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내 인생의 첫 책 쓰기》
와, 빠른 답신!
가난이 공포가 되는 시대라는 지적에 한 번 무거워진 마음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맞아요. 그 무엇보다도 가난이 무섭습니다. 가난해도 품위를 잃지 말고 살자고 설파하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는 그랬습니다) 책이 시대의 요구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대다수의 우리에게 이미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드리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고요.
그러려면
‘삶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모든 잡동사니들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삶의 태도가 되겠군요.
어쩐지, 손쉽게 결론을 내자면 ‘정리 레슨’의 대가이신 곤도 마리에 상을 이 자리에 초청해야 할 것 같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을 내는 건 반골 기질로 중무장한 저와는 도무지 맞지 않으니까요!
대신 저는 보이지 않는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요.
그중에서도…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정신적 잡동사니 쪽에 치중해 보려 합니다.
참, 그 전에 말입니다.
저는 결혼과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임이 갈수록 분명해졌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은 없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의지의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건 제 생각이고, 같이 사는 분은 여전히 많은 부분 실망감을 드러내시지만 꽤 많이 포기하신 듯합니다. 그건 지난주에 직접 다녀가셔서 저희 집의 상태를 목격하신 필화 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이제는 (적어도) 면박을 주는 일은 없거든요. 아, 정말. 나의 일잘함 능력치는 가정용이 아니었는데… 말해 뭐하겠습니까.
인간적 품격을 잃지 않는 가장 손쉬운 방법, 글쓰기
저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인간적 품격을 잃지 않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글쓰기를 들겠습니다.
여기서 장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기든, 편지글이든, 선언문이든, 에세이든. 그런 것을 먼저 고르려 들지 말고, 일단은 쓰는 겁니다.
어설플지언정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을 쓰고, 문장을 엮어서 하나의 유기적인 문단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 말해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아성찰은 필연적으로 메타인지의 절친일 수밖에 없죠.
이게 되면 뭐가 좋으냐? 머리가 식습니다. 자기객관화가 되고 판단에 달라붙기 일쑤인 감정을 분리하는 게 좀 쉬워집니다. 세상의 모든 이불킥의 근원은 감정과 판단이 혼연일체가 된 상황에서 섣부른 결단(혹은 표현)을 하기 때문 아니겠어요. 이성은 펭귄과 같은 동네 주민인 탓에, 뜨거운 곳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아오후하오흐… alert, alert!
글쓰기는 왜 중요한가.
식물을 키울 때 가지치기를 하며 수형을 잡아주는 것처럼, 칠렐레팔렐레 뻗쳐나가는 것이 본능인 생각의 잔가지들도 때때로 전지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 쓸데없는 생각의 잔가지에서 때때로 근거없는 분노가, 바닥이 없는 자괴감이 자라고 있을 때가 간혹 있거든요.
한마디로 자기파괴적(그래서 종종 타인도 파괴하는)인 감정이란 것은 대체로 이렇게 근본이 없이 불쑥 어딘가에서 자라나오게 마련입니다. 그 끝을 더듬어가다 보면 내 마음이 왜 이리도 분노로 들끓는지, 혐오와 증오가 어디서 자랐는지 대강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가위질을 하는 거죠. 새로, 제대로 튼튼한 가지가 잘 자랄 수 있게. 풍성해지고 예뻐지게…
그것을 다듬는 행위가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희한하게도, 너무 화가 나서 펄펄 뛰고 싶은 순간에도 ‘화가 난다, 짜증이 솟구친다’ 라고 적는 순간, 그 분노가 20% 정도 가라앉습니다. 가끔은 종이가 감정을 먹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 그 다음 수순으로는 화가 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물론 점잖게 ‘화가 난다’보다 더 직설적으로 쓰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그럼 그렇게 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저는 쓰기란 발산적인 속성을 가진 말과 달리 절제를 기본 미덕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테러의 수단으로 쓰는 사람들도 많기만 하더라만은… 인간은 늘 어떤 기대치를 뛰어넘죠, 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숨…)
그런데 글이라는 걸 자발적으로 써 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뭐든 써라!’ 라고 시키면 소위 멘탈붕괴가 일어날 겁니다. 아무리 세상천지에 온갖 종류의 유익한 글쓰기 독학서가 많이 나와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 특이하지만, 교범처럼 삼아도 좋을 책을 소개하려고요.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 입니다. 제목이 …? 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정상입니다.
보통 일기라 함은 쓴 이의 내면을 드러내는 자신을 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외면일기》 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인용문을 참고해 주세요.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p.125
납득이 가는 설명이지요?
이렇게 외부의 일을 서술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쓰는 사람의 가치관을 거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객관적인 사실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감삼아 조금씩 글을 쓰는 것 역시 자기객관화에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거니와, 뭐랄까… 정신적 ‘제동장치’를 만들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제가 이 책을 골라 산 줄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커버를 여니 2004년 당시 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추천으로 구입했다고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와, 그 친구는 어떻게 제 취향을 그토록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던 걸까요.
