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3화)
[ TO. 성태. ]
'성태야. 난 이제 떠나지만, 언제나 네 곁이다. 돌아올 때까지 집을 잘 부탁한다.'
[ps. 웬만하면 딴 미용실가. 머리가 영 별로야.]
2주 뒤 토요일. 재민이 출장을 떠났다. 동시에 신은 더 이상 재민의 몸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성태는 이삿짐을 옮기기 전 재민의 집에 들렀고, 자신에게 남긴 메모지를 확인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제나 네 곁? 드디어 미쳤구먼."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오는 걸 느낀 성태는 메모지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피식 웃으며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방 딸린 작은 거실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소박하긴 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옥탑방 원룸을 떠올리면 감지덕지였다. 자주 놀러 오던 곳이었지만, 2년간 아빠와 함께 지낸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삐리리리리-
"네~ 아저씨!"
"성태야, 아빠가 그릇들 싹 다 챙긴다는데 내버려 둬~? 말려~? 아이고!!! 거참 가만히 있으라니께 말을 안 들어! 성태 빨리 와라잉!"
뚜-뚜-뚜-뚜
"하하하하하. 진짜 두 분 너무 잘 어울린다니까."
서둘러 돌아온 성태는 계단 언저리부터 들려오는 투닥거림에 못 말린다며 성큼성큼 올라갔다. 옥탑에는 활짝 열린 현관 앞으로 여러 개의 박스가 불규칙하게 놓여있었다.
그때, 또 하나의 박스를 힘겹게 들고 툴툴거리며 나오는 아저씨와 그 뒤로 지팡이를 짚고 쫄래쫄래 따라 나오는 아빠가 보였다. 성태는 둘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 아저씨 허리 나가겠네~ 저한테 주세요."
"허리 치료비 톡톡히 받아낼 겨~ 아이고, 고되다."
성태에게 박스를 건네주고 기지개를 쭈욱 켜며 말하는 김 씨에게, 뒤따라 오던 중호가 지팡이를 들어 몸 여기저기를 콕콕 찔러댔다.
"정 많은 사람인지 알았더니만~ 우리 아들한테 치료비 받아내려고?"
중호의 지팡이 손놀림에 김 씨는 간지러운지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바닥에 놓여있는 박스를 피하지 못하고 넘어뜨렸다. 성태는 두 중년의 어린아이 같은 장난에 한숨을 푹 내쉬며 소리쳤다.
"그만그만! 여기서 장난치면 다쳐요!"
김 씨는 알겠다며 평상으로 아빠를 데려가 앉히고, 성태와 함께 쏟아진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잉? 이게 왜... 아니, 성태 너 이거 뭐여?"
널브러진 물건을 주워 담던 김 씨가 금색의 명함을 들고 못 볼 걸 봤다는 듯 깜짝 놀라 물었다.
"아~ 그거 제가 다니는 미용실 명함인데.. 왜요??"
"아이고... 아이고. 안된다.. 안돼.. 거기는 가면 안 되는 곳이여.."
아연실색하며 털썩 주저앉아 안된다며 중얼거리던 김 씨는 성태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지 말라면 가지 말어. 거긴 요괴가 있는 곳이여."
"예???? 요괴요?"
"그려. 내 동생이 그 요괴한테 꾀어서 돈도 잃고, 와이프도 자식도 잃었어. 요사스러운 게 있다 이 말이여. 내 정신 좀 봐. 이놈의 새끼 또 그 요괴 찾아다니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김 씨는 다급히 동생을 찾아야겠다며 계단으로 내려가버렸다. 급하게 사라져 버린 아저씨의 빈자리를 성태는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고, 앉아있던 중호도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물었다.
"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하하"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김 씨였기에, 성태는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당황스러웠다. 아저씨가 말하는 요괴는 루나임이 분명했지만, 돈도 잃고 와이프도 자식까지 잃었다니.. 당최 믿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김 씨가 떠난 뒤, 마저 짐 정리를 하고 샤워를 마친 성태의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설아♡]
'크흠-' 성태는 목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러 그녀를 기다렸다.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요즘 데이트도 못하는데 전화도 안 받으면 서운해~~"
앙칼진 목소리로 서운하다 말하는 그녀가 여전히 귀여웠다. 아빠의 퇴원 후, 이사 갈 집을 구하느라 데이트다운 데이트는커녕 출퇴근길에만 잠깐씩 본 탓에 설아는 단단히 삐져있었다.
