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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Jun 02. 2024

행복을 바라는 자.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5화)



 '행복하세요?'


성태가 미용실에 갈 적마다 루나에게 항상 듣는 질문이었다. 행복하냐는 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땐,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친구사이에 흔하게 물어볼 수 있는 좋냐?라는 의미 정도. 하지만 행복을 묻는 루나의 의도가 갈수록 묘하게 거슬렸다.

 

왠지, "네! 행복해요!"라고 섣부르게 말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이랄까... 오히려 더 큰 행운을 부어주길 바라며 아직은 행복하지 않은 척 꾀를 낸 적도 있었다.


한 번은 그런 생각도 했다.

'혹시 내가 부린 꾀가 괘씸해서, 아빠를 다치게 한 게 아닐까? 아빠가 계단에서 헛디뎌 떨어진 건, 포르투나의 벌이 아니었을까?‘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눈 후 여러 생각들이 성태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과연 행복할까?




 성태는 다시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는 마치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낡은 간판에 불빛이 환하게 반짝였다.

 

 '간판이 원래 이렇게 밝았나?'


매번 지나쳐가던 불빛이 오늘따라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었다. 평소와 다른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텅 비어있던 복도에 웬일로 한가운데 서서 액자를 바라보는 루나가 있었다.


 "어! 안.. 녕하세요, 루나선생님."

지난번 인사불성으로 다녀간 이후, 첫 방문이기에 괜스레 어색함이 감돌았다.

 

 "오셨네요? 머리 많이 길으셨다~ 따라오세요."

루나는 아무렇지 않게 씩 웃으며 안내했고, 성태는 뒤를 따르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넌지시 물었다.


 "저..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루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우뚝 섰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덩달아 긴장한 성태가 침을 꼴깍 삼킬 즈음, 루나가 웃음기 가신 목소리로 되물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루나는 빙그르 돌며 어깨를 으쓱 올렸고, 성태는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 씨아저씨의 동생이 누구 때문에 저렇게 망가졌는데,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니.


 "혹시 미용실 문 앞에 매번 서성이는 남자 아세요?"

 "아~ 알죠, 그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네 뭐, 조금. 루나 선생님 찾는 거 같던데.."

 "그러니까요. 뭘 그렇게 더, 더, 더! 더!! 바라는 건지.."


루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양팔을 감싸 팔짱을 낀 채 애꿎은 성태를 잔뜩 쏘아봤다.


 "그래요. 성태 씨 꽤 마음에 드는 인간이니까 편하게 이야기할게요. 요즘 인간세상에 오래 있었더니 답답한 감정도 느껴요 내가! 휴.. 들어봐요. 나는 내가 원하는 데로 선물을 하는 거야. 그게 물질적 부든, 행운이든. 다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난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지니가 아니에요."


그간 많이 시달렸는지, 한숨을 푹 쉬며 이야기하는 루나였다. 한편 그녀의 푸념을 듣던 성태는 마음이 뜨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막무가내로 찾아와 아빠가 다치지 않게 해 달라며 간절히 빌었던 전적이 있었다.


 "어.. 힘드셨겠어요. 죄송해요. 저도 저번에 막 찾아와서 난리 쳤는데.. 하하"

 "뭐.. 괜찮아요. 성태 씨는 꽤 좋은 인간이니까."

 "아까부터 마음에 드는 인간, 좋은 인간.. 혹시.. 저 좋아.."

 "미치셨어요?"

 

루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성태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없었어요. 한 번도. 그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바라는 것만 많았지.. 고맙다고 선물을 가져온 인간은 성태 씨가 처음이에요."

 "아.. 그때 그 디저트.."

 "네 맞아요. 그 달달~한 디저트! 그날 성태 씨가 설아씨 갖고 싶어서 안 행복한 척, 씁쓸한 척 꾀부리는 게 괘씸하긴 했는데... 정말 달고 맛있었거든요 그 디저트가."

 "하하하하 역시 다 알고 계셨구나.. 부끄럽네요.."


성태가 고개를 숙이고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니 루나가 바짝 다가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러면 이제는 어때요? 행복해요?"

 "아! 네! 정말 행복해요. 더할 나위 없이요."


성태는 루나에게 하는 마지막 대답일 거 같은 기분에 조금 더 용기 내서 행복을 말하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한 발짝 뒷걸음질 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와... 행복이라.. 잘됐네요! 정말 기뻐요!"

 

 질끈 감은 눈을 살짝 떠서 루나의 얼굴을 보니,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난, 의미심장한 미소가 아닌 순수하게 기뻐하는 표정. 순간 성태는 생각했다. 포르투나가 정말로 원했던 건, 그저 사람들이 행운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저.. 괜찮은 거죠..? 지금까지 받은 행운들 와장창 무너지는 거 아니죠..?"


쭈굴 거리며 머뭇거리는 성태의 행동에 루나는 허리를 앞뒤로 꺾어대며 박장대소를 했다.

 

 "아하하하하하하. 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게?"

 "아니.. 친구가 로마신화 만화책 많이 봐서 그쪽 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인터넷 찾아봐도 그렇고.. 엄청 무서운 사람이시던데.."

 

 루나는 성태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뒷목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생각했다.

 '아니.. 신이 돼가지고 할 게 없어서 남의 험담을 하고 다녔네?'


 "아~ 그 하나뿐인 친구! 알죠 내가 그 친구 아주 잘~ 알죠... 후.. 뭐 어쨌든, 인터넷에 나를 너무 나쁘게 써놨더라~ 자기들이 욕심 많아서 꼬꾸라진 걸 가지고, 내가 뭐 망하게 한다고.. 나는 그냥 변덕이 조금, 진짜 조금 심한 거뿐이에요. 근데 진짜 웃긴 게, 행복하고 싶다면서 남들이랑 다 같이 행복한 꼴은 또 못 보는 게 인간이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들이 원하는 데로 행복을 이 사람 저 사람 불공정하게 분배한 거뿐이지."


 "그럼!! 밖에서 서성이던 그 남자한테 수레바퀴를 돌리네 마네 했던 건 뭐예요..?"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성태 씨. 나 좀 지루할라 그러네. 그냥 사람 체인지 한다는 뜻이었죠."


루나는 질려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고, 성태는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아하하. 죄송해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았죠. 꽤 마음에 드는 인간이니까 봐주세요. 하하 저도 루나 씨 꽤 마음에 드네요.. 저.. 이제 가볼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작별인사 같네요?"

 "네! 이제 안 오려고요. 기대하게 돼요 행운이라는 거. 이제는 행복이든 뭐든 스스로 찾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 머리가 영~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하하"

 "하! 끝까지 재밌네요 성태 씨. 그래요. 잘 살아요. “


성태는 밖으로 나와 굳게 닫힌 미용실을 바라보며, 또다시 행복하지 않은 누군가를 찾는 듯 희미하게 깜빡이는 간판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무수한 인간들에게 행운을 나눠주고, 때로는 외면했을지.. 사실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포르투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구나. 그저 행복을 바라보기 위해 행운을 선물해 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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