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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Nov 14. 2019

죽기 전에 꼭 들러야 할 집합주택

<발췌식 독서> 집의 시대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



나는 수십 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얘기해왔다. "주거계획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가 되기를 희망하라. 그리고 이론적으로 무장하라. 건축가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주거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단독주택보다는 집합주택이, 그리고 부유한 사람을 위한 집합주택보다는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택이. 언젠가 우리 사회는 집에 관해 커다란 방향 전환을 할 것이다. 인식이 변화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잘 준비하면 세속적인 성공도 보장된다. 야마모토 리켄, 아틀리에 파이브, MVRDV 등 많은 건축가들이 단 하나의 집합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분히 감상적이고 선동적인 말이다. 집의 시대 /손세관--p 476



집의 시대 저자인 손세관 교수님께서 책 끝에 하신 말씀입니다. 근래 집합주택을 설계해 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세속적 성공을 위해 이론적으로 준비를 해봅니다. 30개 주옥같은 집합주택 사례를 꼼꼼히 읽으며 포스트잇을 붙여 나갑니다. 프랑스에 관련된 모든 사례들에는 항상 촉을 세우고 있고, 근래 꽂힌 네덜란드 주거와 비엔나의 사회주택, 그리고 과연 슈퍼스타 도시 서울에 적정한 집합주거는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 내려갑니다.


브런치 장르는 서평이지만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이론을 정리한 노트를 보신다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집합주택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 중에 제가 꽂힌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꼭! 책을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베를라허의 도시 vs. 근대건축 국제회의의 도시


베를라허가 계획한 암스테르담 남부의 동쪽 지구 모습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건축가 중에서 도시에 대해 독자적인 이념을 제시하고 실제로 계획에 적용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 베를라허와 르코르뷔지에, 르코르뷔지에의 도시 이념은 근대건축 국제회의의 이념을 대변했고, 베를라허의 이념은 1930년대 초반까지 네덜란드의 여러 건축가가 추종했다. 따라서 20세기에는 도시에 관한 두 모델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를라허의 모델과 근대주의자들의 모델, 두 모델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베를라허는 도시를 '예술품'으로 본 반면 근대주의자들은 도시를 '기계'로 보았다. 이게 극명한 차이의 근간이다.


베를라허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를 길, 광장, 주거 블록이라고 했다. 블록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길과 광장으로 이어진다. 도시설계는 그런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작업이다. 도시의 주인공은 건축이고, 그것의 집합이 블록이고, 그것이 모인 전체가 도시다. 도시는 유기체다. 블록은 그것을 이루는 세포, 그 사이에 난 길은 도시의 핏줄, 그리고 돌아다니는 시민의 움직임은 혈액이다. 반면 근대주의자들에게 도시를 이루는 요소는 거주, 노동, 휴식이 각각 발생하는 공간, 그리고 그들을 잇는 교통, 이렇게 넷이다. 도시는 명확한 기능에 의해 '조닝'으로 구분된다. 블록은 사실상 없다.


베를라허의 도시는 선적이고 연속적이다. 건물이 이어지면서 연출하는 조화로운 운율, 이게 도시미의 근간이다. 녹지는 블록의 내부에 있어 눈에 뜨이지 않고 이어지는 가로수가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도시는 전반적으로 낮고, 기념물이 드문드문 솟아오른다. 도시의 움직임은 보행자의 속도에 맞춰진다. 반면 근대주의자들의 도시는 점적이고 단속적이다. 연속성이 없다. 건축보다는 공원과 녹지가 우위를 이룬다. 그것이 도시미의 근간이다. 도시에 자리하는 주택은 '녹지 위의 고층 주거'로 존재한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높다. 그곳은 자동차의 도시이므로 모든 움직임이 빠르다. 그러므로 우연한 만남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도시는 근대주의자의 도시다. 과거에는 베를라허의 도시에 가까웠으나 근대주의자의 도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우리는 베를라허의 도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잘 가르치지도 않는다. 도시를 만들 때 건축을 얘기하지 않는다. 건물을 높이 세우고 그 사이에 많은 녹지를 확보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리고 통경축과 바람길을 이야기한다. 사실 공간을 넓게 확보해 통경을 한다 해도 뒤에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다. 베를라허의 도시를 이루는 건물은 짓는 데 수년이 걸린다. 아름다움을 위해 갖은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근대주의자의 도시에 짓는 건물은 콘크리트를 붓고 굳기를 기다렸다가 조금 더 시간을 쓰는 것뿐이다.


