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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Apr 18. 2024

신의 존재를 믿는 자.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화)


 그가 아빠를 버거워한 건 사실이었다. 가족이라고는 자기밖에 없어서 매일을 돌봐줘야 했고, 처지에 몸부림치며 악을 쓰는 아빠 옆에서 늘 노심초사했다. 심지어 설아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병원에 누워있는 아빠의 존재에 한없이 작아졌다. 그랬던 성태의 마음을 중호는 알아챘던 걸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신의 그 한마디가 성태를 발가벗겨버렸다.




 머리로는 어서 달려가야 하는데, 마음으로는 아빠의 모습을 보기가 두려웠다. 얼마나 더 망가졌을까... 성태는 강한 바람 탓에 끈적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마주한 옥탑방의 계단은 하필 또 높아서 고개를 숙이고, 한 계단에 두 걸음씩 천천히 내디뎠다. 한 계단.. 두 계단..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지는 성태였다. 그렇게 내려온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병원과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아빠한테 간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미용실.. 미용실로.."

루나에 대한, 포르투나에 대한 성태의 의심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있었다. 그에게는 지금, 또 한 번의 행운이 필요했다.




성태는 쉼 없이 달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불이 꺼진 간판의 미용실 문을 벌컥 열었다.


 "선생님! 선생님!"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선생님, 선생님.....

어둡고 긴 복도에 그의 숨소리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동시에 오지 않는 성태를 애타게 찾는 김 씨 아저씨의 부름도 울려댔지만, 안타깝게도 안중에 없었다. 그는 루나만을 떠올리며 복도를 걸었고, 그러다 문득 액자들 하나하나에 시선이 닿았다.


그림들이 익숙했다. 처음 미용실에 들어왔을 때, 샹들리에 조명에 비친 액자들을 보며 비싸 보인다고만 생각했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이제야 한 점 한 점 훑어본 그림들은 얼마 전 친구와 술 마시며 찾아봤던 포르투나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였다.


 '아, 진짜였구나. 내 삶에도 행운이 와준 거였구나..'

성태는 치아를 드러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그를 본다면 정신이 나갔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은, 행운을 바라며 살아오던 성태의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빠에게 가지 않고 이곳에 온 걸 더욱더 안도하는 성태였다. 그는 기쁜 마음에 복도를 지나 늘 커트를 받던 곳에 도착했다. 루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초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조심스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수레바퀴그림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동공은 여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아빠가 다쳤어요... 별일 없게 해 주세요. 김 씨 아저씨 말로는 여기저기 피가 많이 났다는데 그래도..! 많이 다친 곳 없이 별일 없게..."


그는 듣는 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가 다쳤다며 별일 없게 해달라고, 자신은 아직 행복하지 않으니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행운을 달라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아악-

갑작스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번쩍이는 환한 빛에 성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힘겹게 눈을 뜬 그의 앞에 실루엣 하나가 점점 진해졌다. 어딘가 인자한 듯, 장난스러운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루나였다.

 "어머, 오픈도 전에 어쩐 일이세요."

그녀는 놀란 기색 하나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녀를 보는 성태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포르.. 투나?"

 "이제 그만 어서 가보세요."

떨려오는 성태의 물음에 루나는 그저 환한 미소와 함께 어서 가보라는 대답뿐이었다. 성태는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괜찮구나. 괜찮아졌구나. 행운의 여신이 정말 내 손을 잡아줬구나.


그는 그제야 뒤를 돌아 아빠가 있는 병원을 향해 달렸다.




 "성태 너 대체 뭐 하다가 이제 오는겨! 아침에 전화받고 온다는 놈이, 9시가 다돼서 나타나면 어쩌자는 겨!"


병원에 도착해 3층으로 올라간 성태는 병실 앞을 서성이는 김 씨 아저씨에게 호통을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등짝을 때리며 소리치는 꾸짖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의 손을 덥석 잡고 물었다.


 "아저씨, 아빠 괜찮을 거예요. 아무 일 없잖아요. 그렇죠?"

한치의 떨림 없이 단호한 성태의 목소리에 김 씨 아저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성태 너 병원에 전화해 본겨? 그래 맞어.. 좀 찢어져서 꿰맨 거 말고는 어디 하나 안 부러지고, 신기하게도 멀쩡혀. 들어가 봐."


 드르륵-


중호는 인상을 찡그리고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친 곳이 아픈 모양이었다. 그런 중호의 모습에 성태는 걱정은커녕, 푸스스 웃으며 작게 흔들어 깨웠다.

 

 "아빠. 나 왔어. 아들."

중호는 보이지 않는 눈을 뜨며,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중호의 빛없는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라니.. 아빠의 첫마디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아빠를 버거워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성태는 애써 참아 흐느끼며, 아빠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빠, 이제 다 괜찮아. 나 취직도 했잖아. 돈도 많이 번다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 천천히.. 천천히 해도 돼.. 부탁할게... 우리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내가 아빠만 믿고 살아온 것처럼, 아빠는 앞으로 나만 믿고 다 의지하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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