일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겠지만, 그 또한 이루기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후보 도서가 여러 권 떠오를 때마다 갈림길에 서는 기분입니다만 오늘은 특히 그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필화 님의 책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게요.
《츠바키 문구점》은 아마도 2-3년 전쯤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수기로 독서노트를 적던 때라 혹시 하며 노트를 뒤졌는데 정말로 짧은 감상이 있더군요!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필업 하면 역시 고스트라이팅인데 일본의 대필업은 흐늘흐늘하고 물컹물컹, 어쩐지 본인도 제대로 모르는 마음을 글씨와 종이와 문장의 형태를 입혀 빚는 일 같다. 책은 계속 읽고 싶은데 휴식이 필요할 때, 피곤해서 아무 생각 없이 잔잔한 풍경이나 소소하게 예쁜 장면들을 눈에 담고 있으면 코르티솔 수치가 저절로 떨어지는 듯이…(중략)
그나저나 이렇게 아기자기한 일로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 있다니 정말 판타지스럽게도 느껴집니다(솔직히 저는 일본문학을 꽤 읽지만, 일단의 말랑감성소설들을 읽다 보면 그… 정말이지, 일본 음식과 너무도 닮았다!라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더군요. 공감이 가실까요…). 현실을 배경으로 삼았다 뿐이지 허구의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보다 더한 판타지가 의외로 흔하답니다.
저는 시니컬하게 이렇게 중얼거리곤 하죠. 고담시티야말로 리얼이지…
물론 착하고 순수한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힐링소설들에 억하심정이 있진 않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엔 하기도 했었지만, 저라는 인간 자체가 비뚤어진 데가 있어서 그런가 그건 범접 불가능한 성역에 가깝더군요.
오케이, 이건 내가 손댈 게 아니었어. 세상의 어떤 일들은, 포기하면 편합니다…
아무튼 포포의 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자면, 저는 포포의 업의 본질은 ‘대신 표현해 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저만의 해석입니다. 세상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남들이 보기엔 그토록 뻔히 보이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나고 소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골라온 책은, 자신의 업을 누구보다 확실히 파악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업’을 갖지는 못했으나 업계 종사자 못잖게 그 일의 대상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이 이 책의 제목이에요.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피아노를 오랫동안 사랑했으나 현재의 삶에서는 피아노와 아무런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던 저자는 우연히, 운명처럼, 살던 곳에서 희한한 가게를 발견합니다. 일견 중고 피아노 가게, 수리점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장소에 마침내 용기 내어 발을 디뎠는데, 이게 무슨 수난입니까. 저자는 박대에 가까운 응대를 받고 쫓겨나다시피 하게 되죠.
기억하기로, 여기까지의 책소개를 읽고 저는 이 책을 주문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저의 처지와 저자가 아주 비슷했어요
.
필화 님은 모르셨겠지만 저는 악기를 꽤 오래 연주했습니다.
클래식 기타를 가장 오래 쳤고, 피아노는 그 다음입니다. 플룻도 3-4년간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여하간, 저는 그 당시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금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몸이 꽤 달아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지금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악기입니다. 저희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은 사실 저를 가르쳐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니 저까지 레슨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 레슨은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가끔 피아노를 칩니다. 다행히 저의 조기교육(?)이 성공해서, 큰아이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자랐습니다. 고급 모델로 피아노를 바꿔 달라는 요청이 수시로 들어오는 것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겠군요.
그는 이런저런 피아노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 뒤늦게 생각난 것처럼 가격을 덧붙였다. 뤼크는 피아노로 이루어진 이 풍경에 관해 개인적인 느낌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가치평가는 독창적이었고, 가끔은 기묘하기도 했으며, 또 매혹적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중고 피아노에 관해, 파리의 시장에 관해, 그리고 특히 뤼크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p.32
자신의 지식을 이렇게 거침없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현학적인 수사 따윈 일절 없이,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귀하니까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 피아노가 얼마나 하죠?”
“만 오천 프랑이에요.” 뤼크는 서두는 기색 없이 대꾸했다. “물론 배달비와 조율비 다 포함해서죠.”
