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효진 May 12. 2024

#12 선택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2화)


 삶은 무수한 선택의 순간이다. 살아가며 여러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다 보면, 비로소 그곳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


딸의 손을 잡고 집에서 무작정 도망쳐 나온 설아의 엄마, 많은 식당 가운데 설아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간 대표, 아들 입학식에 간 성태의 엄마와 아내를 잃은 뒤 모든 순간 아들만을 위해 살아온 중호까지. 전부 찰나의 선택들이었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가 떼는 걸음 뒤에 펼쳐지는 자욱이 꽃밭이기를 바랄 뿐이다.




 평소와 달리 분주한 아침, 아빠의 퇴원 날이었다. 지금까지는 간호사가 있고, 김 씨 아저씨도 틈틈이 아빠를 봐주었기에 마음이 놓였지만 퇴원 후에는 상황이 달랐다.


자신이 출근하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빠가 걱정이었다. 집도 하필 옥탑방이라 앞이 보이지 않는 아빠에게 너무도 위험했다. 성태는 착잡한 마음으로 가구 모서리마다 보호대를 붙이고, 아빠를 위해 준비한 선글라스와 흰 지팡이를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로비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반겨주던 김 씨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쉬는 날 이신가..?'

그동안 틈틈이 아빠를 신경 써주셨기에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던 성태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병실로 향했다.  


 "아이고~ 좋겄어. 집에 가서는 아들 속 썩이지 말고 잘 지내야 혀."

익숙한 목소리였다. 성태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벌컥 열었다.

 "아저씨!"

그는 일하던 중에 잠깐 들렀는지, 청소 장갑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모양새였다.

 "성태 왔냐~ 아빠 진즉에 준비 다하고 기다리고 계셨어~"


중호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설레었는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아들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태는 그런 아빠에게 다가가 선글라스를 꺼내 들고 어색한 손길로 콧등과 귀에 맞춰 씌워주었다. 중호도 다 큰 아들의 손길이 어색한지 멋쩍게 웃었다.


 "최 씨. 선글라스 쓰니까 아픈 사람 같지도 않네그려. 최 씨 가고 나면 나는 누구랑 노나 몰러~"

김 씨의 너스레에 중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쳤다.

 "하하. 집에 놀러 와요. 맛있는 밥 한 끼 사드릴게."

 "아이고~ 당장 퇴근 하고 최 씨 따라가야 겄네. 하하"


즐겁게 대화 나누는 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성태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둘의 대화를 가로챘다.


 "아저씨! 청소하시는 일 힘들지 않으세요?"

성태의 물음에 김 씨는 당연한 걸 뭘 묻냐 되물었다.

 "혹시 저희 이사 가기 전까지만.. 아빠 간병 부탁드려도 될까요?

 "잉? 내가? 할 수 있을랑가...?"

김 씨는 싫지만은 않은 듯, 중호의 반응을 살폈다. 성태는 혹여나 아빠가 괜찮다는 말을 할까 아빠의 손을 턱 잡으며 급히 말을 덧붙였다.


 "집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높아요! 출근하면 혼자 계셔야 하는데 제가 마음 편히 일이나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두 분이서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쉬시면 돼요! 지금보다 훨씬 정도는 아니어도, 넉넉히 드릴게요..!"


자신의 손을 잡은 아들이 간절해 보여 중호는 그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첫걸음이기에 괜찮다고,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요.. 나도 김 씨가 옆에 있어주면 좋을 거 같네."

근래 들어 중호가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김 씨뿐이었다.

 "아이고, 안 그려도 청소하느라 허리도 아프고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었는데 말여.. 아유 나 그럼 얼른 가서 팀장님한테 말해야 쓰겄네!"


김 씨는 주먹으로 허리를 퉁퉁 치는 시늉을 하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성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성태가 출근을 할 때쯤, 김 씨는 집에 도착을 했다. 그는 매번 계단이 높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손에는 늘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어느 날엔 고기가 들어있고, 또 어느 날엔 밑반찬이 들어있고, 그렇게 하루하루 봉지 안에 정을 담아 올라왔다.


아빠의 퇴원 후 일에 지장이 가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날이 밝아지는 중호였다. 덕분에 성태는 마음 편히 출근을 하고, 일하는 짬짬이 집을 알아봤다. 처음 해보는 이사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집이 많더라도 성태가 계약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대표가 월급을 두둑이 챙겨 주긴 했지만, 매달 병원비에 생활비에 충당할 돈이 많아 제대로 모으지 못했던 탓이었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진전이 없던 그때, 재민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삐리리리리-


 "성태~~ 혼자 잘 살 수 있지?"

 "뜬금없이 뭔 소리야?"

갑자기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지 않나, 혼자 잘 살 수 있느냐 묻질 않나. 오늘따라 이상한 재민이었다. 


 "나 미국가.. 2년 정도. 별일은 아니고 출장 가는 거지 뭐." 

 "무슨 갑자기 출장을 미국까지가.. 요즘 안색도 별로던데, 멀리까지 괜찮겠어?" 

 "내 말이 그 말이야. 갑자기 왠 미국인지 모르겠어.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나보고 가래. 유학이다 생각해야지 뭐.. 그보다 집이 문제야. 나 얼마 전에 전세 재계약했잖아." 


출장은 신의 계획이었다. 이제는 재민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재민과 성태가 가깝다면, 신은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재민의 몸을 쓸지 모르기에 최대한 멀리 보내기로 한다. 다행인 건 재민의 몸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지만, 성태를 향한 애정이 온전히 신의 것만은 아니었다. 성태를 아끼는 친근한 마음은 인간 재민에게도 물론 존재했기에, 2년이든 3년이든 그들의 우정은 변치 않을 것이다. 


 "아.. 어 그렇지. 어쩌냐 집은?" 

 "출발 날도 얼마 안 남아서 들어올 사람 알아보기도 촉박하고.. 그래서 말인데 네가 우리 집에서 좀 살고 있을래? 아버님도 퇴원하셨고, 언제까지 옥탑방에서 지낼 수 없잖냐.. 우리 집은 관리비만 내면 돈 나갈 일도 없어!" 


 수화기 너머 들려온 재민의 말에 성태는 며칠간의 묵은 체증이 싸아 내려가는 것 같았다. 2년간 친구를 보지 못하는 건 허전하지만, 지금 성태에게는 선물 같은 부탁이었다. 매달 월세 나갈 일 도 없고, 심지어 원하던 1층. 위치도 자신의 집과 가까운 편이라 달라지는 동선도 크게 없었다.


"야... 바로 콜이지!!! 안 그래도 집 때문에 머리 터지는 줄 알았는데.. 진짜 고맙다.."

성태는 한 껏 들뜬 목소리로 콜을 외쳤고, 친구는 2년 동안 못 보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갔다 와서 지긋지긋하게 붙어 볼 텐데 뭘 그러냐~ 가서 영어나 마스터해 와, 인마."

이전 11화 #11 신들의 대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