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지
사람 성향이라는 게 저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서로간에 잘 맞고 맞지 않은 정도는 있어서 그렇게 사회는 잘 굴러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몇몇 회사에서 신기할 정도의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반대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사이가 된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는 신기하고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 이건 가능성이 아니라 팩트다. 학창시절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라서 공부로 무시받는 일은 없었고, 몇몇 학년에는 반장을 했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가장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가고 외톨이가 되고 밥을 먹을 때도 움츠리거나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자존감이 땅을 쳤던 때도 있다. 그 때는 주변에서 나를 꺼리는 것만 같았다. 또래들과의 관계가 세상 전부인 그 시절에는 이런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생활이 정말 힘이 들었다. 물론 다 커서 사회생활을 한다고 한들 그게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느즈막히 대학원에 들어가서 어린 동기들과 공부를 하는 것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설렘에 처음에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기 때문에 몇살 차이나는 동기간에 뭐 문제라고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나는 꼰대스러움도 있고 더 절박한 무언가도 있었고, 어쩌면 그들과 구별짓고 내 스스로의 것들에 집중하려고 들었다. 그래서 갈등도 있었고 어처구니 없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쨌든 졸업을 하고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잊기에는 가슴쓰린 일화가 있다. 교수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데 동기 후배들과 선생님들 사이에 나만 없었다는 것. 분명 학교 어딘가에 있었을 나를 굳이 찾지 않았고 그저 내가 바빠 어디 갔다고만 했다는 그 사진은 액자에 넣어 교수님들 방마다 오랜 기간 내 마음을 쑤시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안되는 자리가 아니었고 또 없어서 오히려 속편한 자리었나 싶기도 하고 나를 부르지 않은 것에 화도 났다가 오히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구나 하는 후련함 같은 것도 있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벌을 받는 것만큼 내 행동이나 관계에 대한 미숙함이 아쉬운 것도 없다. 다행히 유명인은 아니라서 요즘처럼 인성논란까지는 없다 할 지라도 그 때부터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중요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게 썩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가슴 시렸지만 어쩌면 내게도 그 사람들이 그정도일 수 있다는 것에 아쉬움이나 미련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라는 것은 또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다.
돌이켜 보면, 처음 만남에 있어서의 첫인상이 관계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언행이나 행동이 그 선입견을 사실로 만들며 사람을 판단하고 거리를 두거나 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니 나도 그런 관계가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나 스스로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내가 그 사람들의 위치였던 때에 대해 안달복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이 넓고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은 많아서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너무 연연하지 않아야 바쁜 생활을 할 수 있는 현실탓도 있겠지만. 상처받지 않으려면 짝사랑같은 미련을 일단은 넣어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노력을 해보게 될 것인가. 내 성향이라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이거나 오만하거나 미숙한 것이어서 누군가 나를 그렇게 배제하고 무시하고 끝까지 확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마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피하고 그렇게 규정되는 사건에서 나를 해방시켜야 한다.
왜 나를 그렇게 규정하는가. 굳이 내가 그렇게 불평등한 관계에 서 있을 필요가 있는가.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나를 본다면 그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다른 옷을 입으면 되고 언젠가는 그 단추는 떨어지기 마련이니 조바심으로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누군가 나로인해 그런 불편이 있었다면 나처럼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