나는 가서 집의 공간을 재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내가 그것을 살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사실 뤼크는 나보다 먼저 분명하게 알았던 듯싶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하긴, 정열과 갈망이 어우러지는 현란한 세계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우리 자신을 많이 드러내게 된다. p.48
고객과 오래 시간을 두고 소통하면서 그에게 딱 맞는 단 하나의 물품을 애써 찾아주는 것은 마치 옛이야기 속, 주인공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주는 현자 같은 느낌마저 풍기죠. 너무나 당연하게도 저자는 뤼크(가게 주인)가 추천한 피아노를 보자마자 운명 같은 끌림을 느낍니다. 신기하지 않은가요?
뤼크는 19세기 초 피아노들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음을 현대생활의 음향적 풍경과 대비하곤 했다. “아무리 정확하고 순수하다 해도 이제 원래의 감미로운 소리에는 사람들이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재즈건, 클래식이건, 팝이건 소리는 늘 크고 밝아야 해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죠.”
뤼크는 그것을 우리가 노트르담을 보는 느낌에 비유하곤 했다. 중세 말 사람들이 그것을 보던 느낌과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파리 중심부에서 그 성당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그 건축, 조각 예술,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방법 등에 관해 모르는 게 없다. 그러나 그 규모 자체는 오늘날의 마천루나 에펠탑과 비교하면 대단치 않다. 우리는 그 성당만을 따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예를 들어 1350년에 파리에 처음 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파리 분지로 들어오면 도시의 큰 부분이 자그마한 강 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돼요. 집도 소박하고, 공공건물도 삼층을 넘지 않죠. 그런데 강의 한 섬에 거대하고 독특한 건물이 서 있는 거예요. 조각상들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햇빛을 받아 흰색으로 은은하게 빛이 나요. 이건 프랑스 북부에 서 있는 몇 개 안 되는 진짜로 큰 건물 가운데 하나예요. 사실 큰 건물은 죄다 성당이나 성이죠. 이 사람이 거대한 문으로 들어가 둥근 지붕 밑을 걸으면,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분을 느낄 거예요. 아마 어떤 숭고함을 느꼈겠죠. 정말 하느님의 집에 왔다고 느꼈을 거예요. 베토벤이 빈의 그라프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느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p.140
제게 가장 강렬한 울림을 준 대목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토록 적절한 비유로 애매한 무엇인가를 실감케 해 주는 문장에 이르면,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가 하는 일과도 어쩐지 조금은 통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오래도록 살아남는 훌륭한 글들은 바로 그렇게 우리가 미처 실감하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어집니다.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긴 세월을 견디고 건너 마침내 이 순간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세대에서 잠들어버리는 글들이 하나라도 줄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라면 고전만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이야기들 역시 세월의 힘을 덧입지는 못했을지언정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응원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같은 시공간의 글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으려 합니다.
나머지는 시간과 이후의 세대가 평가할 몫이겠지요.
더하여,
진심으로 安寧을 바라며 글을 접습니다. 필화 님의 오늘이 안녕하고, 내일도, 그리고 쭉 다가올 날들 역시 안녕하기를 바라며, 칠월이 끝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담화가.
담화님
아홉 번째 편지 잘 받았습니다.
혹시 담화님은 일명 다방커피의 황금 비율을 아시나요? 커피:설탕:프림=2:2:2라고 합니다. 담화님의 지난 편지는 섬세한 관찰:통찰:다정이 2:2:2의 황금비율로 제게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고 매우 고맙게 잘 받았고, 즐겁게 읽었고, 내용이 참 좋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곳에 당신의 천직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혹자는 황금교차로라고 하더군요.
‘고객에게 딱 맞는 단 하나의 물품을 애써 찾아주는 것은 마치 옛이야기... 신기하지 않은가요?’ 이 대목에서 저는 해리포터가 마법 지팡이를 처음 사러 갔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지팡이 서랍이 박살 나던 다른 지팡이와 달리 신기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나타나준 해리의 지팡이처럼, 뤼크가 저자에게 피아노를 골라주는 모습이 마치 황금 교차로에 서 있는 마법사 같다는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보통씨의 《인생학교 |일|》을 사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인생학교 |섹스|》만 산 저는 반성합니다. 그렇다고 과연 거기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여튼,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의 인용문은 읽으면서 그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조만간 주변이 정리가 되면 구매해서 읽어볼 요량입니다.
