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으로 파리를 경험하지만
클로에는 아침 햇살이 오래된 레이스 커튼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드는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눈을 떴다. 파리 생활 5개월 차. 첫 달과 달리 이제는 매일 아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빵집 주인의 흥얼거림과 카페 테라스에서 울리는 잔 부딪히는 소리가 그녀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도시는 여전히 낯설면서도, 점차 그녀만의 일상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비 온 뒤의 서늘한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갓 구운 크루아상의 버터 향과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기가 좁은 골목을 따라 밀려들었다. 그녀는 발가락으로 낡은 나무 바닥을 느끼며 슬리퍼를 끌어 발코니로 나갔다. 어제 저녁, 작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마주친 노부부가 선물한 라벤더 화분이 이제 그녀의 발코니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컵의 따뜻함을 느끼며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혀끝에 느껴지는 씁쓸함이 아침의 선명함을 더했다. 멀리서 보이는 에펠탑의 실루엣은 안개에 살짝 가려져 있었고, 바쁘게 오가는 행인들의 우산과 레인코트가 물방울처럼 거리를 채웠다. 자전거 벨 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지고, 행인들이 서로 '봉주르'를 건네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이 모든 일상이 이제는 필립 없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담담하게 느껴졌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매일 밤 필립에게 사진을 보내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 이 도시가 의미 있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필립 없이도 그녀만의 파리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었다.
필립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의 마지막 "우리 사이에는 거리만 있는 게 아니야, 클로에"라는 말은 그녀의 가슴에 날카로운 칼처럼 박혀 있었다.
잠들기 전, 그녀는 여전히 가끔 그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읽곤 했다. 스크린을 통해 그의 단어들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이제는 그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목소리로 그 단어들이 읽히는 것을 느꼈다. 매일 조금씩, 그 메시지가 가진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 뉴욕에 있는 제시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핸드폰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자 클로에의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그들은 10년 넘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왔다.
"어떻게 지내? 필립 얘기 들었어. 정말 괜찮아? 내가 보고 싶어서 너 몰래 비행기 표를 끊어버릴까 봐."
클로에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시카는 늘 그녀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따뜻한 친구였다. 대학 시절, 그녀의 첫 실연 때도 제시카는 두 통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타나 밤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괜찮아. 일에 집중하고 있어. 새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어. 파리도 이젠 조금 익숙해졌어."
완전히 진심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 그녀는 필립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루브르 박물관에 혼자 갔다가, 눈물이 흘러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박물관 밖 테라스에서 혼자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일몰을 지켜봤다. 그 순간의 고독함이 생각보다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 말이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제시카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은 소식이야. 그런데... 데이팅은 어때? 파리는 로맨스의 도시잖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 내가 정말 좋은 앱을 추천해줄게. 이건 정말 진심이야, 클로!"
그 말에 클로에는 한참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맺히며 만들어내는 패턴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필립과 데이트했던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었다. 그날 그는 우산을 잊어버렸고, 둘은 비를 피해 가장 가까운 카페로 뛰어들어갔다. 그 때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필립이 아닌 누군가와 파리의 좁은 골목길을 걷고, 그녀가 발견한 숨겨진 빵집에 데려가고, 센 강변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 어쩌면,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써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녀는 발코니에서 들어와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했다. 화면에 'Bonjour!'라는 인사말과 함께 앱이 켜졌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어떤 사진을 올려야 할까? 파리의 카페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사진? 아니면 상하이 사무실에서의 전문적인 모습?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프로필에 적힌 "상하이→파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문장이 어쩐지 너무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클로에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데이트가 언제였더라? 필립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전, 그녀는 항상 자신만의 길을 가는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딘가 불안하고, 자신감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건 누군가를 찾기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거야.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프로필 사진으로 몽마르트 언덕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 속 클로에는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지만, 눈가에는 미묘한 희망의 빛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소개에는 "상하이에서 파리로. 매일 새로운 거리를 탐험하는 중. 좋은 와인과 긴 대화를 좋아합니다."라고 적었다.