집의 시대 /손세관 ---P124-125





프랑스의 그랑 앙상블


프랑스의 악명 높은 그랑 앙상블 사르셀르 지구의 전경


그랑 앙상블은 '실패 사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페르낭 푸이용이 워낙 싫어했으므로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여기에 쓴다. 그랑 앙상블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프랑스의 주요 도시에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의미한다. '큰 조화라는 용어의 의미는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실상은 너무 단조롭고 기계적인 환경으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주택정책의 실패를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문화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행한 일이니 더욱 뼈아프겠지만 오늘날 프랑스 정부에서는 단지를 하나하나 개조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자 방법론이다.


문제는 심각한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의 피해도 상당했거니와 인도차이나와 알제리라는 두 곳의 큰 식민지를 잃어버린 것도 타격이었다. 식민지로부터 돌아오는 사람들이 넘쳤다. 195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400만 호의 주택이 부족했다. 정부에서는 대규모 단지를 마구 건설했다. 도시 내부에는 적절한 부지가 없었으므로 단지는 주로 도시 외곽에 건설되었다. 당연히 교통, 학교, 상점들로부터 고립되었다. 환경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은 더욱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초래한 결과였다.


그랑 앙상블로 이주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전에 살던 슬럼과 비교하면 물리적 환경은 분명 나아졌다. 그러나 단지는 근본적으로 취약했다. 주택의 면적은 너무 작았고, 이웃 간 소음은 심했고, 공공서비스는 열악했다. 건물의 시공 수준 또한 턱 없이 낮았다. 단지에는 이웃 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주변에서 구할 수 없는 주부들은 심각한 지리적 고립감에 시달려야 했다. 할 일 없는 청소년들은 집단을 만들어 일탈 행동을 일삼았다. 성인들 사이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증가했고, 범죄가 빈발했다. 파리 외곽의 사르셀르 지구 Commune de Sarcelles가 가장 악명 높은 그랑 앙상블이다. 지구를 놓고, "이런 실수는 더 이상 생각하지도 저지르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정도였다.


많은 전문가가 그랑 앙상블의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좀체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불만에 찬 거주자들이 드골 정부에 반대를 던지자 뒤이은 퐁피두 정부에서는 더 이상 그랑 앙상블을 짓지 않기로 결정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은 종지부를 찍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에서는 그랑 앙상블을 전면적으로 재조직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거대한 주동 사이의 넓은 공지에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을 섞어 넣음으로써 마을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이 대종을 이루었다 "내 집 만들기"라고 불리는 사업이다. 이런 방법으로 프랑스의 많은 단지가 개조되어 인간적인 주거지로 거듭났다.


