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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했던 대한항공 시절...

대한항공의 암흑기였던 90년대를 거기서 보냈다

by 체스터 Chester

1992년도에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2000년도에 거길 떠났으니 7년 몇 개월을 대한항공에서 생활했었다.

B727과 A300 기종을 비행했었고, B777 전환교육을 마친 후 퇴사했지...

그 때의 일들을 기록해 보자..


대한항공에 입사하고 기본 교육을 모두 마친 후 B727에 배치되었었다. 소형기종으로 F-100, MD82와 B727 기종이 있었는데 B727이 제일 구닥다리였다. 완전 아나로그 방식에 항공기관사(F/E)가 함께 탑승하니 운항승무원이 3명인 비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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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27에 배치되어 훈련을 마친지 얼마 안되어, 회사에서 B727 기종 댓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원 감축을 하지 않았기에 몇 달 동안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출근하곤 했다. 주위에선 젊은 친구가 빈둥거린다고 다들 수근거렸고 동기생 누구는 간첩이 아닐까라고 강한 의심을 받았다는 후일담..

노선 개척을 위해 B727 몇 대를 대한항공에서 몽고항공에 기증했고, 몽고 조종사들이 인천 훈련원에 와서 교육을 받았었다. 몽고사람들의 시력이 엄청 좋다고들 했지. 계기비행을 잘 하질 못하지만 눈이 좋아 '공항이 보인다'고 외치고 시계비행하기를 선호한다고 들었었다..

손민희 소장님하고 몇 분이 몽고로 비행기를 갖다 주고 오셨는데 몽고의 민속주인 말젖으로 만든 술을 대접받아 곤욕을 치르셨다고 하셨었다..냄새가 심해서 마시기 힘들었기에.

그 B727 비행기들이 몽고의 제트여객기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B727을 탈 때 경남 사천공항으로 자주 비행했었다.

김포공항에서 남행하다 광주 상공에서 항로가 90도로 꺾이는데 항법장비가 꺼벙한 B727에선 항로 따라가기가 엄청 힘들었다. 고도, 바람방향, 속도 등을 계산해 어디서부터 선회를 시작할까 결정했는데 대부분 항로 중앙에 딱 맞춰지질 않았지.. 요즘 같은 컴퓨터 비행기에선 상상할 수 없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네. ㅎㅎㅎ

사천공항은 군 훈련기지로 정밀접근장비로 PAR로 이용했는데 관제가 아주 엉성했다. 최저강하지점(Minimum)까지 왔는데 활주로가 제 위치에 있지 않아 접근하며 활주로 찾는게 일이었다.. 관제장비가 훌륭하지 않아서 그랬으리라..


B727로 일본 니카타 레이오버가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착륙해, 그 다음 날 아침 늦으막한 시간에 출발하는 편으로 시간이 넉넉했지. 기장, 기관사 선배와 일본 슈퍼에 가서 스시 도시락과 정종을 사다 한 방에 모여 같이 먹곤 했다. 존경하던 손민희 소장님은 정종을 잘 덥혀야 맛있다고 항상 그러셨었네..

기관사 선배들하고는 쇼핑을 자주 다녔는데, 주로 스키 용품을 구입했었다. 니카타가 워낙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곳이었으니.. 스키복, 스키부츠를 거기서 구입해 들고 왔고 그 스키복은 아직도 캐나다 집에 있다..

아침에 비행기엘 도착하면 일본식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이 너무 이뻐서 건드리기가 미안했었다..

그 당시엔 한국 공항세관을 통과할 때, 담배 한 보루를 신문에 싸서 전해주면 다 통과였었다. 승무원들은 모르지만 조종사들은.. 낭만이 있는 시절이었어. 암...

어느해 겨울에 그 니카타 공항에 접근하는데 Final 구간에서 눈보라가 몰아쳐서 간신히 내렸던 기억도 있네..


B727은 동체 뒷쪽에 여닫히는 계단식 문이 있었던 것도 특이했구나.. 외부점검을 할 때면 그 계단으로 올라가 유압(Hydraulic) 등 시스템 장비들을 체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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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27 조종실에 있는 Landing Gear Lever가 무지무지하게 컸었다. 지금 기억엔, 거의 커타란 몽키 스패너 정도였던 듯.. B727을 타다가 A300으로 전환했을 때, A300의 Landing Gear Lever가 손가락만해 깔깔거리며 웃었었다... 하도 큰걸 보다 작은걸 보니..


A300(정식명: A300B4)으로 전환했는데 얘도 완전 구닥다리 재래식 비행기였다. B727하고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항공기관사(F/E)를 포함하여 조종실에 3명이 탑승하는 방식이었다.

전환 초기엔 여객기도 있었지만 점점 도퇴되고 화물기만 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화물기 2대만 남게 되었지. 이 화물기들은 여객기가 아닌 화물기로 제작된 거라 A300F4라고 명칭이 달랐다.


[인터넷에서 찾은 댄항공 A300 화물기. 마카오 공항이라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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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00 화물기를 탈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듯 하다..


대한항공 조종사 중에 우리 A300팀만 마닐라 레이오버가 있었는데, 90년대의 한국에선 귀한 과일이었던 망고를 엄청 먹을 수 있었다.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 편 조종실에서도 계속 먹으며 왔고. 망고의 씨까지 쪽쪽 빨며...

언젠가 대구에 계셨던 장인어른께 가져다 드렸더니 학교선생님들과 너무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다.

