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Round] 창의적 삶으로 가는 길

《빅 매직》《관찰의 힘》

by 필화

필화 님…


저는 지금 잠시 말잇못 상태입니다. 이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그냥 말할게요(하고 싶은 말 참기 몹시 어려운 성격).


제 생일 그날 아닙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면서 삽니까. 어차피 SNS가 다 알려 주지 않나요. 제가 지난번에도 강조했듯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는 게 편합니다. ㅎㅎ

답신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다는 말씀도 꼭 드려야겠군요. 아니, 설마 하니 제목에 낚이는 분이 제 주변에도 계셨다니. 좀 웃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이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겁니다!


다방커피… 추억의 다방커피로군요. 어릴 때, 그 다방커피가 뭐 그리 맛있어 보였는지 엄마가 동네 친구 엄마들과 한잔씩 타 드실 때면 두 스푼만 남겨 달라고 식탁에 매달려 애걸복걸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202호(맞니?) 앞의 커피자판기도요.


아침마다 판다가 된 눈으로 서로에게 인사하며 동전 있는 사람에게 커피를 얻어마시던 기억도, 이** 학장님이 인심 좋게 커피 뽑아주시던 기억도 나네요. 아, 나* 교수님인가. 아무튼 두 분 중의 한 분인 건 확실한데!


메모리 리와인딩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피아노》!

저도 그 책을 구입했었습니다만… 왜인지 다 읽지 못하고 판 기억이 납니다. 연핑크색에 대각선으로 피아노 건반이 그려져 있는 표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피아노에 관련된 책들은 잘 읽기도 하고 못 읽기도 합니다. 차이가 뭔지 스스로도 조금 궁금해지네요.

분명 별 대단한 이유는 없겠지만서도.


딴짓을 말씀하셨으니 제가 가볍고 재미있는 책을 들고 와 볼게요.

… … …

왜 말줄임표만 계속 떨어뜨리냐고요?

딱 맞춤하게 생각난 책이 있는데, 온 집안을 탈탈 털었는데도 절대 안 나오네요? 뭘까요, 이건.

혹시나 해서 제가 지금껏 모 중고서점에 팔았던 내역까지 다 뒤져봤단 말입니다. 아니래요, 안 팔았대요. 우리 집 안에 블랙홀이 있나.... 없을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에이휴… 만 하루를 뒤졌는데도 안 나와서 다시 책장을 어슬렁거립니다.


이건 어떨까요. 《빅 매직》 그냥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 감동했었어요. 후에 이연님(그림 그리시는 이연님 말예요)이 이 책을 추천하시기에 혼자서 열심히 끄덕끄덕했던 기억이 나네요.





《빅 매직》의 부제를 보면 <두려움을 넘어 창조적으로 사는 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아무래도 뭔가 창조적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봐야 할 것 같지만, 실상 요즘 창조성이- 이상하게 저는 창조성이라는 말은 어쩐지 종교적인 느낌이 나서, 창의성으로 쓰는 쪽을 선호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쓰겠습니다 - 요구되지 않는 분야가 어디 있기는 하던가요. 심지어 단순 사무직에서도 ‘크리에이티브’한 방식으로 업무 처리를 하기를 요구하는 마당인걸요.



제가 지난 편지에서 주목한 것은 ‘딴짓’이었습니다. 저 역시 딴짓의 강력한 옹호자라는 건 익히 아실 테지요. 취미생활이 많은 사람치고 통장이 텅장 아닌 사람이 없긴 하지만, 그들의 탁월한 정신 건강 상태로 보건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가 (어디에서 발현될지는 몰라도) 대단한 창의성을 품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을 억누르는 많은 심리적, 사회적 제약들 때문에 평범한 삶을 고수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는 아량을 보여주지만, 결국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강력하게 역설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장 창조적인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각자 창조적인 삶이라는 수단으로 이 세상의 무자비한 용광로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p.17