상냥하고 눈물이 많았던, 그러면서도 오락실에서는 경악스러운 펌핏업의 발재간을 자랑하며 동시에 천재적인 바느질 장인이기도 했던 윤모씨께 이 자리를 빌어 좋은 책을 소개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다시금 전하고 싶네요.
…근데… 2004년? 그럼 이거 도대체 몇 년 묵은 책인 거죠? 그래도 제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은 아닙니다. 확실해요. 그 영광은 무려 xy년 묵은 《캔디 캔디》 2권에게 돌아갑니다. 우리 모친께서는 전권도 아니고 왜 그 한 권을 지금껏 묵혀두었다가 제게 증정하신 걸까요???
안녕 담화님.
지난 번 편지 잘 받고 많이 웃었습니다.
담화님의 ‘일 잘함 능력치’가 가정용이 아니라는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듣기 때문이죠. 가사 돌봄 능력치가 좋았다면 저희는 마사 스튜어트나 곤마리가 되었겠죠.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완벽하게 갖추고 살겠습니까? 마침 읽고 있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가족에게도 완벽함을 요구하던 자의 말로가 나오더군요. 크으.... 우리는 그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해요.
말씀하신 대로 글쓰기가 삶을 간결하게 가져갈 수 있는 비법 중 하나인 것도 같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 생각들도 가닥을 잡아주고, 내면의 소음들도 가라앉혀 주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게다가 또 하나 효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노가 치밀 때, 글로 적는 것에 그런 큰 효과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어느 분께서 화난다고 수업시간에 노트에 욕 적는 거 보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는데, 담화님 글을 읽고 보니 어쩌면 그 분은 그저 자기 감정을 잘 정리할 줄 아는 분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이십년 만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네요. 이래서 사람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가 봅니다.
그나저나 글쓰기의 효능을 듣더라도, 글을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쓸 수 있을까요? 아 제 말은 실제로 단어를 연걸지어 문장을 만드느냐를 논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input이 있어야 output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저는 이번에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떠올렸습니다. 꽤 오랫동안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습관의 힘》 과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라는 책입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습관은 우리 몸에 남아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장악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습관의 힘》 도 떠올랐으나, 때마침 읽고 있던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를 다루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그 책을 빙자해서 독서에 대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냥 하는 날인지도 모르겠어요.
참고로 이 책은 ‘6개월이면 충분하다’는 부제에 이끌려 뽑아온 책입니다만, 생각보다 제목에 어울리게 구성도 좋아 보이는 책입니다. 책을 쓰려는 동기의 확인부터 시작하여 책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할 것- 원칙 정하기, 구상과 기획, 집필-을 비롯하여 출판사 선별과 계약에 대한 것까지 책 출판 전반에 대해서 잘 가이드를 해두었습니다. 혹시 쓰고 싶은 게 있고, 써야만 할 것 같고, 잘 쓸 자신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시어 책을 쓰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일단 매일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심플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그렇죠. 역시 많이 읽어 두고 생각해야 좋은 것을 써낼 수 있겠지요.
요즘 SNS를 보면 다독 성공담이나 chatGPT를 이용한 독서법 등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이슈가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독만이 무조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다독보다는 정독이, 작가 한 명만의 글을 파고 들어 읽는 전작주의 독서가, 또 어느 시점에서는 특정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게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독서의 효용
얼마나 어떻게 읽든 간에 독서의 효용이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 생기는 것입니다.
정혜윤 작가의 말대로 ‘책장을 덮은 후에 ’다음에 뭐 읽지?‘가 아니라 ’아 그럼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가 되어야 바른 읽기라고 했던 것처럼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때에야 인생의 밑거름 효과를 볼 수 있겠지요.
책의 내용을 정리해주는 것은 chatGPT가 사람보다 더 잘 할 지도 모릅니다만,
충분히 숙고하는 것! 그리고 그 생각과 감상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경험과 정신적인 힘이 쌓이고, 그것을 토대로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글을 쓰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필사’를 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1년 가깝게 성경을 필사하고 완필을 해 본 제 생각에는 ‘특히 소설이라면’ 필사보다는 소설의 구조와 서사를 연구하고 파헤치는 게 좋은 글을 쓰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더 나은 글을 만들기 위해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파헤쳐 분석하시거나 하시나요?
아 물론 저는 안 합니다. 저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가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책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때는 있습니다. 그러면 작가가 어떤 효과를 노렸는지, 어째서 그런 서사와 장치를 사용하는지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면 책이 더욱 재밌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훌륭한 감독은 어느 대목에서 관객을 울릴 것인지 100% 확신한다고 하는데, 가끔 책에서 그걸 구현해 내는 작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필휘지로 2만자 적어 내려가시는 우리 담화님,
오늘도 울렸다 웃겼다 하는 좋은 글 써주세요... 응원합니다.
근데,, ,저 ,,, 그 ,,, 저는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요?
태풍을 뚫고 제가 탈 비행기가 오늘 정상 운항을 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사실 지금 짐 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