그 후 일주일간, 그녀는 몇 명의 남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대부분은 형식적이고 지루했다. "파리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 "오래 머물 예정이에요?" 같은 표면적인 대화들. 그녀는 점점 이 시도가 실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앙투안이라는 남자와 매칭이 성사됐다. 38세, 신경외과 의사, 와인과 미술을 좋아하고, 파리 14구에 산다고 했다. 그의 메시지는 달랐다. "클로에, 당신의 눈에 비친 파리를 보고 싶어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발견한 이 도시의 비밀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이 메시지에 그녀는 기대감을 느꼈다.
그와의 첫 데이트는 생제르맹데프레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다. 클로에는 은은한 그레이 컬러의 실크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를 골랐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며,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설렘이었을까, 불안이었을까?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그녀는 앙투안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마치 파리라는 도시가 인간의 형태를 띤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완벽하게 다듬어진 수트 아래 말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서는 지적인 진중함이 느껴졌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일어나 프랑스식 인사로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클로에, 실제로 보니 더 아름답군요."
그의 말에 그녀는 미소 지었지만, 가슴속에서는 작은 경계심이 일었다. 너무 매끄러운 칭찬이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그는 와인 리스트를 능숙하게 훑으며 보르도 지역의 풍부한 레드 와인을 추천했다. "이 와인은 2015년산인데, 특별히 따뜻했던 그 해의 태양이 포도에 독특한 향을 입혔어요. 첫 모금에는 감초와 블랙베리의 풍미가 느껴지고, 끝맛에는 오크통의 바닐라 향이 남아요."
그가 와인을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병을 감싸는 방식에 주목했다. 섬세하고 자신감 있는 손놀림. 와인을 맛보자 그의 설명대로 풍부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녀는 묵직한 와인의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정말 좋네요. 저는 와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요. 상하이에서는 주로 차를 마셨거든요."
앙투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가 파리의 와인 세계로 당신을 안내해드릴게요. 매주 다른 지역의 와인을 소개해드리죠."
그의 자신감은 매력적이었지만, 뭔가 미묘하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파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박식하게 설명했고, 특히 바로크 건축에 대한 그의 지식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은 드물었다. 질문을 해도 그것은 마치 그가 이미 정해진 답을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화는 공손하고 세련됐지만, 클로에는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형식적인 예의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는 예술과 문화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고, 종종 자신의 의견을 유려한 프랑스어로 풀어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파리의 길거리 카페에서 무심코 듣게 되는 지적인 대화를 연상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는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짝 얹었다. 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접촉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그 온기가 그녀의 마음까지 완전히 녹이진 못했다.
"이번 주말, 오르세 미술관에 가보시겠어요? 인상파 전시가 새로 열렸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데이트. 어쩌면 이번에는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클로에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점점, 앙투안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자신의 외적인 면만을 맴도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자신은 그의 화려한 대화를 더욱 빛내줄 장식품 같은 존재일 뿐인 것처럼.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걸까?' 그녀는 자문했다. 필립과의 관계가 그녀의 기준을 너무 높여놓은 것일까?
두 번째 데이트는 약속대로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그날은 햇살이 찬란했고, 미술관 앞 정원은 색색의 꽃으로 가득했다. 앙투안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격식 있고 세련되어 보였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모네의 작품들 앞에 멈춰 섰다. 앙투안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모네는 빛을 그린 화가예요. 보세요, 이 수련 연작에서 물 위에 맺힌 햇빛이 어떻게 시시각각 변하는지를 표현했어요.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대에 그렸죠."
앙투안은 모네의 작품 앞에서 빛의 궤적과 색채의 변화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감탄했다.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지만, 그가 그녀의 감정이나 해석을 물어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저는 모네의 작품에서 항상 향기가 느껴져요. 마치 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수련의 향과 습한 공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앙투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감상에 깊이 반응하기보다는 자신의 해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모네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서 감각적 경험을 중시했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까요?"
그들은 미술관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앙투안은 그림마다 박식한 해설을 이어갔고, 클로에는 그의 지식에 감탄했지만, 점점 그와의 대화가 일방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고, 그녀의 목소리 속에 담긴 숨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미술관을 나와 근처 카페에 앉았을 때, 앙투안은 그녀에게 물었다.
"클로에,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적응하기 어려움은 없나요?"
이것은 그가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에 관심을 보인 첫 질문이었다. 클로에는 잠시 기대감이 일었지만, 그녀가 언어 장벽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앙투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프랑스어는 정말 아름다운 언어예요. 당신의 악센트도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시인인 보들레르는..."
