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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Apr 11. 2024

'수주대토'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화)


 "야, 너 조심해. 행운이 우연하게 너무 많이 겹치면, 행운이 아닐 수도 있어."


 행운이 겹치면, 행운이 아닐 수 있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성태는 친구에게 겨우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지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혼자만 알고 있기 근질거렸을 뿐이었다.


 "부럽냐? 조심하긴 뭘 조심해. 내가 지금 조심해야 할 건, 대표님한테 설아 씨랑 관계 안 들키는 거야 인마."

너의 말은 전부 개소리라는 듯, 버젓이 당첨된 종이를 친구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친구는 자신의 말에 콧방귀나 뀌는 성태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취직도 안 하고, 맨날 복권만 들여다보던 네가 뭘 알겠냐~ 아! 너 혹시 수주대토라는 말 들어봤냐? “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하던 친구는 음흉하게 웃으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슈주대통? 슈퍼주니어 대통령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야, 안 어울리게 어려운 말 쓰지 마."


 '수주대토'

지킬 수, 그루터기 주, 기다릴 대, 토끼 토.


철학자 한비자의 오두편에서 나온 교훈으로 유명하다.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들이받아 목이 부러져 죽은 토끼를 보고, 힘들이지 않고 토끼 한 마리를 얻었다며 좋아한다. 그는 토끼가 또다시 달려와서 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업이었던 농사를 팽개치고 마냥 그루터기를 지켜보지만, 결국 그때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의 웃음거리에 농사조차 망치고 마는 일화이다.


 한마디로 융통성 없이, 노력 없이 행운만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사자성어.


이 깊은 이야기를 알 리 없는 성태는 개의치 않고, 목구멍으로 술을 죽죽 들이켰다. 친구는 자신이 놀려대도 알지 못하는 성태의 어리석음을 안주 삼아 즐겁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아! 너 포르투나 안다며, 그 얘기 좀 해줘 봐."

그렇게 한 병 두 병 쌓여갈 즈음, 미용실 명함을 보고 알은체 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개 풀 뜯어 먹은 소리를 듣게 된 시발점이 다 그 명함 때문인 걸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잊고 있었던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성태의 말을 들은 친구는 좋은 이야깃거리 하나가 생겼다는 사실에 신나서 눈을 번뜩였다.


 "맞네, 그 얘기를 안 했네. 여기 그림 중앙에 안대 쓰고 있는 여자 있지? 이 여자가 포르투나야. 근데 왜 안대를 쓰고 있냐, 복불복이라 이거지. 그냥 아무나 데려다가 부자 만들어주고! 권력 쫙 올려주고!"

친구는 오른손에 찰랑이는 소주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검지를 추켜올려 하늘을 찔러대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럼 좋은 거 아냐? 그 말대로면 내가 복불복에 뽑힌 거잖아."

성태는 의아했다. 친구의 이야기대로라면, 포르투나가 고른 아무나에 들어가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중요한 건, 다음이야. 포르투나에 관한 노래가 있거든? 제목이... 오 여기 있다. 운명의 여신이여."


친구가 들려준 노래의 첫 시작은 강렬했다.

 '오, 포르투나여. 달처럼 변하는구나.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증오스러운 삶. 가난과 권력을 얼음처럼 녹여버리네. 언제나 차올랐다가 또 이지러지는구나.'


운명의 여신이라 행운이 가득 담긴 밝은 노래겠거니 생각했던 성태는, 영상에 적힌 가사와 귀로 들려오는 성악가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뭐야, 노래 분위기가.. 무섭네."


친구는 손바닥으로 팔을 감싸 비벼대는 성태의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노래가 염세적이야. 염세적.. 알지? 부정적인 거."

설마 하는 눈초리로 성태의 표정을 쓱 살폈다. 주먹을 쥐며 자신을 부라리는 걸 보니 다행히 알고 있는 듯했다.


 "워워. 진정해. 어쨌든 포인트는 가난뱅이를 순식간에 이유도 없이 부자로 만들었다가, 단숨에 무로 돌려버리는 거야. 포르투나는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고, 그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열망도 노력도 덧없다. 이 여자한테는 다 장난이야. 그냥 놀이야 놀이."


