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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y 26. 2024

#14 사람의 노력은 하늘을 이긴다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4화)

 

 '인정승천'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운명을 바로 이끈다. 즉, 사람의 노력은 하늘을 이긴다.


 "좋은 말 같기는 한데.. 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니에요? 솔직히 사람이 하늘을 어떻게 이겨요."

 "그럼 성태 니는 평생 가난할 운명이여, 그러면 그냥 나는 그런 팔자인가 보다 하고 살꺼여?"

 "에이, 아저씨는 무슨 들어도 그런 예를 들어요! 이제 겨우 풀칠하고 살고 있고만..."

 "생각만 해도 끔찍허지? 운명을 탓하면서 살아갈 건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건지는 온전히 사람의 몫이여. 그 뭐시냐. 순자가 말허기를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늙은 말도 꾸준히 달리면 결국 천리에 이를 수 있다 안허냐."

 

매번 청소하시는 모습과 투닥거리며 아빠와 장난치는 모습이 다였던 아저씨에게서 사자성어에 순자 얘기까지 나오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오.. 아저씨 좀 달라 보이시네요. 근데 갑자기 이런 말씀은 왜 하시는 거예요?"

 "아까 봤던 내 동생말이여, 고놈이 어릴 때부터 착한 거 빼면 시체였어~ 어찌나 착한지 바보 같기는 해도 언젠가 다 나한테 돌아오겄지.. 하면서 묵묵하던 놈이여."


김 씨는 착했던 동생의 모습을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하루는 고놈 지갑에 웬 그림 하나가 쬐깐한 게 꽂혀있길래 이게 뭐시냐 했더니 미용실에서 줬다 하더라고. 성태 니가 가지고 있는 그 그림 말이여."

 "어! 맞아요! 그림 진짜 특이하지 않아요?"
 "처음엔 그냥 미용실 명함이 특이 허다하고 말았지, 그 착하던 놈이 그렇게 망가질 줄 알았으면 진작에 명함 찢어발기고 못 가게 했을 거여."

 "예..? 아니 미용실이 뭘 했다고... 저는 거기만 가면 좋은 일이 생기던데요...?"


성태는 포르투나에 관한 이야기만 쏙 빼고, 아저씨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그게 문제여."

붉으락푸르락 심상찮게 변하는 아저씨의 표정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김 씨는 고개를 쓱 돌려 성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성태 니는 거짓말을 못 혀. 너도 알잖여,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아.. 저는.."

 "괜찮여,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쩔 수가 없는겨. 그렇게 한두 번 연달아 좋은 일이 생기니까, 옆에서 보던 나로서도 얘가 웬일로 운이 쭉쭉 받나 싶더라고. 내 동생 놈도 처음엔 뭔가 싶었을 거여."

 "어.. 맞아요.. 저도 갑자기 아빠 깨어나시고, 합의도 받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신기해요."


지난 일을 생각하며 성태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왔다.


 "다 그런 맘일 겨. 갸는 일이 하도 잘 풀리니 께, 뭔 바람이 불었는지 꼬박꼬박 잘 댕기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을 시작허더라고? 근데 뭔 일이다냐. 고것도 승승장구여. 참 기묘하더라고.."

 "와.. 진짜 똑같네요? 저도 취직에, 여자친구에, 아빠도 건강하게 퇴원하시고, 아저씨처럼 좋은 분과 인연까지 이어가고 있는데.."


김 씨는 성태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여긴다는 이야기에 내심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갈뻔했다. 하지만 이내,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는 듯 안타까운 내색을 비췄다.


 "그래.. 성태 니는 거까지만 혀.. 동생 놈도 딱 거까지만 했어야 허는데.. 이놈은 갈수록 욕심을 부렸어. 허구한 날 미용실 찾아가서 뭘 그렇게 하는지.. 그러다 일이 난겨. 사업이 삐끗해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막 찾아오는데, 아니 이놈이 일 처리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또 미용실로 냅다 달려가는겨! 거참 내 어이가 없어서 몰래 뒤를 밟았지."


자신의 상황과 소름 끼치도록 비슷한 동생의 이야기에 푹 빠져 흥미진진하게 듣던 성태는 순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난번 아빠가 계단에서 굴렀을 때, 자신도 마찬가지로 병원에 가지 않고 미용실로 달려갔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것이다.


성태가 혼란스러움에 허우적대고 있자니, 아저씨는 무릎을 탁 치며 주의를 끌었다.

