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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 HQ Aug 08. 2022

아빠, 마음의 상처를 입다

하지만 조금은 내공이 생겼는지.... 예전보다는 담담하게..

일요일 낮 시간, 두 동생은 낮잠을 자고 엄마는 밀린 일을 하고 계셨고, 아빠는 아이들 카시트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림그리기 책을 따라 그림을 그리던 첫째가 갑자기

'힝.... 안되잖아, 이거 아니잖아' 그러면서 자기가 그리던 그림에 엑스를 그으며 투정을 부리신다.

아빠는 아이가 스스로 해결했으면 해서 모른 척하고 계속 카시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아빠!, 아빠!'

'네? 무슨 일 있어요?'

'안돼,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되잖아, 어떻게 해~!'

'하다보면 원하는대로 잘 안될 수도 있어요, 그림은 계속 연습해야하는 거에요'라고 답을 해보지만,

아이는

'아니, 안되잖아'만을 반복하신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옆에 가서 앉아서 그리는 걸 봤더니, 아직 아이 손이 아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천천히 눈으로 보이는대로 따라 그려봐요'

하지만, 아이의 마음과 달리 아이의 손은 그림을 제대로 따라 그리지 못한다.(그 그림은 그냥 정육면체다.)

그림책에 있는 모양을 그대로 따라 그려보자고 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그렸다.

이내 아이는 스스로 하겠다며, 다시 그리는데... 조금 나아져 보였다. 말없이 그리더니 이내 또 그 밑으로 선을 긋는다.

'사각형 밑에 또 사각형이 나와야해, 또 그 밑에도'

'?'

'아니, 이렇게 밑에 또 있고 밑에 또 있어야해, 그 때, 놀이방에서 봤던 건물 그리고 싶어'

아... 뭔가 했다. 예전에 놀이방에서 아빠가 건물을 그렸던 걸 보고, 그걸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때 아빠는 입체 건물모양으로 쌍둥이 건물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걸 그렸었는데, 그걸 그리고 싶었는데 자기 마음대로 안 그려져서 그러셨던 거였다.

'아빠도 엄청 많이 연습해서 그린 거에요, 실수하면 또 다시 그리고, 실수하면 또 다시 그리고 계속 연습하는 거에요,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아이는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내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은박지에 물감으로 도라이몽 그림을 그리시겠다고 하신다.


물론, 물감과 붓은 아빠가 준비를 해야했고, 이 그림 역시 자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파란 테두리를 먼저 칠하고 하얀색으로 얼굴을 칠하다 파란색이 섞여 하늘색이 되자 짜증을 내신다.

'천천히 물기가 마르면 그 때 칠해야 안 섞여요, 다시 하면 될꺼에요'

'아니, 하얀색 칠하고 싶은데 하늘색이 되잖아'

'그러니까, 물기가 있어서 그러니 마르면 그 때 하얀색을 다시 칠하면 될꺼에요'

'아니, 언제 물이 말라, 지금 칠하고 싶단 말이야'

'물기가 마를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칠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지금 지금 칠해야해'

아빠는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지금 하얀색 칠하고 싶어, 다 지우고 다시할래' 그러더니, 그렸던 그림을 다 지우신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그림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색이 번지고 만다.

이내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면서

'안돼잖아, 안돼, 엉엉엉~~~'

이미 짜증이 난 아빠는 그저 바라만 보다가 포기하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엄마! 여기 와 보세요!'

그리곤 자리를 피했다. 더 있으면 진짜 짜증을 낼 것 같아서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게 나겠다 싶었다.

방에 들어가 숨을 고르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잠시 밖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나왔지만 갈 곳은 없고.... 10분 정도 길을 헤매다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번엔 빨간 색 코를 먼저 칠하는 바람에 흰 얼굴 바탕이 분홍이 되어 버렸다. 또 엉엉엉... 이번엔 엄마도 힘드셨는지, 이런저런 말로 설득해 다음에 하기로 했다. 아빠가 물감 등을 치우려고 하자, 엄마가 아이에게 직접 할 수 있으니, 직접 하라고 하신다.

엇? 아이가 능숙하게 물감, 팔레트, 붓을 씻고 정리하신다. 뭐지?(이미 많이 해본 솜씨다.....아빠만 몰랐던 거다)


이제 아빠는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아이도 진정이 된 것 같아서....왠지 아이가 아빠가 짜증이 난 걸 아는 것 같아서 미안함도 전하고 화해도 할까 싶어..

'아빠 안아주세요, 아빠 지금 마음이 아파요'하고 두 팔을 벌렸다.

그런데, 아이는 올 생각이 없다.

아.. 이런.. 아빠한테 삐치셨나? 아빠가 잘못하긴 한거 같은데, 표현은 안해도 아는 거겠지만

몇 번 더 안아 달라며 아이를 불렀지만 아이는 올 생각은 하지 않고, 책 보고 있다, 이거 해야한다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신다. 살짝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그 동안 얼마나 너를 끔찍이 생각하고 가능하면 뭐라도 같이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빠가 지금 마음이 아프다고 안아달라는데 무시를 하다니? 아빠가 지금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건가? 생각은 나쁜 쪽으로 계속 날아다니고, 머리는 화를 내야해, 짜증을 내야해, 참야야해, 무시해야해... 뭐 어떻게 해야해만 반복하고, 가슴은 뛰기 시작하고... 그러다 지금 내가 짜증을 내기 직전이라는 걸 느껴서 숨을 깊이 들이쉰 후... 가만히 있었다.


그 때, 엄마가

'아빠가 안아달라고 하는데, 아빠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데, 가서 안아줘요'

이 때, 아이가 아빠에게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가 와 버렸다. 물론 제대로 안아주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상처받았다.


근 일년간 아침 저녁 아빠랑 같이 등하원을 했고, 근 한달 동안 아빠랑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매일 아빠가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같이 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아니었다니... 상처다.


이후 아빠는 살짝 삐쳐서, 모든 물음에 무미건조하게 답을 하고, 영혼이 빠진 상태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이걸 느꼈는지, 평소보다 더 살갑게 다가오기는 한다. 그걸 알면서도 그걸 바로 받아주지 못했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기 바로 직전.. 어두운게 무섭다는 아이를 꽉 안아주며 '무서울 수 있어요, 그런데 아빠가 옆에 있잖아요, 엄마 아빠는 늘 옆에 있을꺼에요'하고 꽉 안아줬다. 아이는 이내 곧 잠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주 오래 전, 아빠는 이 상황에서 정말로 화가 많이 나고 삐쳐서 2일인가? 3일인가를 말도 제대로 안하고 혼자 우울해 했었다. 이런 아빠를 풀어주려고 엄마와 아이가 고생을 했는데, 오늘은....그래도 아주 잠깐만 삐쳐서.... 아빠도 내공이 쌓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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