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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y 05. 2024

#11 신들의 대면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1화)


 설아의 긴 고백은 사랑이었다. 성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이야기.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에 빠져 있을 무렵, '인생 미용실' 앞에는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이름 한 번 유치하네."


남자는 못마땅한 듯 간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문을 벌컥 열었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며 걷던 남자는 심란해 보였다. 그의 어두워지는 표정만큼, 복도의 샹들리에 불빛들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한동안 잠잠하시더니, 왜 또 오셨을까~ 이번엔 꽤 젊은 얼굴이네?"

남자를 마주한 루나는 놀람도 잠시, 갑작스레 등장한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는 그대로 루나를 지나쳐 포르투나의 수레바퀴 그림이 그려진 액자 앞에서 발을 멈췄고, 그녀의 빈정거림은 허공에 맴돌았다.


그는 그림만을 응시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여기저기 너무 티 내더라. 명함보고 안 올 수가 있어야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시선을 두는 그의 목소리와 눈빛이 단호했다.


루나는 꽤나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에 안경을 만지작 거리고 슬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그래, 뭐 티를 좀 냈어. 다 자기가 잘나서 잘 되는 줄 알더라고. 그건 좀 별로잖아. 세상 돌아가는 건 전부 신의 계획이고, 우연찮게 일어난 행운은 다 내 덕인데 말이야."

 "난 너처럼 인간사에 개입은 안 해. 그들이 하는 선택을 지켜볼 뿐이지."


루나는 그의 말에 가소로운지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사 개입 안 하시는 분이.. 벌써 몇 년 전이야, 18년 즈음.. 됐나? 초등학생 꼬맹이 구하겠다고 차에 타고 있던 여자를 죽였지 아마?"

 "그건...! 후.. 그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여자였어, 밖으로 나오면 안 됐었다고... 여자의 선택으로 나오게 됐고, 그 때문에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가 사고가 날 뻔한 거지.. 내가 그 여자를 죽인 게 아니야."


남자는 조금 높아진 언성으로 루나를 응시했다. 그럼에도 루나는 묘한 표정으로 남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하나야. 그만하고 떠나."

떠나라는 남자의 말과 동시에, 루나의 손뼉 맞닿는 소리가 짝 하고 울려 퍼졌다.


 "와! 그러고 보니 지금 모습이.. 딱 그때 그 여자대신 산 꼬맹이네! 아.. 설마 그래서 최성태 옆에 있는 거야? 미안해서? 나 누군지 알아... 차 사고로 죽은 여자."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까지 쳐가며 이야기하는 루나의 행동에 더욱더 고요해지고 있던 찰나, 복도 저 멀리서부터 조명 터지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거울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남자를 힐끗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여자, 최성태 엄마잖아."


그녀의 말을 끝으로 이내 유리가 쩍쩍 갈라졌다. 갈라져가는 거울 속으로 어렴풋이 루나와 남자가 비췄고, 그곳엔 성태의 하나뿐인 친구 재민이 있었다.



 

 신은 어느 곳에 나 존재했다. 어떤 날에는 꽃집 사장, 어떤 날에는 옆집 아저씨. 여러 얼굴로 인간들의 옆에서 친숙한 모습으로 그들을 보살펴왔다.


 시간을 거슬러 18년 전 3월.

초등학교의 입학식이었다. 성태의 엄마는 오랜 병원 생활을 하던 중, 앞으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아들의 입학식을 보기 위해 외출증을 끊고 학교로 향했다.


그날 저녁은 그녀의 생이 끝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병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잠이든 채 평온하게... 하지만 그녀가 한 선택은 아들이었고, 그 선택으로 신의 개입이 생겨버리고 만 것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성태의 엄마와 남편 중호가 차를 타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 멈춰있었고, 음주운전 차량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때, 멀리서 길을 건너기 위해 앞만 보며 해맑게 뛰어오는 재민이 있었다. 달려오는 차에 목숨을 잃을 사람은 아이가 아닌 성태의 엄마였다.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이를 지켜보던 신은, 아이의 죽음이 예견되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를 바로 잡으려 인간사에 개입을 하게 된다. 핸들이 돌아가며 차량은 원래대로 성태의 엄마에게 향했고 그 모습이, 그녀의 마지막이 되었다.


 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지만, 어린 나이에 실어증에 빠져 나날이 어두워지는 성태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재민의 몸에 머무는 걸 선택했다. 쉽지는 않았다. 성태의 시선에서는 자신의 엄마가 재민 때문에 죽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이 그 점을 노렸던 걸까? 분노는 결국 성태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매일 같이 찾아오던 재민에게 모진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고, 자기감정을 표출하고 그럼에도 끈질긴 그에게 마음까지 열어버렸다. 둘은 늘 함께였다. 요행만을 바라며 철없이 지낼 때에도, 아빠의 사고로 힘들어할 때에도 친구란 이름으로 곁에서 힘이 돼주었다. 


인간사에 개입한 적 없고, 이리도 오랜 시간 정을 나누지 않았던 신이기에 그만큼 성태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 사람이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손에 쥐락펴락 당하고 있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루나는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워워- 가라앉혀. 안 그래도 재미없었어~ 인간이면 인간답게 탐욕에, 명예도 바라고 해야 하는데 마음속이 꽃밭이야. 일자리 없고, 여자 없고, 철도 없고, 매주 복권 꼬박꼬박 하길래 기대했는데.. 그냥저냥 아빠랑 행복하게 사는 게 오로지 꿈인 애야. 걔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


신은 루나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동의했고, 성태의 단순함에 흐뭇해졌는지 금세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성태를 너~무 격하게 아낀다. 질투 나게.. 근데.. 언제까지 얘 몸에서 머물건대? 알잖아 얘도 힘들어하는 거. 이러다 죽겠어?" 

장난기 있는 표정을 유지하던 루나는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포르투나가 아는 걸 신이 모를 리 없었다. 신을 오랜 시간 담고 있기에 사람의 그릇은 크지 않았다. 재민의 기억이 자꾸 가물가물 하고 눈빛이 돌아올 적마다 머리가 심하게 아픈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갈 거야. 18년 전 살려준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아." 

 "네~ 그러시겠죠. 다 계획이 있으시겠죠."

 "그러니까 성태는 더 이상 건들지 마. 충분히 가여운 아이야." 

 "신이시여, 어찌하여 나쁘게 보십니까. 저는 그저 행운을 가져다줬어요." 

루나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어필했다.


 "아니? 나는 네가 지극히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존재라는 걸 모르지 않아."

그렇다. 포르투나는 권력을 단숨에 무로 돌리는가 하면 가난뱅이를 이유 없이 거부로 만든다. 이는 포르투나의 힘과 장난스러움을 드러내고, 행운이 극에 달한 순간에 조차 그녀를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포르투나가 언제 변덕을 부려 떠나버릴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하! 그래요. 인정해요. 그렇지만 내 수레바퀴에 들어오는 건 언제나 그래왔든 인간의 선택이에요. 난 그냥 돌릴 뿐이죠."

루나는 이제 자신의 손에서 떠난 일이라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신도 어쩔 도리는 없었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수레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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