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에 리우의 파리
클로에는 그날 밤 늦게까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창밖으로 보이는 몽마르트의 불빛이 익숙해졌지만, 오늘따라 그 풍경이 더욱 외롭게 느껴졌다. 필립의 메시지는 여전히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남아있었다.
"오늘 밤 우리의 '파리 3개월' 기념 저녁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아. 중요한 일이 생겼어. 나중에 설명할게."
클로에는 여러 번 답장을 쓰려고 시도했지만,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정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날 밤, 클로에는 몽마르트 인근의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 아파트는 필립의 조언으로 구한 곳이었다. 파리지앵들이 선호하는 19세기 오스만 양식의 건물로, 작지만 아늑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그 공간이 더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필립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몇 번의 짧은 메시지와 출근길에 마주친 순간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클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필립, 우리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클로에가 사무실 복도에서 그를 붙잡았다.
필립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에 만나자. 내 아파트로 와."
그날 저녁, 클로에는 파리 16구에 있는 필립의 우아한 아파트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전에는 그곳에서 많은 행복한 순간들을 보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녀를 감쌌다. 문이 열리고 필립이 나타났다. 평소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들어와,"
그가 말했다.
클로에는 익숙한 거실로 들어갔다. 아파트는 여전히 깔끔했지만,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는 반쯤 마신 와인 병과 두 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왔었어요?"
클로에가 물었다.
필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에, 앉아. 얘기해야 할 게 있어."
클로에는 그의 말투에서 이미 무엇이 닥칠지 예감했다.
그녀는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소피가 돌아왔어,"
"소피? 우리 회사의 소피?"
"아니, 내... 내 전처 소피야."
클로에는 충격에 휩싸였다.
필립이 이혼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필립은 항상 그 주제를 피했고, 클로에는 그의 사생활을 존중했다.
"소피가 2년 전 런던으로 떠났어. 우리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파리로 돌아왔어. 지난주에 갑자기 연락이 왔고..."
클로에는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필립의 갑작스러운 취소, 일주일간의 침묵, 그리고 지금 그의 혼란스러운 표정.
"그래서... 당신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있어요?" 클로에의 목소리는 떨렸다.
"클로에, 난... 난 혼란스러워. 소피와 나 사이에는 많은 역사가 있어. 5년의 결혼 생활과..."
"당신이 그녀를 아직 사랑하나요?" 클로에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필립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이해해요," 클로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당신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미안해, 클로에. 정말 미안해." 필립의 눈에는 진정한 후회가 담겨 있었다.
클로에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내가 갈게요."
필립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 후로 클로에는 자신만의 파리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 더 이상 필립의 안내를 받는 관광객이 아니라, 스스로 이 도시를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는 혼자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고, 센 강변을 따라 산책했다.
그녀는 자신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리와 친해지고 있었다.직장에서도 클로에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필립의 여자친구'로 인식되는 것을 불편해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더 열정적으로 임했고, 그 결과 럭셔리 화장품 캠페인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클로에, 정말 훌륭한 작업이었어요,"
장-뤽이 주간 회의에서 그녀를 칭찬했다. "아시아 시장 팀에서 당신의 역할이 더 커질 것 같네요."
그녀는 '아시아 시장'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여전히 경계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파리 생활 4개월 차, 아틀리에 크레아티프는 대형 계약 체결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클로에는 이 파티에 참석할지 고민했다. 필립과의 마지막 대화 이후, 그들은 사무실에서 만날 때면 형식적인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참석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녀의 커리어와 새로운 인맥을 위한 좋은 기회였다.
파티장은 세느 강변의 세련된 레스토랑이었다. 테라스에서는 에펠탑의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클로에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도착했다.
"클로에, 와주어서 기뻐요,"
장-뤽이 샴페인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이번 계약에 큰 역할을 했어요."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제 이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성취였다. 바로 그때, 테라스 건너편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클로에는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바라보았고, 필립을 발견했다. 그의 옆에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40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와 세련된 태도로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에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소피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필립은 클로에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소피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클로에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클로에, 잘 지냈어?" 필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꽤 괜찮아요," 클로에가 대답했다. "당신도 그런 것 같네요."
필립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소피를 소개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클로에는 마음속으로는 거부하고 싶었지만, 전문가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물론이죠."
소피는 필립의 손짓에 따라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세월의 흔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을 더했다.
"소피, 이쪽은 클로에 리우예요. 우리 회사의 뛰어난 아트 디렉터야,"
"클로에, 이쪽은 소피 뒤발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소피가 완벽한 영어로 말했다.
"필립이 당신의 재능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클로에는 공손하게 미소지었다.
"저도 당신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세 사람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필립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저기, 제가 잠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클로에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말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클로에는 빠르게 그곳을 떠나 테라스의 한적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세느 강을 내려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필립과 소피를 함께 보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마음 아팠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여기서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클로에는 흠칫 놀라며 돌아보았다. 소피였다. 클로에는 당황했지만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네, 그냥... 잠시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어요."
소피는 클로에 옆에 서서 함께 강을 바라보았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적응하기 쉽지 않죠, 특히 외국인으로서는."
"네, 쉽지는 않아요," 클로에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필립이 많이 도와줬겠네요," 소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난이나 질투가 아닌, 단지 사실을 언급하는 듯한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랬어요," 클로에는 인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파리를 발견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소피는 클로에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필립이 당신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군요."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우리는 5년 동안 결혼했어요. 좋은 시간도 많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죠. 내가 런던으로 떠났고..." 소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당신도 알겠지만."
클로에는 소피의 말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필립과 소피 사이에 여전히 강한 유대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필립은 좋은 사람이에요," 클로에가 말했다. "그는... 행복해 보여요, 당신과 함께."
소피의 눈에 잠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지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 말은 클로에에게 필립과 소피가 재결합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클로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명확함에서 오는 안도감도 느꼈다.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클로에," 소피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필립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특별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어요."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소피는 부드럽게 미소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클로에는 다시 한번 혼자 남겨졌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필립과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알았다. 그것은 아픈 현실이었지만, 적어도 이제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파리의 불빛이 센 강의 어두운 물결 위에 반짝였다. 클로에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의외의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그녀는 자신만의 파리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필립의 파리가 아닌, 클로에 리우의 파리를.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세느 강을 바라본 후, 다시 파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변화는 언제나 아프지만, 때로는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