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화)
"조심해. 행운이 우연하게 겹치면, 행운이 아닐 수도 있어."
"어우씨. 얘 또 눈이 왜 이래."
재민은 어릴 적부터 가끔씩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동공이 풀렸다. 시간이 흘러 물으면 당시에 한 말을 기억 못 할 때가 대부분이었고, 성태는 혹시 재민에게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다행히 이상이 없어 평소처럼 지내왔지만, 오늘처럼 눈빛이 변하는 순간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더구나 행운이 겹치면, 행운이 아닐 수 있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겨우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지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혼자만 알기 근질거렸을 뿐이었다.
"너 또 기억 못 할 거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지? 부럽냐? 조심하긴 뭘 조심해. 내가 지금 조심해야 할 건, 대표님 딸이랑 이렇고 저런 썸을 안 들키는 거야 인마."
너의 말은 전부 개소리라는 듯, 버젓이 당첨된 종이를 재민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성태야, 수주대토라는 말 알아?"
재민은 안 어울리게 성태의 이름까지 부르며 물었다.
"슈주대통? 슈퍼주니어 대통령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야, 안 어울리게 어려운 말 쓰지 마."
'수주대토'
지킬 수, 그루터기 주, 기다릴 대, 토끼 토.
철학자 한비자의 오두편에서 나온 교훈으로 유명하다.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들이받아 목이 부러져 죽은 토끼를 보고, 힘들이지 않고 토끼 한 마리를 얻었다며 좋아한다. 그는 토끼가 또다시 달려와서 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업이었던 농사를 팽개치고 마냥 그루터기를 지켜보지만, 결국 그때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의 웃음거리에 농사조차 망치고 마는 일화이다.
한마디로 융통성 없이, 노력 없이 행운만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사자성어.
이 깊은 이야기를 알 리 없는 성태는 개의치 않고, 목구멍으로 술을 죽죽 들이켰다. 재민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깨닫지 못하는 성태의 어리석음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지 말고, 너 포르투나 안다며 그 얘기 좀 해줘 봐."
그렇게 한 병 두 병 쌓여갈 즈음, 미용실 명함을 보고 알은체 하던 재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개 풀 뜯어 먹은 소리를 듣게 된 시발점이 다 그 명함 때문인 걸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엄청난 이야기를 기다리던 성태의 앞으로 재민이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머리 아파.. 우리 술 언제 이렇게 마셨냐..."
"오 눈 돌아왔네. 너 또 기억 안 난다고 할 거지."
"뭐야, 나 또 블랙아웃이야? 하 요새 잠잠했는데.."
"그럼 그렇지.. 아 됐고, 얼른 그 얘기나 해봐. 아까 그 명함에 있던 그림."
"어어 그래, 여기 봐바. 중앙에 안대 쓰고 있는 여자 있지? 이 여자가 포르투나야."
"근데 이 안대는 뭐야? 눈이 멀었어?"
"눈이 멀었다는 말도 있는데, 그거보단 복불복이라 이거지. 아무나 데려다가 부자 만들어주고! 권력도 쫙 올려주고!"
재민은 언제 아팠냐는 듯 찰랑이는 소주잔을 들고, 검지로 하늘을 찔러대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흠.. 그럼 좋은 거 아냐? 그 말대로면 내가 복불복에 뽑힌 거잖아."
성태는 의아했다. 재민의 이야기대로라면, 포르투나가 고른 아무나에 들어가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중요한 건, 다음이야. 포르투나에 관한 노래가 있거든? 제목이... 오 여기 있다. 운명의 여신이여."
재민이 들려준 노래의 첫 시작은 강렬했다.
'오, 포르투나여. 달처럼 변하는구나.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증오스러운 삶. 가난과 권력을 얼음처럼 녹여버리네. 언제나 차올랐다가 또 이지러지는구나.'
행운이 가득 담긴 밝은 노래겠거니 생각한 성태는, 가사와 귀로 들려오는 반주에 소름이 끼쳤다.
"노래 분위기가.. 무섭네."
