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Life》《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여름은 제가 가야 할 길을 따라 슬슬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죠, 필화 님? 그래야만 합니다.
저는 더위에 질식할 것만 같아요. 지금 이 순간 20년 전 눈에 파묻혀 죽는 게 어떤 건지 절감케 했던, 핀란드의 겨울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1분만 그 시점으로 다녀오게 해 줘…
'담화님은 과거에 하지 않았던 선택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 삶에 대한 미련이나 동경이나 후회가 있으실까요?'
라는 질문을 주셨죠, 제게. 질질 끄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니 즉답을 드리겠습니다.
아뇨. No, Nein, Non.
다른 것을 선택했더라면 더 나은 기회가 주어졌겠구나, 혹은 어떻게 살고 있었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만 저는 미련을 질질 끌어안고 사는 타입은 아닙니다. 물론 원래부터 이렇게 쏘쿨한 성격은 아니었고, 노력으로 많이 바꾸었습니다. 현재의 시간마저 헛되이 쓰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합니다. 제 핏줄에 흐르는 짙은 워커홀릭의 성향으로 보건대 결혼은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신나고 바쁘게 일하면서 살다가 어딘가에서 풀썩 더위 먹고 쓰러졌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제가 몸을 좀 사리지 않는 편이라.
고3시절, 아시죠? 우리 고3 때 얼마나 더웠는지. 제가 그때 더위 먹고 휘청거리면서 학원 가다가 기절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전적이 있답니다. 깨어나서 한 말이 "아 오늘 그림 그리러 가야 하는데..." 했던 역사가 있지만 지금은 그림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산다는 아이러니가.
인생은 역시 살아봐야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삶에 만족합니다… 라기보다는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 더 맞는 답일 것 같아요. 잠시 경건한 감사의 만세삼창 시간을 갖고 가겠습니다.
자, 그럼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난 편지의 말미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언급해 주셨죠.
네, 저도 그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일단 제가 작가 매트 헤이그를 참 좋아합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지독히도 절망적인 순간에 삶을 놓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선택했던 그의 용기를 존경합니다(그의 블로그였던가, 인터뷰였던가… 에서 그의 과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설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대목은 그가 주인공 노라에게 손쉽게 이상적인 삶을 쥐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결국 자신이 쟁취해야 했던 거죠. 자신의 고통을 감당하기로 마음먹고, 지금의 삶을 스스로 이뤄 낸 당사자가 쓴 이야기이기에 제게 울림이 유난히 컸습니다.
이렇게 지난 편지를 정리하는 서두를 쓰다 보면 슬슬 여러 권의 책 사이에서 방황하던 마음이 정리가 되어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남곤 합니다.
마치… 뭐랄까요, 아쉽지만, 다음엔 꼭 우리를 선택해 줘… 하고 아련한 미소를 흘리며 후보로 올라있던 책들이 아쉬운 한마디를 남긴 채 뒤돌아서는 듯한 이 느낌은, 대상을 받은 감독과 배우를 끌어안으며 눈물의 축하를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 연말 시상식 같은 기분도 들게 하는군요.
음, 쓸데없는 말이 많았네요.
하여! tada-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Life After Life》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Life After Life》
물론 당연히 이번에도 치열한 경합을 벌인 후보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후보는, 글쎄… 이 작품의 난해함으로 인해 또 소개할 기회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 짧게 언급만 해볼게요.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두 권의 소설입니다.
분량도 상당히 압도적인데, 구성의 독특함과 서사의 흐름이… 몰입감이 대단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난해함도 상승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대칭적 서사와 더불어 각각의 독립된 플롯/장르의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한마디로 머리 터지게 복잡한 소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어요. 대중적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처럼(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쓸데없는 도전정신이 투철한 분들은 도전하십쇼!
그에 비해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Life After Life》는 훨씬 다가가기 편합니다.
일단, 소재 자체가 아주 흥미로워요.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 있지 않은가요.
아, 제길. 망했다. 5초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
물론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 발생 N년 전은 커녕 5초 전으로도 회귀할 수 없습니다.
