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스터 Chester Jan 14. 2024

화장실이 마비되어 버린 여객기

비행 이야기: 공중에서 모든 변기가 멈춰버리다...

캄보디아 JC항공에서 일하던 어느 날.. 

비행 중 Purser(사무장, 또는 캐빈 매니저라고 한국에선 부른다)에게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캡틴, 화장실이 이상해요. 기내에 있는 모든 변기가 작동이 안되요.."

뭐라꼬라?? 화장실 변기가 안된다고? 그것도 3개 전부 다?


이날은 캄보디아 시하누크빌공항(KOS)에서 중국 항조우공항(HGH)으로 비행하는 날이었다. 비행시간은 3시간 40분. 승객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은 외환통제를 하지 않던 시기라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에는 중국인 관광객과 도박꾼 등등으로 넘쳐났었다.

그 중국인들은 차를 엄청 마신다. 비행기를 탈 때도 보온병을 갖고 다니며 물을 채워 마시지.. 당연히 중국 공항 대합실에는 온수가 나오는 특이한 시설이 있고.. 비행 중에도 엄청들 마셔댄다. 

중국 항공사에서 일했을 때 같이 비행하던 중국인 부기장들도 똑같았다.. 2리터짜리 보온병을 갖고 다니는 부기장들이 흔했다. 그 큰걸 비행가방에 넣고 다니더라고..


비행기를 이용하다 보면 화장실에 종종 들리게 된다. 아주 짧은 구간에서야 괜찮지만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소변은 물론이고 세수, 양치 등등의 볼일을 기내에서 봐야한다. 애기를 데리고 다니면 귀저기를 갈 때도 마찬가지고..

카타르항공의 A320 기종 화장실. 깔끔하네.. 출처: 구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건 대소변보기 일 것이다. 근데 변기가 비행 중 마비되다니...


A320 기종의 경우 조종실에서 화장실 변기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사무장의 연락을 받은 후 내 항공지식을 총동원해 머리를 굴려봐도 변기 3개 모두가 안된다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부기장에게 비행을 맡기고 앞 화장실로 가 변기를 살펴보았다.

예전의 오래된 비행기 변기엔 파란색 물이 차 있어 그 물이 순환하며 변기에서 오물을 씼어내고 저장탱크로 보냈었지만 요즘의 비행기 변기는 진공상태를 만들어 공기압력 차이로 변기 안의 오물을 빨아들인다. 오물만 저장탱크에 저장하기에 효율이 높지.

변기엔 오물이 차 있건만 Flushing 버튼을 눌러봐도 전혀 진공이 작동하지 않았다.. 조종실로 돌아와 A320 시스템 매뉴얼을 살펴보니 감이 잡혀간다. 아 저장탱크가 꽉차서 멈춰버렸구나...

A320 기종 화장실 계통도. 검정색 라인이 오물 이동경로


비행기의 오물저장탱크는 지상에서 비운다. 매 비행마다 하진 않지만 정비부서에서 오물저장탱크를 모니터링하다 적절한 량이 되면 지상조업사에 연락해 오물수거차량이 오도록 한다. 오물수거 호스를 항공기 뒷쪽으로 연결해 빼내기에 외부점검을 위해 비행기를 한바퀴 삥 돌 때면 냄새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날은 저장탱크가 거의 차도록 지상에서 왜 작업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 날 탔던 중국인 승객들이 너무 너무나 많이 볼일을 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조종실에서 오물저장탱크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없으니 조종사는 알 수 없지.. 


어쨌든 가뜩이나 물을 많이 마셔대는 중국인으로 가득찬 비행기의 화장실 변기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것도 공중에서... 앞으로 1시간 반 정도 더 가야 목적지인데..

생각이 많아졌다. 안전상 어떤 저해요인이 있지? 목적지까지 가지 말고 중간의 가까운 공항에 착륙해야 하나(Diversion)??? 

부기장과 얘기하며 결국 목적지인 항조우로 계속 비행하기로 결심했다. 중국 영공이기에 Diversion이 무척 까다롭기도 하고, 더군다나 화장실 변기 마비를 이유로 댄다면 중국 관제기구에서 들어줄리 없다고 판단했다.


Purser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변기가 안되니 승객들에게는 가능한한 남은 시간을 참아달라고 하고, 너무나 급한 승객은 세면대를 이용하라고 했다.

비행기 화장실의 세면대(sink)에서 버리는 물은 비행기 외부로 방출된다. 변기 계통과 분리되어 있는거지..

기내에는 물병(PET병)이 많고 소변을 담아 세면대로 버리면 급한 승객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날 우리 비행기에서 방출된 오줌이 공중을 날아다니다 기화 또는 지상 어딘가에 떨어졌으리라... 


착륙 1시간 전이면 착륙 준비를 위해 나도 화장실엘 가야 하는데... 나도 PET병을 이용하자..


그날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변기 때문에 우리 승객들은 고생을 했다. 다행히도 아주아주 급한 승객은 적었다고 하더라고..

착륙할 때는 최대한 살짝 터치다운. 변기의 오물이 넘치지 않도록 ..


항조우공항에서 오물탱크를 비웠다. 

승객 하기 후 기내로 들어온 청소요원들에게 화장실을 뽀득뽀득하게 청소하고 위생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오는 편엔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화장실로 탈바꿈~


비행 전 항공기 외부점검을 하다 화장실 냄새가 풍기면 요즘도 KOS-HGH 비행이 기억난다.. 에고 더러워라..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_nbMwItYaucUgWhh4jCqeVDBuVB-CIdN


작가의 이전글 영어 맞어?? 추리는 필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