담화님은 제 편지를 받으면 일단 출력해서 읽으면서 키워드와 다음 책을 고른다고 하셨지요? 저는 편지를 읽으면서 키워드 하나를 뽑고,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책을 뽑아 들고, 그 이후에 머릿속으로 초안을 씁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생사를 오가는(물론 실제로 생사를 오가지는 않았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일이 있어서 두 개의 책 어느 쪽도 초안이 머릿속에 잡히지 않았답니다.
엘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라는 책과 움베르토 에코의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이라는 책 두 권이었습죠. 동시대 작가들을 응원하면서 쓰신 ‘현재 진행형으로 씌여지고 있는 이 시대의 이야기들 역시 세월의 힘을 덧입지는 못했을지언정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응원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라는 문장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에코의 책은 제가 현재 읽고 있는 중인 데다 할 말이 너무 많은 관계로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다시, 피아노》를 샀을 때는 마침 임윤찬 군이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쿨에서 수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지인이 제게 “임윤찬의 영향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지만, 언감생심 그럴 리가요. 저는 초등학생 때 체르니 40번까지 쳤지만, 지금은 ‘도’가 어디에 있는지만 아는 정도의 인간이 되어 버린 지 오랩니다.
제가 방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다시, 피아노》의 ‘다시’였습니다.
《다시, 피아노》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인 앨런이 쇼팽의 <발라드 1번 G장조>에 도전하는 동안의 일들을 일기로 적어둔 것을 엮어낸 책인데, 지난 번 편지에서 저희가 논했던 ‘업’과 ‘취미’(저의 언어로는 딴짓이라고 해두죠.)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어느 곡을 불문하고 이 정도 단계까지 도달한 것은 아마도 이 곡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내 나이가 쉰이었다. 어느새 피아노 연습은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어 있었다. 현실 도피라 해도 좋고, 어리석은 충동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내 몸이 피아노를 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출근 전 20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낸 날은 뇌의 화학 반응이 달라진 것만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곤 했다.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원천이 정확히는 화학반응이 아니라 신경회로망의 재편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p.19
이 책의 구성이 독특한 것은 하루하루 본업인 기자로서의 에피소드와 피아노 연습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는 점일 겁니다. 시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들으면 알 법한 역사적인 사건들도 꽤 많이 언급되는데, 이런 국제적인 이슈와 그 뒤에 숨겨진 저널리스트들의 수고와 개인의 사소한 취미활동이 동시에 한 페이지에 언급되는 이 언발란스함도 매력적이지요. 기자답게 피아노 연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배우는 과정도 여실하게 그려져 있고 말이지요.
그렇게 내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트리폴리의 황량한 호텔 레스토랑을 내려다보는 발코니에 앉아,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린 가운데 쇼팽의 발라드를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가 내보내는 음향은 샹들리에를 넘어 동굴 같은 레스토랑의 공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발라드 1번은 혁명과 망명에 대한 곡이라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는 지금 반혁명의 불길에 휩쓸려 억류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일단 긴장이 풀리자 연주에도 강렬한 느낌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내 눈과 손을 잇는 자그마한 공간에 집중 조명이 켜진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탈출구이자 또한 완벽한 몰입이기도 했다. p.324
중년의 나이에 그 바쁜 와중에도 직업과 상관없는 일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성실하게 배우며 기록으로 남긴 것이 대단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먹고사니즘에 치여 꿈도 꾸지 않을 일인데, 전쟁터를 가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다른 중년들에게, 혹은 이미 늦었다고 섣불리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멜로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역시 ‘딴 짓’이 주는 효과, 일상의 스트레스에 숨통을 틔워주는 그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사람은 목적지향적인 삶보다는 조금은 딴짓을 하고 살아야 인생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습니다.(나쁜 딴짓은 안 됨)
여담입니다만, 저는 담화님이 클래식 기타를 치셨다는 것도, 대학 시절에 클래식 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셨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기타와 일반 기타 연주의 차이점도 말씀해 주셨던 것과(물론 내용은 기억을 못합니다), 클래식 기타를 연주할 때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남아 있군요. 그리고 생일이 12월 27일인 것도 기억합니다.... 만 챙겨드린 적이 없군요. 우리 작가님 올해는 챙겨드리겠습니다. (설마 MBTI 틀린 것처럼 생일도 틀리는 건 아니것지?)
습기와 싸우는 여름이네요.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