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1913년 일제에 반출되었다가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오대산사고로 110년만에 돌아왔다.
-조선은 건립 당시부터 국가의 회의록이나 행사 관청의 업무일지와 같은 기록물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전통을 확립했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국가의 중요 행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의궤 등 국가 운영 전반에 관한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겼고,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되는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왕실 족보인 선원록도 편찬했다.
-이러한 기록물들은 철저히 관리됐다. 조선 전기에 만들었던 사고들이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자 인적이 드문 깊은 산에 오대산사고,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 적상산사고 네 곳에 외사고를 설치했다. 조선왕조의 기록물 생산과 관리 체계는 같은 시대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한 왕조가 500년이 넘도록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은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472년1392-1863간의 역사를 연• 월 • 일 순으로 담은 역사서이다. 조선은 유교적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문치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유교 경전과 정통성을 증명하는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기 위해 실록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 했다. 왕실의 일상부터 조정에서 논의된 주요 안건, 관료의 상소, 외국과의 교류, 자연재해, 백성들의 생활 등 다양한 내용을 기록했다.
-기사에는 사관의 평가도 포함됐다. 사관에게는 어떠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직필 권한을 보장했다. 따라서 완성된 실록뿐만 아니라 실록 편찬의 기초 자료인 사관의 기록 역시 왕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다. 또한 편찬된 실록이 향후 개정되거나 수정되더라도 그 이전에 편찬된 원실록은 그대로 남겨 전후 과정을 후대가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의궤는 조선왕조의 중요 행사나 사업을 완료하고 제작한 종합 보고서다. 조선의 왕실 결혼식, 장례와 능의 조성, 즉위 • 책봉• 궁중의 잔치, 종묘 • 사직, 무기 제작, 대규모 토목공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를 기획, 준비하고 추진하여 완료하는 과정과 여기에 투입된 인적 • 물적 자원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오늘날 역사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 한다.
-의궤에는 행사에 관한 왕과 신하들의 논의사항, 관청 간에 주고받은 문서, 담당자 명단과 사용된 물품, 경비 내역, 포상 내역 등 행사의 생생한 현장이 담겨 있습니다. 의궤에는 참여자들의 행렬 모습을 그린 반차도와 행사에 사용되는 각종 물건의 그림인 도설이 포함되어 있어 조선왕실의 생활상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화원들은 채색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안료를 사용했다. 안료는 주로 광물이나 식물 등의 천연 재료에서 추출했다. 의궤 제작에 사용된 색은 하얀색(진 분), 초록색(삼록), 남색(이청), 파랑색(삼청, 청화), 붉은색 (당주홍), 노란색(동황) 등이다.
-권력자가 두려워할 만한 역사의 힘과 무게는 기록이다. 그리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정론직필한 사관의 소신. 조선왕조실록 진짜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오대산사고- 전나무숲길- 월정사 코스로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