90년대 마닐라에 갈 때면 총을 든 경비가 무지무지 많아 거시기했었다. 길거리엔 거지 천지... 언젠가 마닐라에서 볼 일 보러 레이오버 호텔의 경비놈하고 같이 나갔는데, 택시 안에서 이 새끼가 권총을 들이댄 적도 있었다. 돈 달라고.. 나쁜 시키.. 호텔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얘기했는데 제대로 관리를 했는지는 미지수..

기관사 선배 중 한 분은 마닐라 중고시장에 가서 비행기 부품을 구입해 오곤 했다.. 자이로 같은 것.. 나중이 이 분은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같이 타자고 부르셨는데 차마 못타겠더라고.. 김포공항에 비행학교를 여셨었는데..


사이공 레이오버도 끝내줬었다.. 지금은 호치민 시티라고 불리지.

90년대에도 오토바이 물결을 보고 길을 못 건널 정도였고, 중앙 시장에 가면 정말 여러가지를 싸게 살 수 있었다. 베트남인들의 손재주가 좋아 자개가구, 깡통 완구 등 참 많았다.

시내의 롯데리아 주변에 이쁜 언니들이 엄청 많았었지.. 베트남에서 처음 롯데리아가 오픈한 곳이었는데 그 근처의 언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뻤어..


자카르타 레이오버에는 사연이 많았다...거기서 갇혀 버리기도 했었고.. 이 얘기는 따로 썼다.

자카르타의 레이오버는 2박 3일, 3발 4일 이랬었다.. A300 화물기가 2대밖에 없었기에 갈 때와 올 때 모두 비행하기 보단 한 쪽 편은 승객으로 다니곤 했다..

시내의 Hard Rock Cafe에 가면 자카르타의 이쁜 언니들은 다 모여 있는 듯 했다. 이슬람 국가인데도 희안하제??


홍콩 레이오버도 있었네.

90년대엔 홍콩의 옛공항 카이탁을 이용했었다. IGS Rwy 13로 들어오다, Final에서 활주로 방향인 오른쪽으로 빙~ 돌아 내리는 그 악명 높았던 카이탁 공항. 부기장보고 비행해 보라고 맡기는 경우가 없었고, 기장들도 대부분 식은땀을 흘리는 공항이었다.

Final에서 빙~ 돌 때 오른쪽 아래 지상의 아파트 창에 빨래를 널어 놓은 것들이 잘 보였었지.. 사고도 많이 났던 카이탁 공항이었는데, 대만의 중화항공 B747-400 새 비행기가 착륙 후 그대로 바다로 빠져버렸던 곳이기도 하다.

카이탁 공항 Final에서 빙~ 도는 모습은 대한항공의 B747이 내리는 장면이 아주 유명했고 인터넷에 올라 있었다. ..

좌우지간, 카이탁 공항하고, 그리고 그 후에 개항한 새 공항인 첵랍콕 공항에서는 화물기에서 내리면 항상 검정색 벤츠로 우리 3명을 침사추이의 호텔로 데려다 줬었다. 얼마전에 옛날 홍콩영화 '첨밀밀'을 보니 그 당시에 내가 보았던 홍콩 침사추이가 나오더라고..

아침에 비행기에 도착하면, 항상 정비사가 따끈한 홍콩 완탕을 준비해 주셨었다.. 끝내줬었지..


[인터넷에서 찾은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의 댄항공 A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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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했던 사진.. 대한항공 B747의 홍콩 카이탁 공항 Rwy 13 방향 선회 모습.

카이탁 공항의 유명한 체커보드 표지가 뒤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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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http://canacopegdl.com/single.php?id=https://i.pinimg.com/originals/b1/42/7a/b1427a7a51ec734fd237a37670fa5302.jpg에서 퍼옴.]



90년대 대한항공 A300팀에서 방콕을 빼면 할 말이 없겠다. 전반기 후반기 마다 시뮬레이터 훈련을 방콕의 타이항공(Thai Airways) 시뮬레이터 센터에서 했었으니.. 대한항공 기종 중, A300하고 MD11만 외부에서 훈련을 했었던 것 같다.

해마다 2번씩 꼬박꼬박 방콕엘 갔었는데, 교관 포함 8명씩 될 경우가 많았다. 옛날 노인네들은 술을 너무 잘 드셨지.. 매번 가는 식당의 원형 테이블에, 기내에서 사간 양주로 시작해서.... 뒷치닥거리는 항상 내가 담당했다..

그 때 게이쇼로 유명한 극장하고 거리를 다녀봤었는데 정말 역겨웠어..


방콕 레이오버할 때, 수쿰빗 거리에 있는 골프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기장 한 분하고, 방콕에 갈 때마다 골프채 한 개씩을 사 오기도 했네.. 세관에선 잘 통과시켜 주셨었고..


행주대교 붕괴도 있었네..

일산에서 김포공항으로 출근하는 자체가 인간승리였었다.. 울 아지매도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져 교통안전공단을 그만 두게 되었고...

행주산성 주위의 골목길로 뺑뺑 돌아 출퇴근 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도로가 꼼짝을 하질 않아 휴대전화인 모토롤라 벽돌폰을 갖고 있는 다른 운전자에게 부탁해 회사로 연락을 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기 전이었으니..


아, 대한항공에서 일어났던 사고가 너무 많았는데 이건 다루지 말도록 하자.. 잘 알고 지내던 선배와 후배, 기장님이 돌아가셨기도 했다. 총 6건의 대형사고가 났었는데 그걸 겪으며 나와 대한항공 조종실 문화(한국 문화)가 맞지 않음을 깨달았고 캐나다로 이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단한 90년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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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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