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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y 19. 2024

인정승천.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3화)


 [ TO. 성태. ]

 '성태야. 어쩔 수 없이 몸은 떠나지만, 난 언제나 네 곁이다. 돌아올 때까지 집을 잘 부탁한다.'

 [ps. 사실 너  머리 별로야 인마. 딴 미용실 찾아.]


 "미친놈..."


 2주 뒤 토요일. 친구가 출장을 떠났다. 성태는 이삿짐을 옮기기 전 그의 집에 들렀고, 자신에게 남긴 메모지를 확인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제나 네 곁? 드디어 미쳤구먼."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오는 걸 몸소 느끼던 성태는 메모지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피식 웃으며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방 딸린 작은 거실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소박하긴 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옥탑방 원룸을 떠올리면 감지덕지였다. 자주 놀러 오던 곳이었지만, 2년간 아빠와 함께 머문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삐리리리리-


 "네~ 아저씨!"

 "성태야, 아빠가 그릇들 싹 다 챙긴다는데 내버려둬~? 말려~? 아이고!!! 거참 가만히 있으라니께 말을 안 들어! 성태 빨리 와라잉!"

 

 뚜-뚜-뚜-뚜

 "하하하하하. 진짜 두 분 너무 잘 어울린다니까."




 서둘러 돌아온 성태는 계단 언저리부터 들려오는 투닥거림에 못 말린다며 성큼성큼 올라갔다. 옥탑에는 활짝 열린 현관 앞으로 여러 개의 박스가 불규칙하게 놓여있었다.


그때, 또 하나의 박스를 힘겹게 들고 툴툴거리며 나오는 아저씨와 그 뒤로 지팡이를 짚고 쫄래쫄래 따라 나오는 아빠가 보였다. 성태는 둘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 아저씨 허리 나가겠네~ 저한테 주세요."

 "허리 치료비 톡톡히 받아낼 겨~ 아이고, 고되다."


성태에게 박스를 건네주고 기지개를 쭈욱 켜며 말하는 김 씨에게, 뒤따라 오던 중호가 지팡이를 들어 여기저기를 콕콕 찔러댔다.


 "정 많은 사람인지 알았더니만~ 우리 아들한테 치료비 받아내려고?"

중호의 지팡이 손놀림에 김 씨는 간지러운지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바닥에 놓여있는 박스를 피하지 못하고 넘어뜨렸다. 성태는 두 중년의 어린아이 같은 장난에 한숨을 푹 내쉬며 소리쳤다.  


 "그만그만! 여기서 장난치면 다쳐요!"

김 씨는 알겠다며 평상으로 아빠를 데려가 앉히고, 성태와 함께 쏟아진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잉? 이게 왜... 아니, 성태 너 이거 뭐여?"

널브러진 물건을 주워 담던 김 씨가 금색의 명함을 들고 못 볼 걸 봤다는 듯 깜짝 놀라 물었다.

 "아~ 그거 제가 다니는 미용실 명함인데.. 왜요??"

 "아이고... 아이고. 안된다.. 안돼.. 거기는 가면 안 되는 곳이여.."

성태의 대답에 아연실색하며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리던 김 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간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급하게 사라져 버린 아저씨의 빈자리를 성태는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고, 앉아있던 중호도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미용실 명함 보시더니 가버리셨어."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김 씨였기에, 성태는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무슨 연유인지 알지 못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짐 정리를 마친 후, 씻고 나온 성태의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설아♡]

 '크흠-' 성태는 목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러 그녀를 기다렸다.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요즘 데이트도 못하는데 전화도 안 받으면 서운해~~"

앙칼진 목소리로 서운하다 말하는 그녀가 여전히 귀여웠다. 아빠의 퇴원 후, 이사 갈 집을 구하느라 데이트다운 데이트는커녕 출퇴근길에만 잠깐씩 본 탓에 설아는 단단히 삐져있었다.


 "미안 미안. 씻고 나왔어. 내일 이사하면 여유 생기니까 우리 설아 먹고 싶은 거 다 적어둬요."

