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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Jun 19. 2024

고가 아래 프롬나드

AKI-OKA STREET


이번 도쿄여행에서는 외국인에게만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도쿄메트로 일권을 사용해 봤어요. 지난 여행에서 스이카 카드를 쓸 때는 몰랐는데 JR과 환승이 안되니까 노선과 지하철, 철도 회사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지하철이 지하로 안 가고 밖으로 노출된 선로를 따라다니는 풍경이 서울과 참 다르게 다가와요. 고가 철도 그 아래에저렴한 술집과 가게들이 들어서 도심의 유휴공간을 깨알같이 활용하고 있는 풍경...... 각 사 별로 소견에 옳은데로 계획한 듯한 지상철이 교차하는 이색적인 풍경......



 

 혼돈의 교통 인프라가 연출하는 의외의 장관



철도 왕국 일본 그리고 도쿄

 

도쿄도에는 JR히가시니혼, 세이부, 오다큐, 케이오 등 18개 철도회사가 85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와 대조적이에요. 도쿄메트로조차 공기업이 아니라 도쿄도가 출자하는 특수 회사로  일본 최대 철도회사인 JR과 도쿄도 각 지역에 특화한 민간철도회사(사철)와 경쟁하는 구도로 되어 있어요.  일본 철도회사들은 대부분 사철이고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어서 매년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해요. 철도 운송만으로 영업이익 보장할 수 없기에 보유 부동산과 철도역사를 활용한 각종 부대사업에 힘을 쏟는다고 하네요. 70~8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에는 야구장과 유원지를 개발했고 지금은 부동산 개발과 임대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건물 사이로 전철이 사라지는 매직, 아키하바라




노출된 선로가 많아진 것은 사철의 확장과 연관이 깊다고 해요. 사설 철도들이 점진적으로 철도 개발을 진행하면서 지하화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가 철도화를 선택했다고 하죠. 국내에서 고가 철도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소음이 커서 선호되는 개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 지하철 대부분이 지하에 계획되었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고가도로 아래는 노숙자나 비둘기들이 차지하는 곳으로 쾌적한 공간이 아니에요. 일본도 이런 고가도로 밑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고 이런 공간을 탈바꿈하는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그중 JR히가시니혼의 자회사인 JR히가시 도시개발은 2010년부터 아키하바라와 오카치마치 사이 구간을 '산책하고 싶은 고가대로 아래'라는 컨셉으로 재개발을 시작했어요. 도시환경도 개선하고 수익도 가져가는 일석이조의 사업이에요. 다만 다른 나라와의 차이는 폐선로의 고가 하부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영되는 고가 하부를 사용한다는 점이네요.

  



전철 소리가 심장을 뛰게 하고 흥을 돋우는 고가아래 요코초



이번 여행에 잡은 호텔이 아키하바라 쪽이었는데 고가 밑을 지나다가 AKI-OKA STREET를 알게되었어요. 고가 아래를 알차게 쓰는구나 생각만 하다가 개발배경을 좀 찾아보게 되었고요. 최근 도시개발 사례는 아니지만 고가도로 아래 사용법이 흥미로워서 계획에 없던 이곳에 대해 좀 이야기해 볼까 해요.


“AKI-OKA”아키하바라와 오카치마치역 사이를 “걷고 싶어지는 고가 아래”라는 컨셉으로 2010년에 시작되었어요. 첫 번째로는 가게마다 장인이나 디자이너들이 만든 창의적인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2k540 AKI-OKA ARTISAN" 들어섰고요. 두 번째로는 아키하바라역 쪽에 “식생활 문화의 거리”엄선된 일본 전국의 일품을 모은 CHABARA AKI-OKA MARCHE" 이어졌어요. 그리고 세 번째로는 두 시설 사이 약 160m 구간에 상업시설 4 동, 숙박시설 1 동으로 개발된  “SEEKBASE AKI-OKA MANUFACTURE” 2019년 말에 오픈했어요.




JR 아키하바라와 오카치마치역 사이 고가도로 아래  “AKI-OKA STREET” 2k 540이 궁금했을 뿐인데 줄줄이 걸려듦




처음 고가도로 밑을 지나면서 본 시설은 2k540이었어요. 칙칙한 회색빛 고가 아래 하얀 속살 같은 공간을 채우는 노란 조명. 낮에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으며 진열된 제품들이 법상치 않음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차분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열차 소리에 심장이 두근두근 반응하면서 이 걸 살까 말까 열 번도 더 고민했던 곳. 생활용품, 옷, 신발, 가방.... 장인의 수제품이라 저렴하진 않았고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분위기에 취해서 샀다가는 한국에 가서는 꼭 후회할 것 같은 그런 제품이었어요.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호텔을 오가며 꼭 들러보고 눈호강을 하면서 분위기를 즐기던 곳이라 기억에 남아요.



