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어른의 어휘력》
Round 11. get set, go!
그럼 오늘도 힘차게! (하지만 여독으로 기운이 엄슴다)
필화 님, 그거 아세요?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신나라 시작했던 날 이후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요.
짐짓 점잔을 떨면서 메일을 쓰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륵거리며 카톡을 하루에도 몇 통씩 주고받고… 그것도 모자라 가끔 전화를 붙잡으면 한 시간은 훌쩍 넘기고, 이거 참 흔한 패턴인데 말입니다. 우리 이런 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맙시다. 소름 돋네요. ㅋㅋㅋ
우리가 서울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못 만난 지 십수 년은 되었는데, 그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재잘재잘 떠들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아니다, 와글와글이려나…
딴소리지만 우리말 의성어, 의태어 참 예쁘지 않나요. 정말 이렇게 귀여운 부사가 세상 어느 언어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부사를 (더불어 형용사도) 극혐하시는 스티븐 킹 작가님도 아마 우리말의 의성어와 의태어를 알게 되면 부사를 그렇게까지 극렬하게 매도하지는 못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영어의 부사라는 것이 원래 거치적스럽습니다. 우리말 부사는 다르죠.
언어가 다르면 품사의 캐릭터도 조금 달라진다는 사실을 널리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말 부사의 무고함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니지만 (《잊기 좋은 여름》이라는 책에서 김애란 작가님 역시 소심하게 부사를 옹호하면서 기뻐하시는 문장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그걸 읽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오늘은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고 말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저도 필화 님 댁의 새로운 소식에 안심했습니다. 무려 꽉 막힌 언주로 위에서요. 반 년에 한 번씩 찾는 강남입니다만 갈 때마다 낯설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거기서 30년 가까이 살았다는 사실은 잠시 잊기로 하고.
한 장소가 이토록 쉽게 낯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역시 ‘오랜만’은 많은 것을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듯합니다. 역시나 낯설게 하기- 또는 보기는 창의성을 자극하는 좋은 수단이로군요.
깊이 있는 관찰은 좋은 질문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필화 님의 창의성을 단련하는 도구함에는 관찰과 질문이 들어있군요. 흥미롭네요. 제 경우에는 또 다른 도구와 기법을 애용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필화 님이 이야기해 주신 에피소드를 읽는 순간 저는 순간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창의적’이라는 말조차도 지독히도 오남용되어 제 뜻을 잃어버리기 일보직전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개념이 사회에서 두루 쓰여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모두가 하나의 낱말을 바른 뜻으로 쓰는 데 유념할 수는 없으니까요. 당연히 그러라고 강제해서도 안 되지만요.
현재의 창의성은 어쩐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 ‘튀는 것’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단어가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언어의’ 흐름이지만, 그 의미의 대역폭이 예전에 비해 지극히 협소해지고 압축되어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그나마 이런 현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이 사전인데, 사실상 지금의 국어사전은…
네…
그런 것이죠. 말잇못입니다.
사실 저조차도 이런 줄임말을 꽤 즐겨 씁니다. 자백하건대 크게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원래 있던 말들이 사라지고 그 뜻이 축소되는 것에는 굉장히 저항감을 느낍니다. 이 무슨 모순적인 행태냐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아래의 책은 김영하 작가님께서 북클럽을 진행하시면서 지정하셨던 책이라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 줄로 생각되지만, 저는 최근까지도 건드리지 않았던 책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제가 사전류를 몹시 좋아하는(컬렉션도 꽤 됩니다) 걸 잘 알고 있는 책모임 친구가 권해주었습니다.
저도 책 권하는 걸 꽤 좋아하는데(바다 건너 살 때 친구들이 저를 serial book recommender라고 불렀어요. ㅋㅋㅋ 자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나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권해주는 이들에게는 항상 고맙습니다. 그만큼 제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와, 같이 사는 동행도 그만큼 제 취향과 관심사를 꿰뚫지는 못할 거예요. 아무튼…
오래 전에 《배를 엮다》라는 소설을 읽고 대단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리뷰를 썼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네요. 안타깝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저는 사전 편찬자란 어떤 종류의 사명감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대업 중의 대업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이먼 윈체스터의 《교수와 광인》을 읽으면서 확고해집니다. 이것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진짜라고. 정말이라니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책이 바로 이겁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심지어 제가 언급한 세 권 중 가장 유머러스하고 감동적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우리와 가까운 시대의 분들인 데다, 어딘가 좀스럽고 경솔하고 유치한데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열정과 신념을 동시에 지닌 보통 사람이자 기인이고 거인입니다.
아, 두 분이니까 복수형으로 고칠까요? 한국어는 그런 면에서 너그러우니 넘어가도록 하죠. 한글 만만세.
저는 (국어) 사전이 개성이 있다는 말이 참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니까요? 그것이 가능합니다. 가능하더군요. 우리나라라고 불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저력과 열정의 편찬자가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선행조건이 붙습니다만…
연애(愛)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 (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도대체, 그 어떤 사전이 감히(...) 이런 직설적인 뜻풀이를 등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쁘다는 게 아니라, 편찬자는 그렇다 쳐도 여기에 오케이 사인을 낸 출판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요즘에야 모르겠지만, 이 개정판이 나왔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이는 가히 혁명… 솔직한 사견으로는 객기에 가까운 모험심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개성적인 뜻풀이는 계속됩니다.