내친김에 제가 인생의 진리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낙장불입입니다…
가끔은 과감한 베팅도 필요합니다만, 타짜의 심장을 갖지 못하셨다면 그저 매사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하소서.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어슐라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바로 다른 선택지로 돌아갑니다. 진짜… 완전 부러워…
아무튼, 그래서 어슐라는 여러 번 인생이 쫑날 뻔한 순간에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죠. 이게 참, 발 한번 잘못 디디면 막장유치찬란해지는 건 순식간인데 작가 케이트 앳킨슨은 그 위험한 지뢰를 잘도 피해 갑니다. 그러니 작가겠죠.
일종의 평행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what if로 뒤범벅된 인생극장 같기도 한 이 소설을 보고 나서 진짜 충격은 이 책의 리뷰들을 찾아 읽다 찾아왔습니다.
저는 극히 단순하게, 사소한 일들이 삶에서는 어떤 강력하고 위험한 일들의 도화선, 혹은 복선이 되기도 한다… 는 것 정도만 생각했는데,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쓰셨습니다(똑같이 옮긴 게 아니라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옮긴 거라 왜곡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여러 번 인생을 되감아 살아도 극복할 수 없었던, 실로 제한적이었던 그 시대 여성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저는 정말로 극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때만큼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구경을 한 기분이 그랬을까요.
"이 이름들."
테디는 기념비에 적힌 이름들을 응시하며 덧붙였다.
"이 생명들, 그런데 또 전쟁이라니. 난 인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신뢰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훼손해 버려, 그렇게 생각 안 해?"
"이건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그냥 살아나갈 뿐이지."
어슐라가 씩씩하게 말했다.
"결국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우린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 결코 '옳게' 살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야 하지."
"계속 반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결국 옳게 해낼 때까지 말이야. 그럼 멋지지 않을까?"
"그럼 피곤할 것 같아."
p.518-519
어슐라가 급행열차 아래 몸을 던졌다면, 아니면 벨그레이비어 이후 죽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침실 창문을 열고 그냥 거꾸로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어슐라는 정말 돌아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모두가 어슐라에게 말하듯, 그리고 스스로 믿어야 하듯 모든 게 그냥 머릿속 상상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떨까―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이 실제가 아니라면? 입증할 수 있는 실재가 없다면 어떨까? 마음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 철학자들이 오래전에 이 문제와 ‘씨름’했다고 닥터 켈렛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어슐라에게 말했다. 철학자들이 다룬 아주 최초의 질문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슐라가 이 문제로 안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본질 때문에 다들 이런 딜레마와 매번 씨름하는 게 아닐까?
p.230-231
비밀 하나 고백할까요.
한참 회귀물이 유행하던 시절(지금도 유행하지만, 무슨 뉘앙스인지는 이해하시리라), 저는 불현듯 그런 망상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혹시, 최악의 끝을 달리는 삶을 살던 제가 절대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제대로 살아보겠노라고-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기억을 잃은 채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이란 지독하게 무거운 습관의 노예라, 결국은 그 형편없는 삶의 최후의 순간에 가서야 두 번째 삶 역시 첫 번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길을 밟아왔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뭐 그런 피폐의 끝판왕 같은 망상이죠.
으아아,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럽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매망량 따위는 공포 축에도 못 드는 겁니다… 그래도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은 무서워요. 혹시 읽어보셨나요? 굳이 권하진 않습니다… 정말 무섭거든요.
근데 끝이 좀… 납량특집이네요?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하-하-하!)
안녕 담화님
벌써 우리 열세 번째 레터가 오고 가는군요. 세상에…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갑니다. 이번 여름은 여느 때와 달리 감정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했는데, 담화님과의 책장담화 수다 덕분에 묵직한 이번 더위를 수월하게 잘 지나온 것 같습니다.
담화님께서 ‘결혼은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신나고 바쁘게 일하면서 살다가 어딘가에서 풀썩 더위 먹고 쓰러졌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학생시절부터 담화님이 그런 인생을 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나 깜짝 놀랐지요. 아마 담화님을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 반 정도는 확신합니다.
