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가 되기 싫다. 하지만 호구로 살아왔다.
당황스럽거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 조목조목 나의 의견을 말해내는 일이 어렵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으면 머리가 하얘지고 마음이 약해진다. 가만히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지만 참고 넘겨버린다.
'다음에 정리해서 말해보자. 지금은 참자.'
이런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주눅 들어 듣고 있는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후회를 했다. 내 호구 짓은 앞에서 바로 말하지 못한 탓에 생겼다.
한 번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참는 것보다 못했다. 감정에 앞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쏘아대다 보니 상대방이 너무나 황당해했다.
'얜 뭐지? 논리도 없고 성질만 부리잖아. 너 알고 보니 순 엉터리네.'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눈동자에 비친다. 용기를 내보았지만 그런 눈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또다시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언쟁이 일어날 때 호구가 된 또 다른 이유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핑계이다.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내 주장을 강하게 해서 사람과 멀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의견이 맞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부탁도 참고 해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듯이 참는다는 것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내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일이었다.
또한 살다 보니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주장이 정당하고 합리적일 때, 그런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억압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함께 지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리 있게 내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당하고 후회하거나, 일이 일어난 후에 괜히 나를 아끼는 사람에게 버럭 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내가 내 스스로 나의 일을 해내지 못하니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삶과 나의 감정, 순순한 마음들까지 모두 짓밟히는 기분을 경험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호구 짓을 당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달콤한 말로 포장하여 호구 짓을 강요할 뿐이다.
"넌 정말 착해서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착하다고 했던 것들은 착하다기보다 '멍청한 네가 좋다.'라고 해석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많은 소문들과 오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어그러짐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하루빨리 호구 짓을 탈출하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의 호구 짓을 통해 이 착한 척 코스프레 호구 짓을 벗어나기로 다짐했지 때문이다.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줬던 사람이 되려 5개월 만에 전화를 해서는 "잘못은 네가 했는데 먼저 연락도 없냐. 네가 벌려놓은 사건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힘들다. 다들 너에게 서운하게 생각한다. 너는 생각도 없이 놀면서 잘 사는 것 같더라."라는 말을 했다.
나는 '제가 어떤 잘못을 했죠? 전 아직도 잘못을 모르겠어요. 오히려 상처 받고 힘든 것은 접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입으로는 "미리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나의 입장을 솔직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되려 투정 아닌 화를 부려서 분위기를 망쳤다.
정말 속상했다. 내 기분은 기분대로 망치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니. 필요 없는 사람과 어중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결과일까? 절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내가 확실히 말하는 결과가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행위라고 느꼈다. 자신의 잘못된 사고와 행동을 누군가 확실히 말해준다면, 그 사람도 이번 계기를 통해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용기를 냈던 상황에는 감정이 너무 앞섰다. 당황스러운 일을 마주했을 때 차분한 마음으로 나의 의견과 정당함을 잘 이야기해내는 것이 아직 어렵지만 노력해보고자 한다. 계속해보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터득할 거라고 본다.
착하다는 칭찬을 가장한 호구 짓 강요에 나의 삶을 뺏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