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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 HQ Nov 26. 2021

익숙해지지않는 일상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매일이 새롭지만은 않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등원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등원을 하지만 아이는 늘 새롭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단어를 사용해 아빠를 감짝 놀라게도 하고, 답하기 어려운 철학적 질문을 돈져 당황하게 하기도 하고, 불쑥 던지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실지 기대를 가질 때면 너무나 익숙한 또는 이미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고 새롭게 다가온다.


#1.

통근버스에서 내려 인도를 걸어가며 아빠가 빨간 보도블록을 밟으면 뜨겁고, 자기가 밟으면 따뜻한 걸로 하자시더니, 처음에는 뜨겁다는 말을 아기 목소리로 해달라고 하셨고 이어서 까치, 비둘기, 돼지, 앵무새 목소리를 요구하셨다. 다행히 아빠가 낸 소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잠시 따라하기도 하셨는데, 갑자기! 지구 목소리로 하라신다. 지구? 순간 지구 목소리를 어떻게 내지? 했다가... 그런데, 지구도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했다가 지난 번 누리호 발사 후 어린이집에서 우주에 대해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 말이 기억이 나기도 하다가.... 조금 낮은 중저음으로 느리게 '아.. 뜨..거...워....'라고 했더니, '아니, 지구 목소리는 예뻐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조금 낮은 고음으로 '아 뜨거워'했더니, 맞다고 하며 따라하셨다. 아이와 아빠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소리가 비슷한 건가 싶었..지만, 조금 후 아이가 지구 목소리라며 맑은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그냥 자기가 요구한대로 하려고 애써 노력한 아빠를 기특하게 생각해주신 것 같다.


#2.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고 하원하던 날, 졸리고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빨리 집에 가서 밥먹고 일찍 자자고 말하고 같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멈추시더니 눈을 살짝 감으시며 졸리는 척 윗몸을 앞뒤로 조금 흔드신다. 꾀를 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슬쩍 '많이 졸려요? 그럼 우리 횡단보도까지 몇 걸음인지 세면서 가볼까요?'

단호하다. '아니, 안아주세요'.... 날씨도 춥고, 낮잠을 안 잤고 배고프시니 이대로면 짜증이 늘어나실꺼고, 그러다 길에서 생떼를 부리시면 뒷감당이 어렵지만, 또 이 상황에서 안아주면 -사실 무겁기도 하다. 이제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꺼 같기도 해서 살짝 화제를 돌려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움직이지 않는 아이 옆에 그냥 서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아이가 '아빠! 펭귄이 어떻게 춤추는지 알아요?' '아니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춤춰요?' 아이는 잘봐요 하면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펭귄춤을 추기 시작하신다. 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평소와 달리 졸리고 배고픈데 짜증이 아니라 춤을 추시다니.... 어른들이 약간 술에 취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인가? 무슨 일인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빠 제가 알려줄께요. 따라해보세요'. 어? 길에서? 여기서? 집도 아니고? 따라하지 않으면 안 될꺼 같은 생각도 들고, 아이가 졸음과 배고픔을 짜증 대신 춤으로 승화시키겠다는데 부끄러움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어.... 아이와 마주보고 서서 따라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시간, 그리 긴 시간은 아닌 듯했는데, 아빠에겐 조금 긴 시간... 어디 나서서 뭐 하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한데, 물론 간혹 약간의 술 기운을 빌어 용기를 내기도 하지만, 이건 퇴근 길에서 맨 정신에... 아 복잡... 이렇게 저렇게 잘 마무리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주 오던 한 분이 아이를 살짝 보며 웃으며 지나가신다. 그런데 아빠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 나의 본성이 지금 내 모습이 아닌가? 하는 너무 나간 생각을 하다 보니, 집이다. 참 익숙해지지 않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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