집의 시대 /손세관 ---P198-199





붉은 빈의 주거 개혁


오스트리아 빈 카를 마르크스 호프


붉은 빈에서는 새로 짓는 공공주택의 모델을 이웃 나라와 완전히 다르게 설정했다. 그들은 전원도시 이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합리적인' 판상형 아파트 대신 전통적인 블록형 집합주택을 고수했다. '호프하우스Hofhaus'라고 불리는 형식이다. 제한된 도시권역을 가지면서 인구 200만 명을 수용한 빈에서는 토지가 많이 소요되는 전원도시 이념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시 도시 경계부에는 미개발지가 상당히 있었지만 그곳으로 통하는 교통수단이 미처 마련되지 못했다. 도시 전체에 걸쳐서 교통과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먼저 구축해야 했지만 그렇게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주택문제가 너무 심각했다. 결국 집을 지을 땅은 기존 도시 안에서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블록형 집합주택이 도시 곳곳에 들어섰다. 그들은 그것을 '게마인데 호프 Gemeinde-Hof' 또는 '게마인데바우Gemeindebau'라 불렀다. '커뮤니티 건축' 또는 '집단을 위한 건축'이라는 뜻으로 '서민이 모여 사는 집합주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같이 당당한 고전적 외관을 지니고 내부에는 녹지가 풍부한 중정을 담고 있었다. 4~6층 높이에 적게는 수십 호, 많게는 2,000여 호의 주택을 수용했으므로 빈의 전통적인 아파트에 비해 규모가 컸다. 보통은 한 블록 전체를 차지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블록을 합친 대규모 부지 위에 건설되기도 했다. 도시 내에 이런 주거 블록이 400여 개나 새롭게 들어섰으니 놀라운 성취였다.


대규모 블록형 집합주택은 사회주의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그들이 건설하는 집합주택 속에서 거주자들이 '민주적 공동체'를 이루기 바랐다. 개인이 뿔뿔이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는 외톨이의 삶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면서 오락과 여가를 공동으로 즐기는 사회적인 삶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을 위해서는 가운데에 큰 중정이 있는 블록형 집합주택이 가장 적합했으며, 규모는 클수록 좋았다. 다양한 공공시설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을 두루 갖춘 대형 집합주택은 여성의 삶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모두가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의 짐을 벗어야 했다.


붉은 빈에서는 복지 및 문화사업도 진행했다. 시민의 의식과 생활을 개혁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노동자 문화를 형성해 궁극적인 낙원을 이루고자 했다. 우선 광범위한 의료복지를 시행했다. 높은 신생아 및 어린이 사망률을 끌어내리고, 성인의 건강 수준도 대폭 향상 시키려 했다. 교육제도를 개선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진 시민 양성에도 주력했다. 곳곳에 도서관을 짓고 책 읽기를 권장했다. 극장의 수를 늘리고 강연회, 음악회, 영화 상영 같은 모임을 독려했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 올림픽이나 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를 열고, 오페라 공연 티켓을 싼값에 배포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가족 음악 경연대회는 허구가 아니었다.


집의 시대 /손세관 ---P143-144





고립된 섬이 아닌 도시적 단지 만들기


서울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세르트가 뉴욕주 도시개발공사의 의뢰를 받아 1976년에 완성한 루스벨트 섬의 집합주택 또한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다. 루스벨트 섬은 맨해튼의 동쪽을 흐르는 이스트 강 East River에 떠 있는 좁고 긴 섬이다. 거의 버려진 이곳을 뉴욕주 도시개발공사는 새로운 주거지로 개발했다. 섬의 마스터플랜은 당시 미국 최고의 건축가 필립 존슨이 수립했다. 도시개발공사에서는 이스트우드 Eastwood라고 불리는 섬의 동쪽 지구에 대해 세르트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이곳에서도 타워와 중·저층 주동을 긴밀하게 연계시키면서 단지를 하나의 완결된 유기체로 만들었다. 단지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중요성을 둔 것도 피바디 테라스와 유사했다.


세르트는 섬의 중앙을 관통하는 길과 연계해서 고층주동을 두었다. 그리고 건물의 이를 단계적으로 낮추어 강에 면해서는 저층주동을 배열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단지는 상당한 밀도를 달성하면서도 모든 주택은 좋은 조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건물의 옥상을 정원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뉴욕의 법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단지에 다양한 외부공간을 부여해 주민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늘 밝은 햇빛이 충만한 중정이 이곳의 가장 중요한 외부공간이다. 건물의 높이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주동 계획 수법은 세르트의 제자인 우규승 kyu Sung Woo 1941에게 전수되었다. 우규승은 그것을 서울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적용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이야기는 뒤에서 하겠다.