손바닥으로 팔을 감싸 비벼대는 성태의 모습에 재민은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노래가 염세적이야. 염세적.. 알지? 부정적인 거."
설마 하는 눈초리로 성태의 표정을 살폈다. 주먹을 쥐며 자신을 부라리는 걸 보니 다행히 알고 있는 듯했다.
"워워. 진정해. 어쨌든 포인트는 가난뱅이를 순식간에 이유도 없이 부자로 만들었다가, 단숨에 무로 돌려버리는 거야. 포르투나는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고, 그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열망도 노력도 덧없다. 이 여자한테는 다 장난이야. 그냥 놀이야 놀이."
신나게 듣기 시작했던 이야기의 끝은 찝찝 그 자체였다. 기대했던 여신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이 꽉 찬 기분이었다. 심각해 보이는 성태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던 재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또 뭐."
"아니, 진짜 이상하잖아. 미용실 이름도 인생 미용실이 뭐냐. 선생님 이름도 루나? 아~ 좀 수상해. 꼭 포르투나에서 따온 거 같잖아. 안경도 무슨 이상한 컬러 안경 쓰고 있다며!!"
하나하나 따져보다 정말 수상함이 느껴진 건지, 심각해진 성태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재민은 자신이 꺼내놓은 이론을 현실로 부추기고 있었다.
"흠.. 포르투나... 포르.. 투나.. 루.. 나? 아이씨, 소름. 아 됐어 그만해. 술맛 떨어진다 가라 가!"
곰곰이 읊어보던 성태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탁탁 털어재꼈다. 그 모습에 웃어대던 재민은 잘해보란 말과 함께 어깨를 토닥이고 집을 나섰다.
오래간만의 회포는 숙취가 상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민이 돌아간 뒤, 영 찝찝한 마음에 홀로 술 한 병을 더 비워버린 성태였다. 하지만 황금 같은 일요일을 뭉그적거리며 헛되이 쓸 수는 없었다.
'정신 차리고, 아빠나 보러 가자.'
병원 갈 준비에 운동복 바지 하나를 꺼내 입으려던 성태는 입을 삐죽였다. 아빠의 손이 닿은 지 한참 된 서랍장, 어느새 그 좁은 틈으로 옷들이 비적비적 비어져 나와 있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다 해도 집은 예전 같지 않겠지.. 성태는 신경질적으로 옷들을 꾹꾹 눌러 넣고는 서랍을 쾅 닫아버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 찰나, 점퍼 주머니에서 일정한 진동이 느껴졌다.
[김 씨 아저씨]
"네 아저씨."
"아이고 성태야, 성태야."
이렇게 급하게, 목이 메어 전화할 이유는 아빠밖에 없었다.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의 떨림이 수화기 너머 성태의 손으로, 몸으로 전해져 왔다. 곧 들려올 소식이 좋지 않을 거라 예언이라도 하듯, 살짝 열린 현관틈에는 차가운 바람이 휘휘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아저씨!... 혹시 저희 아빠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아들놈한테 짐 안되려면 하루빨리 적응해야 헌다고..."
"네? 하.. 아저씨 차근차근 얘기해 주세요. 아빠는 괜찮은 거 맞아요?"
"최 씨가.. 여기저기 피가 나서 실려갔는데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도 못혔네.. 어쩐다고 혼자 돌아댕겨가지고.. 재활치료받고 간호사가 병실 데려다준다는 거 최 씨가 혼자 간다 그랬다고 허네.. 아들놈한테 짐 안되려면 하루빨리 적응해야 헌다고.. 하도 고집에 고집을 부려서 일단 엘리베이터까지 지켜봤다는데 그 사달이 났어.. 3층 올라가서 병실 가기 직전에 그 중앙 계단 지나는 복도 있잖여.. 거기서 발을 헛디뎌서 계단으로.. 아이고.. 성태야 어서 와.. 어서.."
툭-
현관문을 잡고 있던 성태의 손은, 또 한 번 닥친 아빠의 변고에 갈 곳 없이 흘러내렸다.
https://youtu.be/ag8uu1RYOwc?si=9OlPj5EBAPJNLo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