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만의 풍경
집 엘리베이터를 내려와서 도로 쪽을 걸어갈 때마다 이곳이 꼭 대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중충한 날씨, 약간의 습기. 나에게 대만은 대도시의 풍경 속에서 음울한 날씨를 가진 곳이었다. 요 근래 서울 날씨처럼. 가족 네 명이 호텔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자며 4일간 이어왔던 여행. 가오슝엔 비가 왔고 우연히 들어간 초밥집의 연어초밥 맛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야시장에서 샀던 가오나시 네임태그, 진한 버블티 맛 역시 여전히 유요한 물질, 감각으로 내 인생 한 군데에 자리 잡고 있다. 돈을 적극적으로 벌기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 풍족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다녀온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고 그립기도 하다. 그 이후로 많은 여행지를 다녀왔고 각각의 풍경이 내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지만 대만만큼 자주 인생 곳곳에서 기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곳은 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늘 대만을 떠올린다. 출근을 할 때, 퇴근을 할 때. 내 출퇴근 풍경길에 가슴 아픈 기억도 있고 행복했던 기억도 함께 뒤섞여 있지만 대만을 떠올릴 때만큼은 최소한 불행하지 않다. 올해 갈 여행지는 인생에서 어떤 회상 지점을 마련해 줄까? 상견니를 튼다. 다시 대만에 간다면 꼭 하이난에 가보고 싶다. 왠지 대만은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곳 같다.
#2. 나 자신 찾기와 겨울
이토록 편안한 겨울이 있었던가? 겨울이 언제 끝나나 매일 아침 차가운 날씨에 질문하긴 하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이번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지독한 계절성 우울증에 가까운 우울증 때문에 매해 겨울이 힘들었는데 하루하루가 아주 쉽지는 않지만 잘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속에 자리 잡고 기를 펼치지 못하던 내향적인 인간형도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으며 많은 책을 읽고 테니스를 시작했다. 테니스는 어렵고 책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영화는 조금 멀어진 겨울이다. 하지만 영화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매체도 없으며 책만큼 뿌듯한 숙제도 없다. 올 한 해가 기대된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기대는 늘 큰 실망과 걱정을 낳기 때문에 하루가 그저 무사하게 넘어가길 기도한다.
#3. 프로젝트 이름은 비밀
비록 내향적인 나 자신이지만 외향적인 시절이 길었기 때문인지 혹은 에너지가 생겼기 때문인지 몰라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곳곳에 기획하고 있다. 어떤 수확을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하고 싶다. 사랑하냐고 묻고, 어떤 점이 가장 사랑스럽냐고 물을 때 "그냥 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사랑이다. 모든 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이지 별 다른 금전적 기대나 명예욕은 아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생동감, 원기가 1월을 시작하게 만들고 있다. 고무적이다.
#4. 일본의 다면성
영화 괴물과 오에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 그리고 일본 드라마 아리스인보더랜드를 보고 공통점을 찾았다. 일본 사람들은 한 가지 사건, 한 사물, 한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며 모든 사물이 양면적인 면을 갖고 있으며 선과 악이 하나의 대상에 함께 있음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일본의 경향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유럽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프랑스 문학이나 영화를 볼 때는 현재의 시점, 감각에 매우 집중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동아시아적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사건이 일어난 후 관조하면서 과거를 회상,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듯한 문화적 경향이 확실히 있는 듯하다. 한국은 프랑스와 일본 그 사이 어디쯤 있다. 애매하다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많다고 할까? 현재도 중요하고 과거도 중요하며 미래도 놓칠 수 없는 자산이라고 생각해서 정확히 어떤 곳에서 갈피를 잡아야 할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유효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지금 강한 사춘기,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
쓰면 쓸수록 말이 길어진다. 대화를 할 때 가장 나쁜 사람이 상대방이 말할 때 자신의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가 꼭 그렇다. 얼른 말을 줄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