성태를 향한 친구의 눈빛이 순간 단호하게 바뀌었다. 성태도 영 바보는 아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찝찝했다. 기대했던 여신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이 꽉 찬 기분이었다. 심각해 보이는 성태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던 친구는 갑자기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갸웃거렸다.


 "왜 또 뭐."

성태는 계속 듣자 하니 괜스레 기분이 상했다.


 "아니, 진짜 이상하잖아. 미용실 이름도 인생 미용실이 뭐냐. 선생님 이름도 루나? 아~ 좀 수상해. 꼭 포르투나에서 따온 거 같잖아. 안경도 무슨 이상한 컬러 안경 쓰고 있다며!!"

하나하나 따져보다 정말 수상함이 느껴진 건지, 심각해진 성태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친구는 자신이 꺼내놓은 이론을 현실로 부추기고 있었다.


 "흠.. 포르투나... 포르.. 투나.. 루.. 나? 아이씨, 소름. 아 됐어 그만해. 술맛 떨어진다 가라 가!"

곰곰이 읊어보던 성태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탁탁 털어재꼈다. 성태의 손짓에 친구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한 번 더 조심하라는 말을 전한 뒤 집에서 나갔다.




 오랜만에 풀어본 친구와의 회포는 숙취가 상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가 돌아간 뒤, 찝찝한 마음에 홀로 술 한 병을 더 비워버린 성태였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 황금 같은 일요일, 이 소중한 시간을 뭉그적거리며 헛되이 쓸 수는 없었다.


 '정신 차리고, 아빠나 보러 가자.'


병원 갈 준비에 운동복 바지 하나를 꺼내 입으려던 성태는 입을 삐죽였다. 아빠의 손이 닿은 지 한참 된 서랍장, 어느새 그 좁은 틈으로 옷들이 비적비적 비어져 나와 있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다 해도 집은 예전 같지 않겠지.. 성태는 신경질적으로 옷들을 꾹꾹 눌러 넣고는 서랍을 쾅 닫아버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 찰나, 점퍼 주머니에서 일정한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자는 010으로 시작되는 저장하지 않은 번호였다. 성태는 02나 031은 고민해도, 010은 누구일지 모를 호기심에 늘 전화를 받곤 했다.


 "여보세요?"

 "아이고 성태야, 성태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씨 아저씨였다. 성태는 그와 번호교환을 한 적이 없었기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성태의 이름만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가 성태에게 이렇게 급하게, 목이 메어 할 이야기는 아빠밖에 없었다. 병원에 있는 아빠에게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혹시 저희 아빠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그의 떨림이 수화기 너머 성태의 손으로, 몸으로 전해져 왔다. 곧 들려올 소식이 좋지 않을 거라 예언이라도 하듯, 살짝 열린 현관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휘휘 비집어오고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성태에게 아플지도 모를 말을 전했다.


 "최 씨가.. 여기저기 피가 나서 실려갔는데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도 못혔네.. 어쩐다고 혼자 돌아댕겨가지고.. 재활치료받고 간호사가 병실 데려다준다는 거 최 씨가 혼자 간다 그랬다고 허네.. 아들놈한테 짐 안되려면 하루빨리 적응해야 헌다고.. 하도 고집에 고집을 부려서 일단 엘리베이터까지 지켜봤다는데 그 사달이 났어.. 3층 올라가서 병실 가기 직전에 그 중앙 계단 지나는 복도 있잖여.. 거기서 발을 헛디뎌서 계단으로.. 아이고.. 성태야 어서 와.. 어서.."


 툭-  

어서 오라는 아저씨의 말을 끝으로, 현관문을 잡고 있던 성태의 손이 갈 곳 없이 흘러내렸다. 비집고 들어오던 바람도 길을 잃은 건 마찬가지였다. 성태는 그의 말이 눈앞에 이미지화되어 서서히 흐려져 가고 있었다.

 "어... 아... 저 갈게요.. 지금 갈게요."



https://youtu.be/ag8uu1RYOwc?si=9OlPj5EBAPJNL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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