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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Dec 29. 2019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 /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저자인 리처드 세넷은 몇 년 전 뇌졸중이라는 모습을 한 저승사자가 자신에게 사전답사를 하러 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중병을 앓고 난 후 무엇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쌓은 방대한 지식, 철학, 사회학, 인류학, 건축학, 도시 계획, 심리학 등등을 총망라한 책을 쓰게 됩니다. 교수이자 계획가로서 그는 항상 실제 업무는 별로 많이 하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보며, 더 많이 작업하고 더 적게 가르치면서 실용주의자의 (실무자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곤경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합니다. 저자는 도시와 건축 등 단편적인 공간을 조목조목 가르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전 연구 인생을 담아 시간 속 변화에 따른 공간에 대해 방대하게 이야기하며 신선한 자극과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들어가는 말 : 비틀린, 열린, 소박한



자는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내용을 함축하는 세 단어를 소개합니다. 뭐는 뭐다 딱 떨어지게 정의하지 않아 제가 이해한 데로 요약했습니다.



비틀린


도시 City는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와 지각, 행동, 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로 구분되며, 프랑스어의 빌 Ville씨떼 Cité라는 단어는 이 둘의 차이점을 가장 먼저 구분했습니다. 빌은 전체 도시를 가리킨 데 반해 씨떼는 특정한 장소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빌은 마을이라는 약간의 행정적? 의미가 강하고, 씨떼는 단지라는 뜻으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 범위?에 의미를 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원과는 다르게 그랑앙상블처럼 실패한 공동주택 단지에 씨떼라는 단어를 붙여서 살짝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긴 합니다만...)

이는 건설환경과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거주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기본적인 차이를 설명해 줍니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방식이 도시가 건설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지만, 여러 사례에서 빌과 시떼는 절대 이음매 자국 없이 매끈하게 짜 맞춰질 수 없음을 설명하며 "비틀린"이란 단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등 담을 치고 이웃과 무관하게 들어서는 맥락 없어 보이는 단지나 건축 등. 도시와 단지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지요.



열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도시는 상이한 종류의 인간들로 구성된다. 비슷한 인간들만 있으면 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열린 사회의 자유주의적 가치는 상이한 종류의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어떤 사회에든 어울릴 것처럼 보입니다. 자는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 중세 후기 독일 속담을 처음 인용하며 본인의 띵언처럼 계속 반복하여 언급하게 됩니다. 자가 말하는 열린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정의한 부분은 없지만, 삶이 열리면 다층적이 된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인용해 봅니다. 그는 열린 도시가 씨떼와 빌에 관련된 비틀린 문제들의 해법 일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그 복잡성을 활용하는 열린 도시는 경험의 복잡한 분자들을 만들 것이며, 계획가와 건축가의 역할은 복잡성을 장려하여 부분의 총합보다 더 큰 빌,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키며, 그 속에서 질서의 포켓들이 방향을 지시해주는 빌을 창조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윤리적으로 열린 도시는 물론 차이를 용인하고 평등을 촉진하겠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을 고착화하고 익숙한 족쇄에서 풀려나게 해 주어 경험을 확장하고 실험할 수 있는 토양을 창조할 것이라는 이상론적이며 어려운 발언을 합니다.



소박한


도시계획가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저자는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1960년대에 쓴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는 책을 읽다가 소박한 만들기의 윤리에 설득당했다고 합니다. 그 까마득한 시절에 뜨거운 이슈들에서 벗어나 건설 환경의 재료, 형태, 배치가 일상생활의 관행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기록한 것을 읽고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는 말은 거주함으로써 장소 만들기가 유발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또한 저자는 도시계획가는 도시인의 (제 생각으로는 개발자가 더 어울릴 것 같네요) 하인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하며, 도시계획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비판함과 동시에 본인이 건설하는 것에 대해 자기비판적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계획


1부는 도시계획도시 만들기라는 전문적 실천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들여다본다. 19세기의 도시 제작자들은 사는 것 the lived과 지어진 것 the built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20세기에는 시테와 빌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도시 만들기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도시는 내적으로 빗장 공동체 gated community가 되었다.

2부에서는 사는 것과 지어진 것 사이의 균열이 세 가지 큰 이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지구 북부에서 미해결 된 갈등들이 지구 남부에서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도시 팽창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테는 상이한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 때문에, 오늘날 도시는 사회학적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미첼의 스마트 시티는 인간적으로 진화해 이제 악몽 혹은 약속의 땅이 되었다. 기술이 시테를 닫을 수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도시가 좀 더 개방되었더라면 어떤 것이 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한다. 열린 시테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잡성을 관리하는 기술 개발을 요구한다. 빌에서는 다섯 가지 열린 형태가 도시의 장소들을 좋은 방향으로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도시계획가들이 이런 열린 형태를 사용하는 부분에서 도시 주민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4부는 도시의 본질적인 비틀림을 다룬다. 그 사회적, 기술적, 건축적 균열의 밑바탕에 있는 시간의 작업은 사는 것과 지어진 것 사이의 관계를 방해한다. 이 관계는 시적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문제다. 기후변화라는 격동과 그 불확실성은 어떤 도시에서든 파열을 일으킨다. 이런 격동이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 보스턴에서부터 나를 괴롭혀온 문제로 돌아가게 한다. 윤리가 도시 설계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을까?


   




저는 몇 달간 준비하고 고생한 현상설계 패배의 통증이 누그러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 책을 아껴서 읽고 있습니다. 설계사무실에서 일하려면 현실적으로는 실무형 인간이 되어야겠지만, 적어도 내 나이 또래 교수들보다는 적용 가능한 생각의 토대를 갖춘 이론가가 되어야겠다는 뒤 끝 있는 다짐을 하면서 말입니다.^^


앞으로 회에 걸쳐 책의 내용을 제 나름대로 소화하고 이해한 문장 채집용 독후감을 올릴 예정입니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심오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네요^^ 1판 1쇄 발행이 2020.1.3으로 찍혀 나온 따끈한 신간입니다. 꼭 구매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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