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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은 Sep 12. 2021

밤의 시간을 걸으며

밤을 걷는 시간,

이 시간이 주는 선물이 있다.


밤공기 가득한 길은 걸으면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들이

하나 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두운 길,

내 눈에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온전히 내 걸음에 집중할 수 있다.



밤 산책을 시작한 건 작년 이른 봄부터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세상이 멈추자 당연히 내 일도 멈췄다.

시간이 많아지니

눌렸던 갱년기 증상이 하나 둘 찾아왔다.

그중 무엇보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에

몸도 마음도 흔들렸다.


불안은 다리에 이상감각을 일으켰고,

그 증상은 불면증을 불러왔다.

결국은 병원 순례가 시작되었다.

그 순례에서 얻은 병명은 '하지불안증후군'

약을 먹으며 나른하고 흐물거려지는

하루를 보내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찾아간 한의원에서 갱년기 증상이니

무엇보다 규칙적인 식사와 걷기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밤의 산책 시간.

낮에 걸으라 했지만

나는 사람을 덜 마주치는 밤에 걸었다.


한 달 두 달 걷다 보니

조금씩 생각과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삼킬 듯 다가왔던 불안이

내가 걷는 밤의 시간 속으로

조금씩 천천히 사라졌다.



지금도 몸과 맘이 휘청이는 날은

밤의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그 속에서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의 걸음을 인식하고,

나를 만날 수 있는

그 시간을 걷는다.


찾아온 갱년기 시절,

잠들고 싶어 걷게 된 밤의 시간.

그 시간이 오늘도 내 삶의 무늬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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