 "그때! 내가 똑똑히 들었어. 긴 복도 끝에서 그 여자가 동생 놈한테 허는 말."

 "무슨 말이요...?"


성태는 점점 무서웠다. 비가 오던 지난날 마주친 동생의 모습, 김 씨 아저씨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모습 모두. 자신도 그와 똑같아지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아~ 인간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똑같을까?"

김 씨는 루나를 따라 하려는 건지, 간드러진 목소리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성태는 똑같지도 않은 아저씨의 흉내에 퍽 소름이 돋았다. 


 "지루했어, 그뿐이야. 감사할 줄 모르고, 끝도 없이 바라는 게 너무 웃기잖아? 내 수레바퀴에 올라탄 건 너희 인간이야. 왜 나한테 책임을 지라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김 씨는 성태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양쪽으로 죽 찢어 억지로 미소 지어 보였다. 분명 루나의 웃음이었다. 늘 묘하게 씩 웃어대던 딱 그 미소 말이다.

 ".. 맞아요. 그 웃음, 그 표정.."


 "나가 말이여, 맹자 공자 순자 뭐 이런 철학 쪽은 빠삭 혀도, 신의 영역 쪽은 영~ 맹추란 말이여. 근데 아.. 이게 그런 영역이 존재하겄구나 느꼈던 부분이 딱 지금이여. 그 일이 있은 뒤로 내 동생 놈한테는 미용실 간판조차 안 보인다는 겨.. 버젓이 저기 불 달고 번쩍번쩍하고 있는데 말이여.."


 그제야 비 오던 날, 아저씨 동생의 행동이 이해되는 성태였다. 당시 그는 혼자 중얼거리기 바빴다. 대체 어디 간 거냐고 왜 안 보이냐고, 자기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며.. 그렇게 한참을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대상이 미용실이었다니.. 성태는 김 씨가 하는 얘기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하신 거예요..? 저도 아저씨 동생처럼 망가질까 봐..?"

 "그려.. 사람마다 약한 부분은 있는 것이여. 내 동생 놈이라고 자기가 그렇게 망가질 줄 알았겄어? 처음엔 좋아서 어리둥절하다가도, 계속되면 당연한 줄 아는 거여. 그러다 보니 변하는 것이고.. 애초에 싹을 잘라야 혀."


한 없이 다정하던 아저씨의 단호함에 성태는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운명적인 행운을 바라며 살아온 성태였다.


 "안 그래도 퍽퍽한 삶에 행운 정도는 바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저씨는 뭐.. 복권도 안 하세요!?"


김 씨는 성태의 이야기를 듣고 오른손을 확 들어 올렸다.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아오겠구나 눈을 질끈 감은 성태의 귀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때리시지?'

한쪽 눈을 슬쩍 떠서 본 광경은 지금껏 긴장했던 몸에 김을 빠지게 했다. 부시럭소리의 근원지는 꼬깃꼬깃해진 서너 개의 복권 종이였다.


 "와.. 하하.. 아저씨.. 잔소리랑 행동이 너무 다르신데요!!!"

 "이놈아! 여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모르는겨! 나가 말이여 복권 하나를 해도 매주 공부하고 분석해서, 자동도 아니고 일일이 수동으로 한다 이 말이여."


큰 소리로 당당하게 흔들어대는 복권 종이에 성태는 할 말을 잃었다.


 "후.. 네.. 그러네요.. 노력이 최고네요..."

 "필히 명심해야 혀. 아무리 엉망진창인 삶일지라도, 노력하고 그 안에서 즐겨야 되는 거여. 행운이 꽁으로 오는 게 아니란 말이여! 서양 속담에 또 이런 말이 있는디,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둔다.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올바른 생각을 갖고 노력 허는 사람이 좋은 운명을 만든다 이 말이여. 아저씨 말 명심혀."

 ".. 예..??? 뭘 심으라고요?"


 복권에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는 행동이 황당하긴 해도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인정승천이라는 어려운 말도, 거두고 심는다는 그럴듯한 말들도 다 일리가 있었다.


 성태도 처음에는 그저 쌍알의 행운인 줄로만 알았다. 좋은 일들이 늘어날수록 의심을 했고 결국 포르투나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루나라는 것까지 알았지만, 그럼에도 필요했다.


가난뱅이를 순식간에 부자로 만들었다가 단숨에 무로 돌려버릴지라도, 그저 포르투나의 장난이고 놀이일 뿐인 행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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