고가 아래 반전 있는 공간. 우중충한 회색의 인프라 사이로 노란 조명의 하얀 공간이 다정하게 느껴짐. 2010 오픈하여 집객, 유지관리, 운영 모두 잘 되고 있음 ⓒ파리지언니




2k540 AKI-OKA ARTISAN


JR히가시니혼의 자회사 JR 동일본 도시 개발에서 개발을 시작하면서 고가대로 아래를 사람들의 생기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탄생시키기로 했어요. 이를 위해 ‘모노즈쿠리(제품 만들기)’를 테마로 한 상점가를 만드는 프로젝트 ‘2k540’ 진행했다고 해요. 아키하바라는 전자제품,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들의 성지로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디자인과 아트, 그리고 모노즈쿠리에 특화된 세련된 숍들을 모아둔 핫플레이스를 만든 곳이 ‘2k540 AKI-OKA ARTISAN 바로 여기라고 해요. ARTISAN은 프랑스어로 장인이란 뜻으로 아트와 디자인을 바탕에 깔아 둔 곳이란 걸 말하고 있어요. 가게마다 장인과 디자이너들이 만든 창의적인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고, 특히 이곳에 자리를 잡은 숍들은 아트와 모노즈쿠리를 연계한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리피터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요. 아트 혹은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해 봤을 정도로 인기를 얻는다고 하며, 저 같은 뚜벅이 관광객도 그 분위기로 끌어들이는 신비한 곳이죠.



고가도로 유효높이가 한국 보다 낮아서 더 휴먼스케일에 가까운 매장들을 배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음. 도시 유휴공간을 알뜰하고 아름답게 쓰는 방법에 대해 배움 ⓒ파리지언니
2010년 오픈해서 지금까지 활발하게 운영되는 샵들과 클래스. 공실 없이 탄탄하게 운영되는 제도적 지원이 궁금했음 ⓒ파리지언니




SEEKBASE  AKI-OKA MANUFACTURE


여기서 조금 더 오카치마치 방면으로 걸어가면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상업 시설인 ‘SEEKBASE AKI-OKA MANUFACTURE’이 있어요. JR 동일본 도시 개발은 아키하바라역에서 오카치마치역 사이의 고가 아래에 새로운 거점으로 2019년 말에 오픈했어요. 탐구 (= SEEK) 기지로서 광적인 탐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성인 기지를 만들고 싶은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늦은 귀가 때문에 사실 밤에 지나쳐 가보기만 했어요. 다음에는 낮에 꼭 가보려고요.


ⓒconcentinc



이곳은 카메라와 음악에 관련된 컬렉터 아이템을 다루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어요. 시설은 상업 시설이 4동, 숙박시설 1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상업은 오디오와 카메라, 취미, 공예, 증류소 등 신규 출점하는 새로운 업태의 개성적인 전문샵이 들어서 있다고 해요. 그리고 고가 아래 창문 없는 객실이 있는 호텔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여기더라고요.




기억자 모양의 검은색 5번이 창문이 없는 고가도로 아래 호텔로 유명한 UNDER RAILWAY HOTEL AKIHABARA임



 UNDER RAILWAY HOTEL AKIHABARA


2019년 12월 ’SEEKBASE AKI-OKA MANUFACTURE’의 공간 한편에 이곳과 가장 부적합해 보이는 한 시설, 바로 고가 밑의 호텔 ‘UNDER RAILWAY HOTEL AKIHABARA'이 오픈했어요. 실제로 보면 외관만으로는 여기가 호텔인지 잘 알기 어렵지만 호텔 OTT에서도 예약 가능한 번듯한 호텔이에요. 전철이 위에 달리고 있고, 아래에는 차들이 24시간 들락거리는 주차장이 있는 곳, 즉 가장 시끄러운 공간에 자리 잡고 태생적으로 객실에 창문도 없는데 운영이 되는 신기한 호텔이죠. 실내는 창문이 없는 단점을 그린월이나 인테리어적인 방법으로 해결했고, 방음도 신경 썼다고 해요. 실제로 밤에만 잠을 자는 저렴한 호텔을 원하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해서 큰 컴플레인 없이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철도 밤에는 다니지 않으니까요.



ⓒUNDER RAILWAY HOTEL AKIHABARA




CHABARA

아키하바라역 쪽으로는  “식생활 문화의 거리”의 컨셉으로 일본 전국의 일품을 엄선하여 모은 “CHABARA AKI-OKA MARCHE”는 마켓을 계획했어요. 단순하게 고급 식자재를 판매하는 곳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가로 거래하고 연결되는 장소라고 해요. 그 외에도 레스토랑, 카페 등 휴식을 취할 공간 또한 개성 있는 곳들로 모여서 “AKI-OKA STREET” 구성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JR 동일본 도시 개발기분 좋은 생활 만들기, 살고 싶어지는 지역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예요. 크게 4개의 사업을 축으로서 전개하고 있어요. 주요 사업은 고가 아래나 선로 근접 용지의 관리 및 점포 개발 등을 실시하는 “개발·운영 사업”과 역을 중심으로 쇼핑센터를 개발 운영하는 “쇼핑센터 사업”, 오피스·주택·기숙사 등의 임대나, 분양주택을 취급하는 “오피스·주택 사업”, 마지막으로 역 근처 옆에서 물품 판매·음식 점포 등을 전개하는 “물품 판매·음식 사업”이라고 해요. 이러한 네 개의 사업부문을 연계해 “연선 가치의 창조, 살고 싶어지는 지역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지상에 노출된 도쿄의 전철은 늘 복잡하고 신기한 교통수단이에요. 고가 아래 활용법도 흥미롭고요. 시대와 산업이 변하면서 생겨나는 도시의 유휴공간들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도쿄를 갈 때마다 유심히 볼 것 같아요. 다음에는 또 어떤 사기업 철도회사 도시개발팀에서 신기방기한 도시의 유휴공간 활용법을 보여 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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