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계의 시작
"리우 씨, 축하합니다. 아시아 시장 담당 부디렉터로 승진이에요."
클로에는 줄리엔 사장의 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파리에 온 지 겨우 10개월 만의 승진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이렇게 빨리 기회를 주실 줄은 몰랐어요."
"당신의 상하이 네트워크와 문화적 이해력은 우리 에이전시의 큰 자산이에요. 루이비통과의 아시아 확장 프로젝트를 당신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사무실을 나오는 클로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필립과의 관계가 끝난 후 몇 달간, 그녀는 데이트보다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필립이었다.
"클로에, 소식 들었어. 축하해."
클로에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했다. 그들은 헤어진 후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고마워," 그녀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저녁이라도 함께할까? 축하 자리로." 필립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망설임이 느껴졌다.
클로에는 망설였다. 필립과의 식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안해,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
실제로는 약속이 없었지만, 클로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통화를 마친 후, 그녀는 파리 16구의 고급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루이비통 프로젝트를 위한 첫 미팅 장소였다. 화려한 로비에 들어서자 접수원이 그녀를 에티엔 뒤부아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루이비통의 창의적 마케팅 디렉터였다.
"리우 씨, 마침내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세련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의 상하이 캠페인 포트폴리오가 인상적이었어요."
미팅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에티엔은 클로에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고, 그녀의 문화적 통찰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건 단순한 브랜드 확장이 아니에요," 클로에가 설명했다.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파리의 정수를 전달하면서도, 그들의 문화적 맥락을 존중해야 합니다."
에티엔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우리가 찾던 접근법입니다."
회의가 끝난 후, 에티엔이 말을 걸었다.
"혹시 이 근처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을 아세요? 일식과 프랑스 요리를 접목한 곳인데, 당신이라면 흥미로워할 것 같아서요."
클로에는 순간 필립이 떠올랐다. 그도 처음 만났을 때 융합 요리를 좋아한다며 그녀를 식사에 초대했었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익숙했다.
"죄송해요,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요."
에티엔은 실망한 기색 없이 미소지었다.
"물론이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클로에는 자신의 반응에 대해 생각했다. 왜 에티엔의 제안을 거절했을까? 그는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그녀의 일을 존중했다. 그러나 필립과의 관계 이후, 그녀는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서양 남자에게 매료되어, 그의 세계로 들어가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
다음 날, 클로에는 타이완 출신 건축가 마크 첸과의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루이비통의 아시아 플래그십 스토어 리노베이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클로에, 당신의 제안서를 읽었어요," 마크가 말했다.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유럽 브랜드를 해석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마크의 건축 설계도 그런 균형을 잘 보여주더군요. 동양의 공간 철학과 서양의 기능성을 조화시키는 방식이 멋있었어요."
그들은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회의 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저녁 식사라도 하면서 계속 이야기할까요?" 마크가 제안했다.
클로에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마크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들은 동서양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경험,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은 독특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하이에서는 너무 서양적이라고 느꼈고, 미국에서는 너무 동양적이었어요,"
클로에가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파리에서는... 글쎄요, 여기서는 그냥 이방인이죠."
마크는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타이완에서도, 미국에서도, 파리에서도 항상 뭔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죠. 그 '다름'이 바로 나의 강점이라는 걸."
저녁이 깊어갈수록, 클로에는 마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필립이나 에티엔에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공통된 경험에서 오는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그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는 편안함이었다.
"주말에 몽마르트에서 아시안 아트 페스티벌이 열려요," 마크가 말했다. "함께 가볼래요?"
클로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단순한 데이트 제안 이상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다음 날 오전, 에티엔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파리 외곽의 고급 샤토에서 열리는 VIP 이벤트에 그녀를 초대했다. 루이비통의 핵심 클라이언트들이 모두 참석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클로에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에티엔과의 관계는 그녀의 커리어에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파리 상류 사회의 문을 열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필립과 함께했던 시간의 반복이 아닐까?
마크와의 관계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더 편안하고 진실된, 그러나 어쩌면 더 어려운 길. 그들은 모두 '경계인'이었고, 파리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클로에는 센 강변을 홀로 걸으며 생각했다. 파리에 온 지 10개월,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
휴대폰을 꺼내 두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에티엔에게:
"VIP 이벤트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젝트와 관련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참석하겠습니다."
마크에게:
"이번 주말 아트 페스티벌, 함께 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 후에 내가 알게 된 작은 재즈 바에도 가볼까요?"
클로에는 이제 분명히 알았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필립도, 에티엔도 아닌, 오직 클로에 리우의 파리를.
전화를 내려놓으며,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해방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제 경계선 위에 서서, 양쪽 세계를 모두 볼 수 있는 자신만의 관점의 가치를 깨닫고 있었다.