나는 당신의 능력도, 포부도, 갈망도, 비밀스러운 재능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당신 안에는 멋진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아주 자신감 있게 이것을 장담한다. 우리 모두에겐 내면에 깊이 묻힌 보물이 있으며, 우리 각자는 그러한 보물을 지닌 채 걸어 다니는 보고들이라고. p.19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이 뻗쳐 가는 길을 따라갔다. 그녀는 스케이트 한 벌을 샀고,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적당한 링크를 찾아냈으며, 개인 지도를 해 줄 코치를 고용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이 미친 짓이며 자기도취에 빠져 비상식적으로 구는 거라고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녀는 병상을 노니는 그 깃털처럼 조그맣고 여린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들 사이에 나타난 유일한 중년 여성으로서, 달아오르는 극단적인 자의식과 부끄러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했다. p.22



저자가 언급한 이 분은 4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비록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지만 어린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서 있어야 했던 그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삶의 행복을 일구는 ‘딴짓’에 가장 필요한 건 재능도 호기심도 아닌 두려움과 싸우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최종 결과물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글쓰기에 몰두하기 위해 자신의 완벽주의와 대치하는 장면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자연이 요구하는 대로 하자.” 그는 자신에게 권한다. “어서 서둘러서 일단 진행이라도 해 보자. - 나 자신에게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내 노력을 알아줄지 여부는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론》 수준의 작품이 나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말자. 가장 작은 발전으로도 만족하고, 그 결과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해야지.” p.220




아니, 이 대철학자께서도 우리와 다름없이 이렇게 귀엽고 소심한 고민과 자기 격려를 벗 삼아 글을 쓰셨다는 사실이 정말 용기를 주지 않습니까? 역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고마워요. 정말이지 힘이 됩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작가이다 보니 글쓰기를 주로 언급하고 있지만 모든 창의적인 영역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작곡, 연주, 요리, 스케이팅, 심지어 코딩, 어디엔들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심리적 평안과 정신적 성장을 위한) 딴짓을 응원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요즘 이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은데, 딴짓이건 본업이건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필화 님,

잘 먹고 잘 자는 건 기본이고,

운동도 꼭 하셔야 해요.


제가 요즘처럼 운동제일주의자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저는 매일 한 시간씩은 꼭꼭 나가서 걷습니다. 조용한 공원에서 이어폰으로 오디오북을 하나 귀에 걸어두면 한 시간쯤은 금방이더라고요. 책도 듣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입니다.

사실 제가 내일 녹내장 정밀검사를 받습니다. 의심소견이 나왔거든요.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몹시 심란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들은 태반이 다 눈을 혹사하는 일인지라 더 그렇습니다.





갑자기 드는 의문인데,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기거나 차단당한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다시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겠지요. 저도 곰곰 생각해 보려 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저도 잘 지낼게요.











ㄸㅣ용... 담화님



제 기억 속 12월 27일에는 담화님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데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다 틀리고,, 이제 추측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다방커피 먹으면 즉각 배탈이 나기 때문에 아쉽게도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못합니다.. 덕분에 답신을 읽으며 ‘학교에 자판기가 있었다고?’라는 생각을 했죠... 덕분에 교수님은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아마 Dean Lee는 자판기 커피 안 드셨던 것으로 기억을... 아앗.. 이 것도 틀릴지도 몰라! (에라이...) 당분간 자숙하며 기억을 의심해야겠습니다. 갑자기 타라 웨스트오버가 <배움의 발견>에서 자신의 기억과 자기 자신을 의심해야 했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한 말을 읽다 보니 논문 쓸 때 일화가 생각납니다. 먼저 졸업한 누군가가 이런 말로 저를 격려해 주었지요. “야, 일생일대의 역작을 쓰려고 하면 못 써. 그냥 써. 대강” 그 말이 얼마나 저를 자유케 해 주었는지요. ㅎㅎㅎ 저 역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그의 명언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더불어 ‘중꺾마’도.



《빅 매직》이라니... 존재 자체로 사는 것의 자유로움과 창의적인 활동을 지속하기를 권하는 내용인가 봅니다. 백세가 넘으신 한 노년의 대학 교수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이렇게 살다 보니,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어요. 사람은 그냥 두면 자기가 살 길을 알아서 찾아간다는 것입니다.”라고 말이지요. 담화님 말씀처럼 나이와 성별과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용기가 그 살 길을 만들어 주겠지요.