"미안 미안. 씻고 나왔어. 내일 이사하면 여유 생기니까 우리 설아 먹고 싶은 거 다 적어둬요."
성태는 아기 타이르듯 설아를 달래주었고, 설아는 금세 풀려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도 힘들 텐데, 내가 좀 더 기다리지 뭐! 내일 이사 끝나면 월요일은 퇴근하고 나랑 노는 거야~"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아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 싶다~ 월요일 날 맛있는 거 먹자!"
"뭐야~~~ 진짜~~~ 얼른 자고 내일 연락해요!"
세상 달달한 통화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중호가 침대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있었다. 통화를 다 들은 게 틀림없었다. 성태는 순간 달아오른 얼굴에 냉장고를 벌컥 열어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기척을 좀 내시지..."
"우리 아들!! 내일은 이사 끝나고 아빠랑 노는 거야~"
"아~ 아빠!!!"
"하하하하. 알겠어 그만할게."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아빠 먼저 자고 있어!"
"또 어딜 가려고~ 보고 싶으니까 빨리 와."
입꼬리를 씰룩이며 끝까지 따라붙는 중호의 장난에, 한층 더 벌게진 얼굴로 문밖을 나왔다. 성태는 얼굴을 식히며 편의점에 가던 중, 낮에 본 미용실 명함이 문득 떠올라 머리를 만지작하며 길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설아 만나기 전에 머리를 하긴 해야 되는데.. 아~ 아저씨는 왜 그런 말을 하셔가지고..'
갑자기 가버린 후 연락이 없는 김 씨 아저씨의 얘기에 성태는 꽤 마음을 쓰고 있었다.
'에이, 그 미용실이 뭐 어때서~ 그냥 가자!'
미용실에 다다를 즈음, 저 멀리 김 씨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어떤 남자와 서서 실랑이를 하는 듯했고, 점점 가까워지던 찰나에 그 남자가 아저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어어!!! 아저씨!!!"
성태는 곧장 쓰러진 아저씨에게 달려가 부축하고, 동시에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성태의 머릿속에는 어렴풋이 한 장면이 휙 지나쳐갔다.
[... 비가 와서 미친 거야?...]
두 번째로 미용실을 찾아가던 날, 그날은 많은 비가 내렸었다. 술김에 처음 갔던 터라 위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길을 헤맸고, 한 중년의 남자와 어깨가 부딪쳤었다. 그때 그 남자는 허름한 차림으로 비에 홀딱 젖어 중얼거리는 게 미친 사람 같았는데... 지금 눈앞에서 김 씨 아저씨에게 주먹을 날리고 헉헉대는 저 사람이 바로 그 미친 사람이었다.
"어? 저번에 비 오는 날..? 아니, 근데 왜 사람을 때려요!?"
어쨌든, 누구든 간에 아저씨가 맞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성태는 김 씨 아저씨를 자신의 뒤로 세우고 그 남자에게 성큼 다가가 툭 밀며 따져 물었다.
"뭐야, 이 어린놈의 새끼는? 형이 아는 새끼야?"
그 남자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성태의 뒤를 노려봤다.
"새끼? 제가 아저씨 새끼예요?"
잔뜩 흥분한 성태의 모습에 뒤에 있던 김 씨가 성태의 손을 잡고 말리며 말했다.
"성태야, 그만 혀. 아저씨 동생이여."
"네!?"
성태가 놀란 눈으로 김 씨와 미친놈을 번갈아 쳐다보니, 김 씨는 괜찮다며 토닥였다. 성태는 상황 파악할 틈 없이 뒤로 밀려났고, 그 와중에도 눈을 흘기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김 씨에게 아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동생을 보내고 걸어와 성태에게 버럭 화를 냈다.
"너, 여기 왜 온겨. 말 안 듣고 여기는 왜 또 온겨! 미용실이 쌔고 쌨는데, 왜 하필 여기여!"
성태는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아저씨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건데요! 저한텐 고마운 곳이에요! 아저씨야말로 동생이라면서 왜 가만히 맞고만 있어요!"
김 씨는 같이 성을 내는 성태를 붙잡고 미용실 앞을 벗어나 편의점으로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 물었다.
"성태야. 니 인정승천이라는 말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