동물원(動物園)
생태를 대중에서 보여주는 한편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잡아온 많은 조수(鳥獸)·어충(魚) 등에게 좁은 공간에서 생활할 것을 강요하며 죽을 때까지 기르는 인간 중심의 시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4판
공감하는 바이지만, 동물원 관계자들이 과연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공약(公約)
정부·정당 등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일. 또한 그 약속. [금방 깨지는 것에 비유된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초판
일본의 정치 상황도 뭐 그리 선진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데, 과연 출판사는 괜찮았을까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걱정되는 심정은 뭐랍니까.
독서(書)
연구나 조사 때문이거나 흥미 본위가 아니라 교양을 위해 책을 읽는 일, ‘드러누워 읽거나 잡지 주간지를 읽는 일은 본래의 독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2판
이런 준엄한 뜻풀이는 어떻습니까?
뜻풀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써내는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개성과 멋이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가끔은 저도 제 마음대로 뜻풀이를 써 보고 싶은 단어들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제가 주로 쓰는 낱말들일 때 그런 마음이 더 강해지죠.
말이 나왔으니 소일거리 삼아 해볼까 싶기도 하고.
필화 님이 얘 또 일거리 벌리기 시작이네,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안 해요. 진짜라니까요.
폭염이 시작된 날입니다.. 담화님.
그러나 저는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한 자로써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서 꾹 참고 버텨보겠습니다.
저희가 매일 연락을 하고 있었군요. 뭐 괜찮습니다. 팀워크가 좋은 것이라 해둘까요? ㅎㅎ
사실은 여고생들의 수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댁에는 엄연한 여고생이 계시니까 그 표현을 쓸 수가 없군요.
아니 그나저나, 담화님의 정서적 DNA는 판타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류를 좋아하시다니! 멋져라!!!
(저는 serial book recommender에서 그 별명을 붙인 분의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에 생각날 때마다 피식피식 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이 책...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겁니까? 단어 세 개 뿐인데 포복절도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암묵적인 속뜻을 꿰뚫고 까발려주고 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게 보통의 사전은 계곡의 바위 위에 도포자락 날리면서 삿갓 쓰고 앉아서 시 한 수 읊고 있는 선비님 혹은 현자의 느낌입니다. 이 분은 대체로 “스승이 가르쳐 주십시오.”라며 고개 숙인 제자에게 “에헵, 그건 그 뜻이 아니니라.”하고 죽간 하나를 툭 던져주고 먼 산 바라보시는 편이시지요. 그런데 이 사전은 병원장이나, 보호자나 할 거 없이 할 말 다 하는 열정 넘치는 ‘신의 손’인 의사 느낌입니다. 아 물론 뭘 고쳐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로 현실을 마주하고 칼날을 다루는 느낌이라서 말입니다.
사실 담화님이 주로 쓰는 어휘들로 본인만의 뜻풀이 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 저는 의외로 어이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류의 ‘definition’은 저희집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동행님은 매우 자주 "필화, 앞으로 나는 이 것을 **이라 정의하겠어요."라고 하시고, 아이들도 그걸 따라 각자의 애장품에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 두고는 제가 익혀주기를 종용하기 때문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동거인의 그런 표현이 매우 어이없었으나 그 분의 직업병이려니 하고 넘어갔고, 아이들이 그렇게 자신의 물건 혹은 어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고선 그런 행위가 ’각자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저는 오늘 《어른의 어휘력》이라는 책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마침 얼마 전에도 담화님께 소개드리기도 했습니다만, 이 책은 어휘 뿐 아니라 언어와 어휘에 대한 많은 정의, 교훈, 실례, 회한 등을 담고 있어 실용서인지 에세이인지 모르겠는 책이긴 합니다만... 읽을 만한 내용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어른의 어휘력
그 중에서도 바로 이 ‘의미의 재발견’과 ‘정의’에 대한 대목이 있어서 가지고 와 봅니다.
주최 측이 작품 <샘>, 아니 소변기를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하자 뒤샹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글을 발표해 반격한다. 이런 대목이 있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로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냈다.’... 그는 당당히 선언했다.
"아름다움은 발견해야 한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망막을 통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유를 통한 아름다움이다. 사물에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사물이 무엇이건 새로운 본질을 지닌 사물이 된다.
미술사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뒤샹이 1917년에 한 일을 삶에 대한 태도로 가져오면 퍽 근사하다. 흔하디 흔한 대상이나 사물이지만 내가 선택해 새로운 본질을 부여하면 작품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믿는, 생의 유한성이 필연적으로 끌고 오는 허무함에 질식당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식이다. p. 279
뒤샹의 저 작품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작가의 의도대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예술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공감대를 어느 정도나 형성하느냐’라는 것은 논외의 문제 이긴 하지만요.
담화 월드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아름다움을 담은 '담화사전'을 만들어두시는 것, 저는 찬성입니다. 담화님의 작품 활동에 작품에 주춧돌 중 하나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오늘은 아침부터 항공권 예매하고, 렌터카 예약하느라 바빴습니다. 숙소는 지인이 집을 빌려준다 하여 고맙게 빌려 쓰기로 하였지요.
저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힘들 때 꼭 바다를 가고 싶어지는데, 바닷가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학교를 다닌 까닭인지 약간의 향수병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파도가 일정 범위 이상 넘어오지 않는 일상의 평온함에 대해 신께 감사하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곤 합니다.
가서 평안을 되찾고 오겠습니다... 아직 멀었는데 너무 인사가 빨랐던 걸까요?
오늘의 더위 잘 이겨내시고,
오늘도 좋은 작품 쓰시고,
맛있는 밥 드시고 힘내세요~
무려 열 한 번째 레터의 답장. 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