그리고 다시, 그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클로에는 그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클로에는 쓸쓸한 마음으로 혼잣말을 했다. "완벽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외롭지?" 그녀는 앙투안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그 매력은 따뜻함이 아닌 밝게 빛나는 차가운 별과 같았다. 그에게 그녀는 청중에 불과했고, 그것이 그녀를 외롭게 했다.
며칠 후, 마티유와의 만남이 있었다. 32세, 테크 스타트업 창업자. 그는 그녀의 프로필을 보고 메시지를 보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니 흥미롭네요. 저는 기술과 창의성의 결합을 믿는 사람입니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볼까요?"
그의 메시지는 앙투안의 세련된 문장들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클로에는 호기심에 답장을 보냈고, 곧 만남이 성사되었다.
마티유는 처음부터 앙투안과는 확연히 달랐다. 만남의 장소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의 빈티지한 카페였고, 그의 복장은 살짝 구겨진 재킷과 흰 셔츠, 빛바랜 청바지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눈가에는 웃음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클로에! 만나서 반가워요. 이미 커피를 시켰는데, 당신을 위한 것도 주문할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바리스타에게 손짓하며 "카페 오 레 하나 더 부탁해요"라고 말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마티유는 자리에 앉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스케치북에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프로젝트에 관한 건가요?" 클로에가 호기심에 물었다.
마티유의 눈이 반짝였다. "클로에, 난 지금 인간 감정을 인식하는 AI 로봇을 만들고 있어. 슬픔을 감지하면 위로가 되는 음악을 틀어주고, 기쁨을 읽으면 함께 춤을 춰주는. 이게 진짜 우리의 미래야."
그는 스케치북을 펼쳐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림은 단순했지만 독특한 로봇 디자인이었다. 눈처럼 보이는 센서와 얼굴 표정을 흉내 내는 유연한 패널이 있었다.
"감정을 이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외로움이나 소외감 같은 현대 사회의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클로에는 처음엔 그의 넘치는 열정에 매료되었다. 그는 앙투안과 달리 자유로웠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꼈다.
"흥미로운 컨셉이네요. 하지만 로봇이 진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감정은 너무 복잡하고 미묘해서..."
그녀의 질문에 마티유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예요! 그 복잡함이 도전 과제죠. 우리는 감정 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어요. 목소리 톤, 얼굴 표정, 심지어 체온 변화까지 모든 신호를 분석하는..."
그리고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열정은 자신의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었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 기술의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가끔 그녀가 질문을 던지면 그는 짧게 대답한 후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자 클로에는 점차 깨달았다. 그는 상대가 누구든,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를 일방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날,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꺼내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녀가 상하이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려 할 때마다, 그는 "그래서 내가 개발 중인 이 기술이..." 라며 화제를 돌렸다.
카페에서 나와 함께 걷던 중, 마티유는 거리의 드론 배달 서비스와 로봇 공학의 혁명적 미래에 대해 열을 올리며 쉼 없이 설명했다. 그들이 지나치는 가게 앞에서 배달 드론이 착륙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흥분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세요! 저게 바로 초기 모델이에요. 하지만 5년 안에 이 드론들은 훨씬 지능적이 될 거예요. 감정을 인식하고, 날씨를 예측하고, 심지어 당신이 뭘 주문할지도 알게 될 거예요."
그녀가 입을 열 틈도 없이 그는 계속해서 미래 기술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쏟아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클로에, 이게 얼마나 혁명적인지 알겠어요?"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클로에는 안도감을 느꼈다. 마티유는 마치 그녀와의 대화가 환상적이었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다음에 또 만나요. 내 연구실로 초대할게요. 프로토타입을 보여드릴 수 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클로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티유는 분명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와의 데이트는 마치 일방적인 강연을 듣는 것 같았다. 앙투안이 그녀를 관객으로 대했다면, 마티유는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몇 주 동안, 클로에는 여러 남자들과 데이트했다. 프랑스 금융업계 종사자 피에르, 미국인 대학 교수 데이비드, 독일인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데이트를 할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명확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노트북에 작은 메모들을 적어나갔다.
파리 데이트 일기:
나는 상대방이 내 말에 귀 기울여주길 원한다. 그것도 진심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필립은 내 세계의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없이도 괜찮다.
그녀는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미소 지었다. 점차 필립의 그림자는 희미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