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 서서
센 강의 물결이 가로등 불빛에 일렁이는 저녁, 나는 퐁네프 다리 위에 서서 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봤다. 파리에 온 지 1년 반. 여전히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나를 압도했다.
내 이름은 클로에 리우(Chloé Liu). 32살,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글로벌 광고 에이전시 '아틀리에 크레아티프'의 아트 디렉터다. 미국계 중국인인 나는 상하이 지사에서 7년을 보낸 후 파리 본사로 발령받았다. 내 여권은 미국 것이지만, 나의 정체성은 언제나 그 경계에 있었다. 상하이에서는 너무 서양적이었고, 미국에서는 너무 동양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파리에서는 그저 이방인이다.
모든 것은 4년 전 상하이에서 시작되었다.
"이 캠페인은 너무 평범해. 우리는 더 과감하게 가야 해."
회의실에 들어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나는 발표 중이던 프레젠테이션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이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 측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필립 모로(Philippe Moreau). 42살, 프랑스인. 그의 존재감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키가 크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염에 약간의 회색 머리카락이 섞인 그는,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고 있었다.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모습.
"당신의 의견이 궁금한데요, 클로에?" 그가 나를 직접 지목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내 생각을 정직하게 밝혔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 브랜드는 지금 새로운 방향이 필요해요. 아시아 시장에서는 보수적인 접근이 안전할 수 있지만, 진정한 돌파구를 원한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죠."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프로젝트에서 긴밀히 협력하게 되었다. 필립은 예상과 달리 권위적이지 않았다. 그는 내 아이디어에 귀 기울였고, 때로는 나의 대담한 제안에 기꺼이 동의했다. 함께 일하며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업계에서 2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었고, 수많은 국제 광고상을 수상한 인물이었다.
"당신은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클로에." 어느 날 밤,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늦게까지 일하고 난 후, 그가 말했다.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이 일에서 중요한 자산이죠."
나는 그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평생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에게, 그 '경계에 있음'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업무적인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러다 점차 개인적인 대화로 발전했다. 그는 파리의 숨겨진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상하이의 변화하는 거리들에 대해 썼다.
세 달 후, 그가 다시 상하이에 왔다. 다른 프로젝트 때문이었지만, 그는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났다. 우리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와인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대화는 깊어졌다.
"처음 회의에서 당신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때부터 함께 일하고 싶었죠."
"당신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어요," 나는 답했다. "좋은 의미로요."
그날 밤, 그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키스. 예상했던 순간이었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생각보다 더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나보다 14살이나 많았고,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내 클라이언트였다.
"우리 관계를 서두르지 말자," 내가 제안했다.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해."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국제 연애가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그리고 그가 상하이에 올 때마다, 또는 내가 파리에 출장 갈 때마다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공유하기 시작했다.
필립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는 자신을 '전형적인 프랑스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그의 파리 아파트는 책으로 가득했고, 그는 철학과 예술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길 좋아했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종종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 이름을 알아듣지 못할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듯했지만, 곧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러워졌다.
상하이 생활 3년 차였던 나는 그에게 내 세계도 보여주었다. 우리는 샤오롱바오를 먹으러 작은 골목길의 식당에 갔고, 황푸강변에서 밤을 보냈다. 나는 그에게 중국 문화의 뉘앙스를 설명했고, 그는 진지하게 경청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세상이 더 넓어진다는 느낌이에요," 어느 날 밤, 그가 말했다.
그 말은 간결했지만 의미심장했다. 나이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뭔가 본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는 파리에 정착한 삶이 있었고, 나는 상하이에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항상 한시적이었다. 2주, 길어야 한 달. 그리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파리로 와,"
어느 날 그가 제안했다.
"우리 에이전시 파리 본사에 자리가 있어. 내가 추천할 수 있어."
나는 망설였다. 그를 위해 내 커리어를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파리는 항상 내가 살고 싶었던 도시였다. 그리고 필립... 그는 내가 만난 어떤 남자와도 달랐다.
"생각해볼게요" 나는 대답했다.
한 달 후, 나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도시, 그리고 필립과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위해. 그때는 몰랐다. 이 결정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여기가 당신의 새 사무실이에요," 파리 에이전시의 HR 매니저가 말했다. "필립이 당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은 아름다웠다. 19세기 건물을 개조한 오픈 스페이스로, 높은 천장과 큰 창문이 특징이었다. 창밖으로는 몽마르트 언덕이 보였다.
필립은 내가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내게 아파트를 찾아주었고, 파리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주말에는 함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의 안내로, 파리는 관광객이 아닌 주민으로서 경험하는 도시가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이제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었고, 일상을 공유했다. 그의 아파트에서 보내는 아침, 내 작은 스튜디오에서의 저녁. 우리는 서로의 습관과 취향을 배워갔다.
"당신은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요," 그가 투덜거렸다.
"당신은 치즈에 대해 너무 진지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차이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직장에서, 일부 동료들은 내가 '필립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수군거렸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려 했지만, 가끔은 나의 능력이 아닌 관계 때문에 평가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신경 쓰지 마," 필립이 말했다. "그들은 곧 당신의 재능을 알아볼 거야."
그는 옳았다. 내가 맡은 첫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점차 동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줄타기였다.
그리고 그때, 우리 관계의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내가 파리에 온 지 정확히 3개월 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