집합주택에 대한 세르트의 접근법은 단순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길에 면하는 건물은 낮게 깔아 연속적 경관을 연출하고, 높은 건물은 뒤에 두어 위압감을 줄이는 계획, 낮은 건물은 외부공간을 둘러싸게 하고, 높은 건물은 시각적 악센트로 활용하는 계획, 이제는 도시설계의 기본으로 간주되는 접근법인데, 그것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 세르트다. 이런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면 아파트 단지가 고립된 섬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차일렌바우 같은 기계적 주동 배치나 단지 전체에 탑상형 주동을 균등 배치하는 반 도시적인 접근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계획 수법이 일반화했고,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형식으로 정착했다. 일본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계획기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법을 채용하는데 소극적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집의 시대 /손세관 ---P223





혼합개발, 그리고 런던의 알톤 지구


혼합개발 방식으로 건설한 영국 로햄프턴 알톤 지구


혼합개발 mixed development은 고층과 중·저층 주동을 다양하게 섞어서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1950년대 초반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런던 주의회가 런던 근교 로햄프턴에 건설한 알톤 지구가 가장 우수한 혼합개발의 사례로 꼽힌다. 동·서두 단지로 나뉘어 1959년에 완성된 알톤 지구는 영국 근대건축의 커다란 성취로 일컬어진다. 이 단지 이후 혼합개발 기법이 적용된 단지는 세계 곳곳에 건설되었지만 알톤 지구만큼 우수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혼합개발 방식을 채택한 배경은 다양했다. 우선 선택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젊은 부부는 고층아파트나 4층 내외의 연립주택에, 아이 많은 가족은 마당 있는 주택에, 그리고 노인은 단층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영국 관리들의 판단이었다. 혼합개발은 이 모두를 가능케 했다. 또한 건축적 변화와 공간적 다양성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하고 기계적인 구성이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혼합개발을 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았다. 다양성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야 하고, 외부공간을 적절히 배열해야 하고, 고층 주동에서 저층 주동으로의 시선도 차폐해야 했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혼합개발이 시도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거환경의 '영국스러움Englishness'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공공이 주택건설 사업을 본격화하자 영국 건축가들은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차별되는 그들만의 주거지 만들기를 시도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건설한 주거지로 눈을 돌렸다. 10층 내외의 타워, 즉 탑상형 주동이 낮은 건물 사이에 자리하는 목가풍의 주거지, 영국 건축가들은 뾰족한 탑상형 주동이 자연경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것을 저층 주동과 혼합하는 방식에 눈을 돌렸다.


1955년 완성된 동쪽 단지는 세대수의 절반 이상을 11층 높이의 타워에 수용하고, 나머지는 4~5층 규모의 복층 아파트와 2층 연립주택에 수용했다. 저층 주동은 경사 지붕을 씌운 벽돌조 건물로, 부드러운 시선의 변화를 연출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자리한다. 목가적이고 인간적인 단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런데 서쪽 단지를 계획한 건축가들은 상당히 다른 접근을 했다. 그들이 마르세유의 위니테에 꽂혀버린 탓이다. 그들은 위니테를 판박이처럼 닮은 5동의 판상형 주동을 건설했다. 그리고 12층 높이의 타워, 4층의 아파트, 2층과 단층의 연립주택을 사이사이에 배열했다. 이곳의 타워는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요철 없는 말끔한 타워다.


비평가들은 동쪽 단지는 스칸디나이비풍의 신인간주의 서쪽 단지는 르꼬리뷔지에풍의 형식주의라는 성격을 부여했다. 영국은 오늘날까지도 이 알톤 지구의 우수성을 자랑한다. 빛나는 도시의 이상과 영국적 경관을 모두 담고 있다는 것이 우수성의 근간이다. 