하지만, 담화님께서 지금 이 생을 잘 지내신다고 하니 참 좋네요.
어릴 때 보았던 개그 프로그램 ‘TV인생극장’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릴 적에는 그 선택의 무게를 잘 몰랐지만 선택의 순간, 그 갈림길에 선 긴장감이 좋았고 다르게 벌어지는 인생의 여정도 그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의 책이 있다니요! 아... 생각해 보니 충분히 있을 법도 한 소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현세의 기억을 안고 인생을 다시 살아간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가서 어떻게 행동할까?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라기보다는 역시 그저 망상이지만 재미가 있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 이후에야 ‘아 역시 과거로 가면 아빠에게 그때 그 집을 사라고 해야겠어!’라든가, ‘아 이제껏 살아보니 나에겐 그 직업이 좋을 것 같기도 해! 공부를 더 해야겠군.’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죠.
하지만, 인생을 뒤바꾸거나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생각난 책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구매일이 2006년 8월 4일로 적혀 있네요. 무려 17년 전의 여름은 이 책과 함께 보냈겠군요.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귀족 가문의 후손이지만 가난한 주인공, 그의 삶의 재정적 측면은 변치 않아요.
100년에 걸쳐 천천히 몰락한, 그야말로 이름만 있는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바뀌지 않고, 심지어 언론인이었던 그는 책의 시작부터 실직자가 되어 말 그대로 근검절약해야 하는 처지에 이릅니다.
그런 삶을 비관으로 채우지 않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아보려는 그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이 책의 주요 골자입니다.
삶의 우선순위, 일, 집, 자동차, 외식, 휴가, 미디어 등 여러 분야를 비굴하지 않은 시각으로 고찰하고 바라봅니다. 종종 ‘부’를 마치 ‘여우가 바라본 신포도’처럼 여기는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자본주의나 소비주의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그러나 물론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자본주의는 수십 년 동안 가난이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했다. 가난은 저 미련한 자, 게으른 자, <저 사람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끊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주입시킨 자본주의의 신화는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15
인간은 실제로 돈이 없어도, 아니면 최소한 아주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활양식’이다. 이 말은 오랫동안 소비재 산업의 투쟁 구호였다.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비결은 독자적인 생활양식일 것이다. p.55
대중매체와 여론, 이벤트의 악영향에 의식적으로 저항하면,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할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많은 돈을 낭비해 가며 아주 긴장되고 획일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돈을 절약하고 자주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규격화되고 동질화된 시대에 사치가 아니겠는가.
문화 쓰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전문지식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빠듯한 자금 사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삶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모든 잡동사니들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진실로 애착을 느끼는 일들만이 남는다. p.138~139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비결은 독자적인 생활양식'일 것이라는 인용문에서 보여주듯이 정말로 그는 남다른 생활양식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 양쪽을 오가며 살았던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빈곤 포르노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죠. 쌍방간의 삶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표면적으로 흉내만 내는 것이 얼마나 흡수할 수 없는 고충을 안겨주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는 이 책을 왜 샀던 걸까요?
아마도 제목에서 느껴지는 반전감이 기대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 사람이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는 것인가? 가난할지라도 우아할 수는 있겠으나, 삶이 점차 가난으로 기울어가는 데 어느 누가 우아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나는군요.
지금은 담화님이 말씀하셨던 공포소설이나 이매망량보다 가난이 더 두려운 시대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적어도 제가 이 책을 사던 시기에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없었던 때이고, 퇴근 후 N잡러가 폭증하는 시기도 아니었지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절판이 되었다가 2013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시하였고, 2019년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아마도 시대적 요구가 있었겠거니 싶습니다.
여튼, 적어도 이번 생애에 수저 논란은 이매망량이 가지고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빈부를 떠나, 바른 가치관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좋겠어요.
P.S. 그런데 정말 이매망량은 생전 처음 보는 단어여서 깜짝 놀랐지요. 도깨비를 칭하는 한자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네 개나 있는데, 이걸 또 붙여 쓰다니 진짜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제게 도깨비는 공유 배우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매망량은 안 되고, 사다코도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