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언니 Jan 16. 2020

비엔나, 그 집의 감각

주거, 문화, 사회통합의 코하우징 자륵파브릭


행복의 열쇠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란 말처럼 평화롭게 각자의 시간을 온전하게 누리며 함께 사는 곳. 복도에 나가 한가롭게 멍 때리기 좋은 곳, 전면 유리창 속 남의 집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아예 시간 개념을 잃어버리는  곳, 이방인에게 여유로움과 정직한 고독을 느끼게 해주는 곳,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늘 있었던 다정한 이웃과 공간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출퇴근이 없던 곳!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동화속 풍경을 마주하고, 경사진 바닥을 통해 자연스럽게  중정으로 연결




비엔나 출장! 방문할 건축사사무소에 대표 건축가가 설계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면 당연히 묵어보고 싶겠지요. 저도 자발적으로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다며 남성으로 구성된 비엔나 출장단으로부터 화려한 고립을 선택했습니다. 호텔을 마다하고 머무른 그곳은 BKK-3의 대표인 프란츠 숨니치 건축가의 사무실이 있는 미스 자륵파브릭이란 코하우징 건물 안 게스트 하우스에요. 몇 걸음 걸으면 숙소와 사무실을 오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직주 초근접의 사택이나 숙직실 같은 그런 곳은 절대 아닙니다. 저의 방은 오히려 과장을 보태면 전설 속 나라의 신비한 오두막에 가까운 공간이었다며...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집에 묵었던 선택에 찬사를 보내며 오래 그 집을 추억할 것 같아요.




중정에 면한 1층이 숨니치 선생님 사무실. 홈 오피스이자 매조네트 형식으로 되어 있어 2층 복도로 연결되며 게스트 하우스에서 15초면 도달





추억#1
복도 의자에 앉아 남의 집 구경



전면 유리로 된 복도식 아파트. 발코니인 듯 복도인 듯! 연결된 외부공간 그 사이에 있는 모퉁이나 알코브진 아늑한 공간에는 항상 의자가 있습니다. 의자가 있으니 앉아서 가까운 옆집 구경을 하고, 발코니 난간이 튼튼하니 기대어서 위 아랫집 구경을 합니다.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등극한 비엔나, 시민들이 행복한 이유는 집 걱정이 없어서라는 숨니치 선생님의 기사 속 인터뷰가 하나도 우스개 소리가 아니란 을 알게 되었으니.... 이 곳은 사회주택이자 임대주택으로 집을 꼭 사야 하는 생각을 초월한 사회 전반적인 자유로움이 집을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상층 온실같이 생긴 집은 통창으로 집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 입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예쁘게 꾸며 훔쳐보게 만듦




남의 집을 보고 있노라면 내부는 사실 넓은 면적을 가진 집은 아닙니다. 50제곱미터 규모가 대부분이며 1개 층의 단층 형식, 2개 층의 메조 네트 형식, 3개 층 스킵플로어 형식 등 3 세 개의 타입이 있는 듯 보입니다. 제가 묵은 단층형 타입은 직사각형 평면이 아니라 중간이 꺾인 벽이 있는 오각형 집으로 휘어진 벽면 때문에 현관 통유리에서는 안 쪽 외벽에 면한 내부면이 보이지 않는 신박한 뷰를 연출하기도 하지요. 평면을 보면서 이런 집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꺾인 벽면 하나가 연출하는 새로운 공간은 시원한 층고와 맞물려 한국의 모듈화된 집과는 다른 이국적인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추억#2
나만의 도서관



게스트 하우스 아래층에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있었다니! 알루미늄 시스템 창호의 방음 성능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며, 2개 층을 연결하는 아슬아슬한 경사로는 세탁실, 공용 주방, 공용 식탁, 도서관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이 모든 공간은 벽이 아닌 유리로 구획되어 나뉘어 있지만, 통하는 공간으로 서로를 관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날도 도서관 저 편 공용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는 입주민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간섭과 방해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보이드 공간에 마련된 구배 무시한 경사로와 유리벽은 서로를 투명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반사하기도 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언젠가 한 번 도 연출하고픈 공간으로 머릿속에 남겨 두었습니다. 저는 경사로를 앉을 수도 있는 계단으로 만들 예정이에요.^^









추억#3
동양사람을 처음 본 듯한 꼬맹이



붕붕이를 타고 너비 3미터가 넘는 복도를 넓은 대로 삼아 고속질주를 하던 게스트 하우스 옆집 꼬맹이. 깜깜하던 옆집에 불빛이 새어 나오고 인기척이 들렸을 테니... 블라인드 틈 사이로 내 방을 보길래 문을 열어 준 것뿐인데... 공포가 서린 꼬맹이 눈빛이 잊히지 않네요. 난 해치지 않아 꼬맹아!




나도 입주민인냥 문 열고 지냄




꼬맹이,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과 심지어 망명자, 장애인 등 다양한 생활문화와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이 함께 사는 진정한 소셜믹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39세대를 이루는 코하우징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설계자인 숨니치 선생님께서는 조합원들의 의견에 따라, 사회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건축적 도시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추억#4
빗방울 소리



출장 후 연휴를 보내고 맞은 출근길에 문득 그 집이 생각났습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겨울비 소리 때문이었는데요. 자륵파브릭에 머물렀던 어느 날 비가 내렸거든요. 그 집은 선홈통을 쓰지 않는 디테일로 지어졌는데 그 때 들은 빗방울 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자연 낙수 하는 빗방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과 리듬에 온통 집중했던 날! 그 소리는 도시의 고요 속에 청명하고 경쾌하게 내 마음에도 와 닿았나 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빗방울이 보이는 데, 빗방울이 만드는 합주는 어떻게 설명이....




39세대 56명이 거주하는 미스 자륵파브릭 코하우징은 2호점 같은 집으로  처음 지어진 1호점인 자륵파브릭에 입주를 희망하는 대기자를 위해 1호점과 같은 컨셉(주거, 문화, 사회통합)로 지어진 숨니치 선생님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자륵파브릭은 관공장이라는 뜻으로 터의 이름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제가 며칠 살아보니 이 곳은 산사람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소소한 즐거움과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지어진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 잡지에 소개 되어도 신선한 공간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면서 함께 보낸 시간 속에 낡음을 딛고 생겨나는 멋스러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집은 편안하고 살짝 심심하기도 하지만 조용히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집이 좋아지네요.


이전 08화 체육관 옆 도서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