사실 저는 우리가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지 못했던 기간에 ‘집단지성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집단지성을 시스템화함으로써 더 나은 디자인 솔루션을 이끌어내는 모델을 연구하느라 제대로 본질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보았지만 자각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요. 이 연구를 하느라 이역만리에 출장을 가서 아주 우연찮게 한 대학원생의 졸업논문 발표 리허설을 할 때 참석을 해보았습니다.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과 공간을 통틀어서 저는 관찰과 질문의 힘을 어느 정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2+2=22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와 너 되게 창의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사실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2라는 숫자 두 개를 나란히 병렬로 두었을 뿐, 더하기라는 ‘수학적 언어’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창의적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언어들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보통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해당 분야의 ‘언어를 겨우 배운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이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본 언어가 쌓여야 해당 분야의 학문이 쌓이고 새로운 발견을 하고, 문화예술과학기술을 발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른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결코 ‘나쁘다’라고 한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제3의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말하게 된 사람에게 그 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해보라고 하는 것과 같지요.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저는 어른들의 창의성은 어디서 길러지는가에 대한 주제를 많이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실질적인 창의성 발현의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관찰의 힘》이라는 책을 꺼내왔습니다.





어른들은 사고체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은 타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나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게 창의성을 펼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고체계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줄 도구가 필요한데, 저는 그것을 ‘관찰’과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시물이 없다는 사실 역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란에서 현장 조사를 할 때 우리 연구팀은 테헤란 북부로 야간 산책을 나가서 공원을 거닐었다. 공원 전체에 표지판이라고는 단 두 개 밖에 없었다. ‘마시는 물’과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지랖이 넓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그와 비슷한 공원은 금지와 명령이 담긴 온갖 규칙과 규정을 상세하게 명시한 표지판으로 넘쳐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어린이 놀이 구역이라면 더 심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공원 표지물은 그 도시, 그 지방, 그 나라의 규제 환경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세련된 사회일까? 물리적이고 노골적인 표시물을 사용하여 규칙과 법규를 명시하는 나라? 금지와 허용에 대한 암묵적 약속이 사회의 짜임 자체에 내재하는 나라? 표시물의 부재는 과정의 부재나 사고의 부재 혹은 결론의 부재, 아니면 법의 지배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반대일까? p.188




공원을 이렇게 유심히 관찰하고 광대역의 질문을 쏟아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그 유명한 Frog Design의 디자이너지만,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면 디자인 뿐 아니라 어디서든 창의성을 발현하여 새로운 해결책들을 찾아나갈 수 있겠지요. 실제로 제가 진행했던 워크숍에서 관찰과 질문으로 특허 내신 분이 계십니다.. (직장에서 승진하셨다는 소문도...) 여튼 어른도 생각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저도 오늘 관찰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왜 레고를 가지고 싸울까? 레고를 더 많이 사주어야 할까? 아니면 독점욕일까? 정리의 문제일까? 레고로 만들려고 하는 주제가 같은 게 문제일까? 둘이 동시에 만드는 게 문제일까? 따로 놀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면 그냥 내가 귀를 막을까? 저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 납작 블록이 도저히 빠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각자에게 한 개씩 주어 공정한 처사라는 인상을 남기고 사태를 수습하였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담화님 눈이 안 좋으신 건 알았지만 걱정이군요. 무엇보다도 눈이 중요한 분이시라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천계영 작가님도 3D 프로그램을 목소리로 컨트롤하며 작업하시는데, 담화님도 가능합니다. 교정은 PD님이 도와주시면 되고, 정 안 되면 제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드릴게요. 음.. 호야 눈을 보니 안 되겠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앞날의 일을 가불 하여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의 일을,

오늘의 건강을,

오늘의 식사를,

오늘의 즐거움을,

오늘의 딴짓을 즐겨보아요.



잘 지내시겠다니 좋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내일 서울 가는데, 우리 만나지는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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