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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Apr 25. 2024

고백.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0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성태와 중호는 달라졌다. 성태가 아빠를 생각하는 철없던 마음과, 마냥 어린 아들이라 여겼던 중호의 마음 모두. 성태는 더 이상 부모만 기다리는 아기 새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아빠만 바라보며 입을 벌리지 않는다. 중호도 엄마 없이 키운 불쌍한 내 아들이라는 자신의 편견을 거두었다. 성태는 이제 반듯하게 잘 자란 듬직한 아들이었다.




 포르투나에 대한 자각과 확신. 아빠의 사고, 부자지간의 변화까지. 이 모든 건 주말 동안, 겨우 이틀 만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성태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니, 비로소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포르투나에 대한 믿음은 맹신이 되었다.


맹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 이것 또한, 포르투나의 계획이었을까? 헤아리는 판단력이 사라진 성태에게 언제고 비극적인 결말이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에게 들었던 포르투나의 이면, 성태는 기억이나 할까?


그럴 리가, 오히려 사소한 습관이 생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 눈을 뜨면, 아무 듣는 이 없이 허공에 되뇌었다.

 

 "오늘도 내게 행운을 주세요.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 문장은, 입버릇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주문이 되었다. 아마 성태는 포르투나에게 놀아난다 해도, '아무렴 어때'라는 마인드가 되어 버렸을지 모른다. 그는 그저, 선택받은 사람이 되어 수레바퀴의 정점을 향해 살아가고 있었다.




 "오빠! 아버님은 좀 괜찮으세요?"

대표님 댁 대문으로 들어선 성태에게 설아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까치발을 들고 작게 속삭이는 그녀가 퍽 귀여워 배시시 웃음이 삐져나오는 성태였다.


 "다행히 괜찮으세요. 근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 여기까지 나왔어요."

성태는 턱을 들어 주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설아는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이 재밌는지 괜히 더 찰싹 붙어 장난을 친다.

 "에이~ 보면 어때요!! 걱정 말고 들어가요 얼른."


 투닥거리며 다정하게 집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다 같이 둘러앉아 있을 때였다.

 "아빠, 엄마. 저 할 말 있어요."

결의에 찬 듯한 설아의 목소리에 대표와 사모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성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성격을 뻔히 알기에, 입술이 바싹 말라 오기 시작했다.


 "저, 최 기사님. 아니 성태 오빠 좋아해요!"


이렇다. 설아의 곁에 있을 때면 성태는 늘 무방비 상태로 끌려간다. 당황한 성태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휙 돌려 그녀와 대표를 번갈아가며 바쁘게 쳐다봤다. 하지만 사모는 짐작이라도 했는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 올리고, 대표는 별안간 호탕하게 웃어댔다.

 

 "하하하하하."

의중을 알길 없는 성태는 괜히 같이 웃어 보였다.

 "하.. 하하하.. 하하"

어색하게 따라 웃는 모습을 보던 대표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 기사님. 아니, 자네는 어떤가?"


 성태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빠가 떠올랐다. 짐으로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은 했지만, 아직 어리다면 어린 딸을 좋아한다는 남자가 맹인의 아빠를 평생 부양해야 하는 처지라면 어느 누가 반기겠는가. 점점 땀이 등줄기에서 셔츠로, 피부로 닿아가는 게 느껴졌다.


 "저는.. 아니, 저도 좋아합니다. 설아 씨."

그럼에도,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포르투나라는 행운의 여신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기에 용기 낼 수 있었다.


성태의 대답에 설아는 발끝을 꼼지락거리며, 발그레 홍조를 띠었다. 대표는 그런 딸과 성태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흐뭇하게 웃음 지어 보였다.


 "젊은 남녀가 서로 좋으면 된 거지 뭐, 혹시 만나다 헤어져도 일 그만두면 안 돼요 최 기사님."

평소와 다르게 우스갯소리까지 던지는 대표의 태도에 성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네! 아버님! 아니, 감사합니다. 대표님!"

성태의 조그마한 말실수까지 더해져 그들의 아침은 탁자에 놓인 사과만큼이나 달콤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처음으로 사석에서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성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표가 특이했다. 앞전의 운전기사님도 뜬금없이 취직하셨다 하고, 자신도 대리운전 한 번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상황이 좋지 않은 처지를 대수롭지 않아 하는 그의 행동이 감사하면서 신기했다.


 "대표님은 참 좋으신 분 같아요. 저희가 허락받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설아는 백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오빠, 사실 말 못 한 게 있어요. 조금 긴 얘기가 될 거 같은데.."

설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쓸쓸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저 아빠랑 안 닮지 않았어요? 하하."

그저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생각했던 성태였다.

 "어..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설아 씨는 아무래도 사모님을 많이 닮았죠. 하하"


그녀는 그의 말에 같이 웃고는 말을 시작했다.


 "우리 엄마 재혼이에요. 사별..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선물처럼 제가 생겨서 일찍 결혼하셨데요. 근데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친아빠한테 하루가 멀다 하고 맞았어요.. 한 날은 그 사람이 술을 마시고 한참을 뒤엎다가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뛰었어요. 그냥.. 무작정, 진짜 무작정.. 그날 죽었어요 그 사람.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해서 우리 찾는다고 밖에 나왔다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하하 웃기죠?"


허공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몸속 장기들이 요동치듯 불편해져 오는 성태였다. 설아는 성태의 일그러지는 표정에 괜찮다고 손짓하고 말을 이었다.


 "더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그 사람, 꼴에 엄마를 엄청 사랑했나 봐요. 별 볼 일 없는 살림에 혹시라도 자기 잘못되면 엄마 힘들까 봐 사망보험을 들어놨더라고요. 없는 돈 쪼개서 매달 꾸준히도 들어가 있었어요. 1억, 보험금으로 1억 받았어요. 엄마랑 내가 허구한 날 맞으면서 손에 쥐어진 돈.. 엄마는 그 돈으로 방 딸린 작은 식당 하나를 차렸는데, 우리는 그걸로 먹고살았어요. 거기서 중학교까지 다녔어요."


과거를 돌아보며 허탈하게 웃는 설아였다. 그녀의 삶은 어디 하나 행복한 구석이 없었다. 성태는 그녀를 맑고, 밝은 사람이라고만 정의했었는데.. 순간 미안함과 창피함이 몰려왔다. 성태는 설아를 쳐다보던 시선을 떨구었고, 갈 곳 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손이 보였다. 그는 그 작은 손을 슬며시 잡아주었다.


 "그 식당에서 지금 우리 아빠를 만났어요."

설아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른 빛으로 눈을 반짝였다.


 "아빠는 그 시기가 사업이 제일 안 풀릴 때라고 하셨는데, 우연하게 식당에 오셔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신기하게 일이 잘 됐데요. 그 뒤로 계속 식당에 오셨어요. 매일매일 빠짐없이. 그 연이 지금의 가족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엄마 만나고 난 후로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엄청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셨을 거예요. 오빠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좋은 사람이라는 거. 아빠는 다 알아요...! 아빠는 정말 내 삶에 선물 같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행운아예요."


 쓸쓸했던 설아의 이야기는 행복을 가득 머금은 채 마무리되었다. 느껴졌다. 얼마나 아빠를 아끼는지, 이제는 평안해진 그녀의 마음까지. 포르투나라는 존재가 그녀에게는 대표님, 대표에게는 설아의 엄마라는 생각이 드는 성태였다.


 어쩌면 루나는, 아니 행운의 여신은 긴 세월 여러 날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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