집의 시대 /손세관 ---P226-227





우리나라에서 카펫 하우징은 불가능할까


필라델피아 팬스 랜딩 스퀘어의 배치도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매우 높은 밀도를 형성


루이스 사워와 피셔·프리드먼 건축사무소는 고층 주택의 시대가 갈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그들은 단독주택의 장점과 도시의 활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주택 즉 도심의 저층·고밀 집합주택이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중산계층 수요자들은 단독주택의 성능을 가지는 도심의 집합주택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세련된 저층·고밀 집합주택을 보자 곧 그것에 열광했다. 편리한 접근성, 선택의 다양성, 독특한 디자인,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좋았다. 지금도 그런 건물이 미국 대도시의 도심에 들어서면 소비자는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중산층을 위한 도심의 우아한 저층 집합주택, 규모는 100 세대 내외. 조그마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규모. 설계자는 계획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두는 것이 정상이다. 집합주택이지만 모든 단위주택이 단독주택에 버금가는 거주성을 가질 것. 거기에다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해 특별한 개성을 가지면서 주변과 조화도 잘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단위주택이 마당을 가지는 집합주택. 모셰 사프디의 계획 목표이기도 했고 루이스 사워의 목표이기도 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삭막한 고층아파트를 고가에 구입하는 시대가 지속될까? 서구 사회는 이미 방향 전환을 했고, 일본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설사에서는 팬스 랜딩 스퀘어 같은 카펫 하우징을 지을 수 없는 것일까? 왜 고층아파트, 주상복합 아파트 같은 탐욕스러운 주거환경만을 짓는데 주력하는 걸까?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의 하나다. 높은 땅값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할지 모른다. 저층으로 카펫처럼 깔아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층의 타워 한두동과 병치하면 해법이 찾아질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건설사가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내세운 '차별화된' 아파트를 개발하겠다면서 그 방법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기존 모델을 완전히 포기할 용기가 있다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답은 천지에 널려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다. 단 하나에 꽂혀있기에.


집의 시대 /손세관 ---P271





금속으로 마감한 블록형 집합주택, '더 웨일'


더 웨일 암스테르담


블록형 집합주택도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암스테르담의 동부항만 지역에 건설된 집합주택 '더 웨일 The Whale' 즉 고래는 미래의 블록형 집합주택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더 웨일은 조각적 형상의 은빛 건물로, 동부항만지역 어디에서도 눈에 띈다. 반짝이는 표피와 물을 차고 오르는 듯한 역동적인 형상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건물의 크기는 50 × 100m로 베를라허가 1915년 암스테르담 남부지구를 계획할 때 설정한 작은 블록과 같은 크기다. 왜 베를라허의 블록과 같은 크기로 한 것일까? 이 건물이 암스테르담의 주거 블록이라는 것.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지만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설계자는 서울 세곡동에 있는 LH 강남 힐스테이트 단지를 설계한 프리츠 판동언이다. 더 웨일의 표면적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블록의 양 끝을 들어 올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를 금속으로 마감한 것이다. 지붕은 알루미늄으로, 외벽은 아연판으로 마감했다. 건물의 양 끝을 들어 올린 것은 중정을 배타적 사적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건물을 들어 올리다 보니 지붕선은 자연히 V자형으로 기울어졌는데 그것 때문에 중정 안쪽까지 햇빛이 들어온다. 간단한 방법을 썼을 뿐인데 건물은 폐쇄성을 탈피했고 중정은 도시공원과 비슷한 공적 공간이 되었다. 일단 보면 간단한 변화라고 생각되지만 이전에는 누구도 그런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더 웨일은 볼록형 집합주택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 건물을 보노라면 블록형 집합주택의 변신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건물을 앉히는 방법도 슬기롭다. 건물을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은 후 오른쪽으로 30도 틀었다. 이렇게 하면 중정은 늘 밝고 아늑하며, 모든 주택은 남쪽을 향하게 된다. 물론 정남향은 아니다. 블록형 집합주택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은 북쪽을 향하는 주택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음영이 생겨서 어두우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비록 북쪽에 있어도 남쪽의 중정을 향하면 밝고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사방의 코너에 위치하는 집은 다양한 조망을 향유할 수 있어서 매우 매력적인 주택이 된다. 고래는 매우 다양한 규모와 형식의 단위주택을 제공했는데, 규모가 큰 주택은 모두 사방 코너에 두었다. 그곳의 입주자는 푸른 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막힌 경관을 즐기면서 산다.


집의 시대 /손세관 ---P43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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