성태는 아기 타이르듯 설아를 달래주었고, 설아는 금세 풀려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도 힘들 텐데, 내가 좀 더 기다리지 뭐! 내일 이사 끝나면 월요일은 퇴근하고 나랑 노는 거야~"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아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 싶다~ 월요일 날 맛있는 거 먹자!"

 "뭐야~~~ 진짜~~~ 얼른 자고 내일 연락해요!"


세상 달달한 통화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중호가 침대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있었다. 통화를 다 들은 게 틀림없었다. 성태는 순간 달아오른 얼굴에 냉장고를 벌컥 열어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우리 아들, 내일은 이사 끝나고 아빠랑 노는 거야~"

 "아~ 아빠!!!"

 "하하하하. 알겠어 그만할게."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아빠 먼저 자고 있어!"

 "그래~ 보고 싶으니까 빨리 와."


입꼬리를 씰룩이며 끝까지 따라붙는 중호의 장난에, 한층 더 벌게진 얼굴로 문밖을 나왔다. 성태는 얼굴을 식히며 편의점에 가던 중, 낮에 본 미용실 명함이 문득 떠올라 머리를 만지작만지작하며 길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설아 만나기 전에 머리를 하긴 해야 되는데.. 아~ 아저씨는 왜 그런 말을 하셔가지고..'

갑자기 가버린 후 연락이 없는 김 씨 아저씨의 얘기에 성태는 꽤 마음을 쓰고 있었다.

 '에이, 그 미용실이 뭐 어때서~ 그냥 가자!'




미용실에 다다를 즈음, 저 멀리 김 씨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어떤 남자와 서서 실랑이를 하는 듯했고, 점점 가까워지던 찰나에 그 남자가 아저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어어!!! 아저씨!!!"

성태는 너무 놀라 '아이고아이고' 하며 앓는 아저씨에게 달려가 부축해 일으켰다. 동시에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성태의 머릿속에는 어렴풋이 한 장면이 휙 지나쳐갔다.


 [... 비가 와서 미친 거야?...]

 두 번째로 미용실을 찾아가던 날,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술김에 처음 갔던 터라 위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길을 헤맸고, 한 중년의 남자와 어깨가 부딪쳤다. 그때 그 남자는 허름한 차림으로 비에 홀딱 젖어 중얼거리는 게 미친 사람 같았는데... 지금 눈앞에서 김 씨 아저씨에게 주먹을 날리고 헉헉대는 저 사람이 꼭 그 사람과 겹쳐 보였다.


 "어? 저번에 비 오는 날..? 아니, 근데 왜 사람을 때려요!?"

어쨌든, 누구든 간에 아저씨가 맞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성태는 김 씨 아저씨를 자신의 뒤로 세우고 그 남자에게 성큼 다가가 툭 밀며 따져 물었다.

 

 "뭐야, 이 어린놈의 새끼는?"

그 남자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성태의 뒤를 노려봤다.

 "새끼? 제가 아저씨 새끼예요?"

잔뜩 흥분한 성태의 모습에 뒤에 있던 김 씨가 덥석 손을 잡고 말했다.


 "성태야, 그만 혀. 아저씨 동생이여."

 "네!?"

성태가 놀란 눈으로 김 씨와 중년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니, 김 씨는 괜찮다며 어르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성태는 상황 파악할 틈도 없이 저만치 떨어져, 혹시나 아저씨가 또 맞을까 눈을 흘겼다.


 다행히 아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남자는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김 씨는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성태에게 버럭 화를 냈다.


 "너, 여기 왜 온겨. 말 안 듣고 여기는 왜 또 온겨! 미용실이 쌔고 쌨는데, 왜 하필 여기여!"

성태는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아저씨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그리고 동생이라면서 왜 가만히 맞고만 있어요!"

되려 성을 내는 성태에게 일단 가자며 집 앞 편의점으로 장소를 옮겼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몇 분간의 침묵이 흘렀다.


점점 답답해져 오는 성태가 입을 떼려던 그때, 김 씨는 나직이 성태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태야. 니 인정승천이라는 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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